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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May 06. 2024

정신 건강 병원 상담 1. 본 가정과 새로운 가정

건물이 흔들려요.

나는 오만하게도 내 병이 나아간다고 생각했다. 상담이 끝나고, 내 감정과 생각을 어느 정도 다룰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번 주 병원을 갔다. 의사 선생님께서 할 말이 있으면 하라고 했다. '무엇을 말하란 말인가'라고 생각하며 '막연하다'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여긴 병원이니깐 나의 몸상태를 이야기해야지 싶어 증상에 대해서 얘기했다.

 "건물이 흔들려요. 흔들리지 않는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그렇게 느껴지고 서있는 게 힘들어서 벽에 기대게 돼요."

 "주로 언제 어디에서 그래요?"

 "학교요. 가끔 학생들에게 물어볼 때가 있어요. 바닥이 기울지 않았냐고, 흔들리지 않냐고."

 "집은요?"

 "집에서 느끼진 않았어요."

 "어렸을 때도 느꼈나요?"

 "아니요. 학교 일을 시작하면서 느끼기 시작한 것 같아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떤 분이신가요?"

갑자기 물어보는 본 가정에 대한 질문에 '이건 뭐지?'라는 생각과 함께 마음은 반가웠다. 이 상황에 '반갑다'라는 단어가 웬 말인가. 나는 본 가정에서 받은 부정적 자아의 모습을 의사 선생님께 이야기하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실까 하는 내 치유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반갑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많이 나를 때렸으며, 늘 부정적 언어로 나를 대하셨다. 최근까지도 아버지의 말로 상처받는 나를 견디지 못해 나는 한동안 본 가정에 가지 않거나 아버지를 만나는 것을 피했다. 그런 아버지에게 얼마 전 남편과 술을 먹으며 나의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더 이상 피할 수만 없다는 생각에 직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남편과 술을 먹다 말고 조용히 혼자 방으로 와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1년에 한두 번 전화할까 말까 하는 사이, 1분을 넘기지 못하는 통화 시간, 아빠 안부가 궁금하면 남편을 시켜서 통화를 하게 한 나, 그런 나와 달리 남(가족이 아닌 타인)에겐 친절한 아빠는 사위의 전화를 반갑게 받아줬다. 곁에서 그 목소리를 들으면 안심했다.-여기서 안심은 퉁명한 목소리가 아닌, 화가 나 있거나 짜증 나 있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저녁 8시가 넘은 시간 아빠는 이 시간에 아마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거나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고 계셨겠지.

내 전화가 뜬금없었는지 다행히 목소리가 밝았다. 그런 아빠에게 나는 술의 힘을 빌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고백하건대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 아빠 앞에서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그리고 이렇게 술을 마시고 전화한 게 처음이다.-

 "아빠 내가 술을 좀 마셨어. 나는 아빠가 싫어서 아빠를 피하는 게 아니고 아빠한테 상처받는 게 힘들어서 피하는 거야. 어렸을 때부터 인정받고 싶었는데 나는 아빠 기준에 미치지 못했어. 그래서 나는 마음이 아파."

 아빠의 밝았던 목소리는 어두워졌고. 알았으니 전화를 끊으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회피하지 않았음에 내 마음을 솔직하게 전달한 것에 내 마음의 짐을 내려놓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속이 후련하거나 내 상처가 회복된다거나 기적적인 일이 발생하거나 무언가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아빠로부터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믿기지 않아 나중에 문자를 보낸 게 맞냐고 물어봤다.

나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힘든 사람이다. "비합리적인 신념 어떡하죠?"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한 이유도 이런 나의 성향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을 달리 이야기하자면  상담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나는 내 세상을 삐뚤게 바라본다. 그리고 좋은 게 8할이라면 안 좋은 2할을 보며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문자를 받고 나의 반응은 우습게도 이건 아빠가 보낸 게 아니라는 생각과 엄마가 아빠 대신 보낸 것일 거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추측으로 문자 내용을 믿지 않았다. 아니 아빠가 보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의 다음 행동은 엄마에게 전화해 어제 상황을 요약전달하며 엄마가 보낸 문자냐고 물었다. 엄마는 그런 적이 없다며, 아빠랑 너랑 통화한 줄도 몰랐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엄마의 말도 믿지 못했다.


 "아빠에게 어릴 때 많이 맞고 컸어요. 나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인정해주지 않았어요. 지금도 아버지의 말에 상처받곤 해요. 최근에 아빠에게 그런 내 마음을 전화로 이야기했고 미안하다는 문자를 받았어요. 그리고 다시 아빠를 마주했을 때 변화된 건 없었어요. 서로 데면데면해요."

어머니는 한마디로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자식을 위해 한평생 희생하며 그게 삶의 목적인 분, 자신의 입는 것, 먹는 것보다 자식이 좋은 걸 입고 먹고 경험하는 걸 보고 기뻐하는 분이다. 그러나 엄마는 내게 양가감정을 느끼게 한다. 내가 아빠의 문자를 엄마가 보낸 거냐고 물어본 것은 엄마는 나를 통제하는 사람이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여겼다.

 "엄마는 부드러우면서도 절 통제해요. 그리고 저보다 남동생을 더 좋아하고 전 그런 부분에 애정결핍이 있어요."

 "땅이 흔들린다는 건 사실 기초가 흔들린다는 건데 그걸 부모로 볼 수 있죠. 보통 환자들에게 설명할 때 사용하는 표현인데 건물이 흔들린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났군요."

 "그럼 지금 가정에서도 문제가 생길 텐데 어때요?"

 "본 가정에서 경험한 게 새로운 가정에서 표출돼서 저 때문에 갈등이 많았어요. 아이들에게 지시적이고 폭력성, 화도 내고요. 그걸 문제라고 인식하고 상담을 받았어요. 그리고 지금은 화를 내지 않아요. 호르몬 영향으로 감정 통제가 어려울 때가 있지만 마치 나를 제삼자가 되어 바라보듯 제 마음을 제 가정에서 표현해요. 그래서 새로운 가정에서는 상담 이후 제 마음이 안정적이에요."

내 이야기를 들은 의사 선생님은 일주나 이주에 한 번씩 병원에 오길 권하셨고 나는 이주에 한 번씩 나오기로 했다.

 "약만 처방받지 말고 나와서 계속 이렇게 얘기하세요...... 새로운 가정이라..."

집에 가는 길 나는 왜 지금 가정을 '새로운'이라고 표현했는지 생각했다. 비합리적 생각을 하는 가운데에서도 나는 끊임없이 나를 객관화하려고 애쓴다. 그중 하나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 나는 내가 선택한 가정에서 본 가정에서 받은 평가를 똑같이 받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애를 쓰며 살고 지금도 마음의 힘을 내고자 글을 쓴다. 그래서 본 가정과는 다른 가정인 지금 내 가정을 '새롭다'라고 표현하고 싶은 내 무의식이 드러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늘 내 의견을 다 들어주며, 늘 내가 하는 것을 지지해 주며, 늘 긍정해 주는 남편과 어떤 모습이든 그 모습이 최악이라도 나를 사랑해 주는 내 아이들과 그 안에서 안정을 찾고, 내가 나답게 지낼 수 있음을 감사해하고 회복적 삶을 사는 나. 그 가정이 나는 어찌 새롭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이 새로운 가정에서 내 본 가정에서도 새롭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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