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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Mar 25. 2024

상담기록 4. 또 다른 통제

인정 욕구

 "어떻게 몸으로 나타날 수 있죠?"

 "제 몸이 아픈 게 마음이 아픈 거라는 걸 믿을 수가 없어요."

 "저는 자기표현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으며, 내 몸의 상태와 마음 상태의 관련성을 믿지 못했다. 하지만 의사의 소견은 달랐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몸이 아픈 거라 했다. 자기 생각을 표현하며, 사람들과 소통하는 직업을 가졌다고 믿은 나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요즘도 약을 계속 먹고 있나요?"

 "네. 약을 먹으면, 중간에 깨지 않고 잘 수 있어요. 약을 먹지 않으면,  꿈을 많이 꿔요. 반복해서 는 꿈이 있어요. "

 "이야기해 보세요."


  신혼 때부터 꾸준히 꾸는 꿈이 있었다. 전 남자친구에게 버림받는 꿈이다. 임용 시험에 여러 번 떨어지며,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 이별 전화를 받았다. 햇수로 5년 정도 사귄, 전 남자 친구는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려는 그때, 다시 시험을 1년 준비해야 하는 그 시점에 나는 버림받았다고 느꼈다. 내 감정은 말 한마디에 정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세상은 무너지고 변했다.

그 변한 세상에서 나는 아주 하찮은 존재였으며, 절망의 밑바닥에서 나는 막막함을 느꼈다. 사랑도 공부도 나에겐 어려웠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가족은 걱정했다. 사회생활을 먼저 시작한 남동생은 퇴근 후 매일 내 방문을 열어 보며 나의 안부를 물었다. 엄마는 끊임없이 먹을 거를 나에게 줬다. 아빠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남동생을 통해서 들은 아빠의 "우리 집 골칫덩어리 " 이 한 마디가 내 가슴에 박혀 나는 다시 공부하려고 본가를 나왔다. 그리고 임용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나는 나를 스스로 " 골칫덩어리"에 가둬두며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며 살았다. 그래서 나는 그 꿈이 나의 자존감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요. 꿈속에서 그 사람이라고 짐작하는 거죠. 그리고 버림받아요. 전화를 다시 걸려고 해도 전화번호가 생각나지 않아요."

 "전 남자 친구는 엄마가 좋아할 만한 사람이었어요."

 "엄마는 학벌이 좋은 사람을 좋게 생각했어요."

 "아마도 나는 그 사람을 통해서 인정받고자 했던 것 같아요."


 상담자는 엄마에 대해 말해보라고 했다. 여러 번의 상담에서 내가 과거 이야기나 아버지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마다, 생각을 멈추게 하고, 현재의 상황에 집중하도수 유도했던 것과는 달랐다. 나는 엄마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진 이야기가 나왔다.

 "저는 절대 사진을 찍지 않을 거예요."

 "사람들에게 제가 사진전공 했다고 말하지 않아요."

 "사진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선생님은 사진 이야기를 하면서 화가 나있네요, 사진을 계속하지 않는다고 해서 절대 안 찍겠다고 말할 필요가 없는데, 지금이라도 다시 할 수 있는데, 왜 사진에 대한 생각을 억누르고 있죠?"


  그날 상담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직면하고 싶지 않은 생각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나에게 폭력적이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이라면 엄마는 나를 믿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라는 내 생각을 무너지게 했다.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표면적으로 지시와 강압, 통제를 드러낸다면, 엄마는 부드럽게 나를 통제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두 분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안다. 단지 회피하고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살았던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나를 지시적, 통제적으로 다룬 아버지의 폭력에 늘 맞서 싸운 나는 반항적이며 자기주장을 내세우며 굽힐 줄 몰랐다. 반면 엄마 늘 나를 '믿는다'는 말로 엄마의 뜻대로 살기를 원했다. 미술 전공을 꿈꾸며 그림을 그리겠다고 말할 때, 사진을 전공하고 전시회를 진행하며 사진작가를 꿈꾸며 앞으로 나아갈 때, ' 평범하게 살기를 바란다며' 나에게 교육대학원 진학을 권고하셨고, '평범하게 살기를 바란다며'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셨다.


 "엄마가 원하셨던 일을 선택하고 인생살아간 건 저예요."

 "제가 사진 이야기를 할 때 화가 나있다고 인식하지 못했어요. 어쩌면, 내 인생에서 정말 몰입하고 좋아할 일, 사진만 하고 산다면, 결혼을 하지 않아도,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내 삶이 괜찮다고 생각한 그때 그 마음을 저버린 나한테 화가 난 것 같아요."

 

 '인정욕구' 나를 통제하게 한 또 다른 욕였다. 그랬다. 나는 인정받고 싶었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채워지지 않은 인정 욕구 때문에 나는 내 마음을 통제하고, 타인의 마음을 통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 삶에서 자 불쑥불쑥 화가 나고, 자신을 타인에게 이해를 받고자 애쓰며 살았던 것이다.




상담 후 나는 엄마에게 전화하는 일이 부담스러웠다. 날 위해 희생하며, 엄마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자신을 키운 그녀에게 엄마 때문에 힘들었다고. 엄마의 사랑과 인정이 필요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평소와 같이 일상적인 대화를 해야 하는데, 나는 더 이상 평소가 되지 않았다. 아니 되지 못했다.

'마더'라는 단어는 상담을 받는 동안 늘 나를 쫓아다녔다. 그렇게 엄마라는 존재는 내가 거역할 수 없으며 벗어날 수 없었다. 여전히 나는 엄마와 관련된 꿈을 꾸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나의 꿈은 내가 억누르는 감정이며, 해소하지 못한 욕구 또는 욕망이라는 것을.

전 남자친구에게 버림받는 꿈을 다시 꿨다. 그런데 이번 꿈은 달랐다. 그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잘됐네요. 형체가 보인다는 것은 분명히 자신의 욕구를 안다는 것이고, 실체가 없는 것보다 실체가 있는 것이 풀어나가기 쉽죠."


내 꿈이 변하는 것처럼 내 삶이 변하기 시작했다. 꿈을 꾸면 나는 꿈을 해석하기 시작했다. 내가 현재 무엇을 생각하는지, 억누르는 생각이나 감정이 없는지 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꿈은 한 단계씩 나아갔다. 그 사람이 나와 마주 보며 말을 걸었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에게 '거절'을 표시했다.


사진 출처: '난 인 채로 있고 싶은데···' , J. 슈타이너 글, J 뮐러 그림,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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