우리가 사랑한 아시시 아기자기한 도시,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꽃을 많이 만난 곳. 이곳에서 우리는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식당에서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니 다들 점심을 먹기보다는 와인에 치즈 몇 조각을 두고 먹고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점심다운 점심은 먹기 힘들었다. 그 대신 작은 소품을 파는 가게가 많아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곳에서 남편은 아시시를 기념하는 아시시라고 쓴 와인 따개를 하나 샀고, 딸은 어느 이름 없는 작가가 그린 그림 노트 한 권을 샀다. 그리고 나는 저렴한 스카프를 사서 여행 내내 하고 다녔다.
아시시에서 점심에 출발해 산마리노 공화국까지 가는데 2시 반 정도가 걸린다. 그곳을 가는 길이 마치 우리나라 강원도의 꼬불꼬불한 길을 운전해서 가는 느낌이었다. 가는 길마다 표지판에 우리에게 알려줬고, 우리는 그 표지판을 보지 않아도 몸소 느꼈다. 이탈리아의 시골 풍경을 보며, 처음에는 감탄이 나왔으나, 이제는 우리에게 당연한 풍경인 것으로 생각하며 바라보았다.
산마리노 공화국은 유럽에서 바티칸과 모나코 다음으로 작은 독립 국가이다. 차가 없다면 가기 힘든 곳일 것 같아서 이 정보 하나만 가지고 산마리노를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산 정상의 요새 아래쪽에 높직하게 자리 잡고 있는, 3중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산마리노를 만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탈리아 봄빛도 만났다. 4월 중순, 한국에서 벚꽃을 보고 출발해서 나는 유럽의 시작인 파리에서도 벚꽃을 만날 줄 알았는데, 초겨울 추위를 만나 옷을 사 입어야 했다. 여행의 보름이 지나 이제 조금씩 우리 가족은 봄빛을 만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곳에서 한국의 벚꽃을 생각하다니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오게 될 장소일 것 같은 이곳에서-인생은 알 수 없다지만-내 눈에 이 풍경과 함께 있는 가족 펭귄을 많이 담으려고 노력했다. 여행의 3분의 1을 마주하며, 아이들은 하루에 만 보는 기본으로 걸어 다녔으며, 일상이 되어가며 반 뼘 자라 있었다. 나 또한 여행에서 여유를 즐기며, 삶에 찌든 모습이 아닌 밝게 웃으며 다녔다. 아이들 펭귄 입에서 자연스럽게
"엄마가 웃는 모습이 좋아요."
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조금 놀랐다. 내 삶에서 내가 많이 웃지 않았구나, 여행자가 되어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를 가지자, 자유롭게 내 맘을 열고 아이들도 통제하지 않으며 웃음을 찾았구나 싶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통제보다는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산마리노 요새 안에서 작게 보이는 마을들을 보며 생각했다.
삶에서는 작은 것도 크게 보이며, 그것을 통제하지 못해서 화를 냈지만, 삶에서 조금 떨어져 보니, 모든 것이 작게 보이고, 통제하지 않아도 하루가 잘 지나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나도 모르게 웃고 있음을 알았다. 아이 펭귄들은 이제 나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엄마 펭귄의 웃는 모습이 좋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통제적 삶을 살게 했으며, 무엇이 나의 웃음을 잃어버리게 했을까 생각해 보니, 타인에게 보이는 삶이 안정적으로 보이길 원했고, 타인을 의식한 삶이 나를 통제했음을 알았다. 나는 내 본연의 모습과 자유로움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내가 얻은 것 중 하나는 내면의 소리를 듣고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맘이다. 그래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삶이 여행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랬더니 내 삶이 봄빛으로 물들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