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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Oct 01. 2024

내게 밤은 사랑이다.

내게 밤은 사랑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남편이 내게 보여주는 사랑이다. 나는 촌스럽게도 고구마, 감자, 옥수수, 밤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제일을 꼽으라면 밤이다. 그러나 밤은 좋아만 했지 쉽게 먹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먹는 것, 입는 것, 돈 쓰는 일엔 궁색했던 부모님은 시골에서 가져온 고구마, 감자, 옥수수는 종종 쪄주시긴 했지만 밤은 추석 전후 시골에서 구할 수 있음 먹고 그마저도 없어서 못 먹었다. 그래서 엄마를 따라 시장을 갈 때면 맨들한 큰 알밤을 보며, 저걸 사준다면 좋겠다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니 내게 밤은 귀한 음식이었다. 특히나 군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한 봉지, 오천 원, 만원에 몇 알 들어있지 않은 걸 어릴 적 부모님이 사준 적도 없을뿐더러, 성인이 된 이후에도 비싸다고 생각해 사 먹지 못했다. 밤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달리하게 한 사람이 예전의 남자 친구, 지금의 남편이다. 연애 시절 내가 좋아하는 군것질 거리를 만날 때면 사 오든 사주 든 했다. 추운 겨울 군중 속을 함께 걷다가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이 있어 우리도 갔더니 군밤 장수가 있었다. 그는 내게 군밤을 사주려고 했고, 나는 비싸다며 가자고 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그런데 그는  꿈쩍도 하지 않고 밤을 사서 내 품에 안겼다. 그리고 내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좋아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그렇게 그는 남편이 되어 내가 좋아하는 밤을 먹기 좋게 껍질을 깎아주기도 하고, 군밤이 보이면 사다 주기도 한다. 매년. 이때가 되면 그렇게 남편은 가을을 맞이하고. 나는 사랑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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