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평생 일만 하고 살았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집과 직장만 왔다 갔다 한 삶을 사셨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부모님이랑 여행 다닌 기억이나 지금도 함께 무엇을 한 기억이 별로 없다. 남들은 친정 부모님이 오셔서 함께 식사했다거나 아이들을 돌봐줬다거나 함께 놀러 갔다가 거나 그런 이야기를 할 때 나는 그럴 만한 이야기가 없다. 두 분 다 본인이 사시는 집에서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며, 특히나 아빠는 자기 루틴이 깨지는 걸 싫어하시는 분이라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도 본인의 루틴을 다 끝내고 돌아와 조용히 안방 문을 닫고 계셨다고 들었다. 그런 분들이라 부산에서 떨어진 딸의 집에 오는 걸 하시지 않는 게 당연하게 생각된다. 결혼한 지, 13년 차가 되어가는데 함께 오신 게 2, 3번 정도가 다 일 정도이니....
아버지의 생신이 다가와 한번 집으로 오시라고 초대했다. 당연히 아버지는 거절하셨다. 효율성을 따지는 아버지 입장에선 본인 자신의 루틴을 깨고 올 이유가 없었다. 자기의 루틴이 첫 번째고, 가족은 도대체 몇 번째인 건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조건을 하나 덧붙여,
"아빠 오시면 동탄에 계시는 이모랑 이모부도 우리 집에 오신대요."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일석이조, 효율성을 따졌을 때 괜찮다고 생각하셨는지 오신다고 말씀하셨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바로 기차표를 예약했다. 그리고 이모에게 전화해 그날 우리 집에 와 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이모와 이모부는 우리 부모님보다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와 주시고,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모할머니, 이모할아버지이다. 그래서 흔쾌히 허락하셨다. 그리고 딸 집에 놀러 오지 않는 아버지를 안타까워하셨다.
"평생 그렇게 사셨는걸요. 이젠 성격인가 보다 해요. 서운해도 이제는 받아들여야지 아니면 제가 상처 입어요."
그리고 토요일에 아버지와 어머니, 이모, 이모부가 오셔서 함께 식사하며 즐거운 식사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도 나이가 드셨는지, 내가 상처받은 지난날을 의식하신 건지, 연신 내가 만든 육회를 맛있다며 평소 하지 않은 긍정적인 단어를 쓰며 말씀하셨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1박 2일을 하신 부모님을 다음날 모시고 청남대에 함께 갔다. 초록이 많고, 약간의 산행 코스와 함께 역대 대통령이 별장으로 머물렀다는 풍경 좋은 이곳을 보고 엄마는 굉장히 좋아하셨다. 아빠도 주변 사진을 찍으시며 표정의 변화는 적었지만 괜찮아 보였다. 이틈을 노려서 말했다.
"이번 겨울 방학 때 같이 해외여행 가요. 엄마, 아빠랑 같이 간 적 없잖아요."
작년에 아버지 칠순이라 남동생이 두 분을 모시고 일본을 다녀왔다. 그래서 이번엔 우리 식구랑 같이 나가자고 말했는데 흔쾌히 알겠다고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태어나서 처음을 두 분을 모시고 해외여행을 하게 되어서, 가겠다고 말해줘서 정말 다행이다?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아빠는 알고 계실까? 딸이 이렇게 눈치를 보며 챙겨 드리고 싶어 하는 마음을?
엄마, 아빠는 알고 계실까? 딸이 엄마, 아빠의 사랑을 여전히 갈구하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걸.
나는 왜 이런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붙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오늘펭귄 가족 여행은 초록 햇살 가득하면서도 따가운 햇볕으로 마음 한구석이 따끔거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