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사절기 단편모음집

푸른여우, 하루하나 특별편

by 푸른여우

짧은 머리말


이번 달은 절기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차원의 글들밖에 없어서, 아예 1년 동안 쓴 절기 관련 단편을 다 모아 보자는 생각에 특별편으로 편성하게 되었습니다. 대한이 지나면 입춘이 찾아오듯, 소중한 분들께 자연스럽게 좋은 일들이 찾아오기를 기원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26가지 이야기를 준비했어요. Ctrl+F로 원하는 절기를 입력하면 바로 확인이 가능하답니다.)




설날


겨울이 되면 농경신도 자연스레 할 일이 없어진다. 가을에 추수를 마치고, 봄에 다시금 씨를 뿌릴 때까지 신의 입장에서도 겨울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계절인 셈이다. 그래서 설 연휴를 맞아 농경신은 이불 속에 들어가 잠을 자고 있었다. 자명종을 설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얼마나 큰 행복인가. 농경신은 가만히 이불과 물아일체가 된 채로 규칙적인 소리를 내며 기분 좋게 움직이는 시계의 초침을 머릿속으로 그려나갔다.

저녁이나 되어 자리를 정돈하고 어제 먹다 남은 떡국을 다시 끓였다. 그리고는 유튜브를 틀어 놓고 졸린 눈으로 떡국을 먹고는, 옆집과 윗집에 모인 인간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를 함께 들었다. 그러다가 전화가 왔다. 손자의 손자 뻘 되는 아이로부터의 문안 인사였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어, 너도 새해 복 많이 받아. 그렇게 새해 인사를 주고받았는데, 문득 양력 1월 1일에도 이런 인사를 주고받았으니 한 번 더 인사를 주고받는 게 적절한지 의구심이 싹텄다. 그러자 그 아이는, 다다익선이잖아요, 라면서 한 번 더 받으세요, 하고 새해 인사를 또 한 번 했다.

농경신은 그를 집으로 초대해 남은 떡국을 끓여주었다. 별다른 감정에 의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저 떡국이 많이 남았을 뿐이었다. 그 또한 별다른 감정 없이 떡국을 먹었다. 그릇이 비어갈 즈음 그가 옛날 얘기를 해달라고 했다. 옛날이면 어느 정도 옛날? 적당히 옛날이요. 1월 1일에 한 일을 일 년 동안 하게 된다는 미신이 있는 거 아세요? 잘 모르겠는데, 요새는 그런 미신도 있어? 네. 그래서 저는 오늘 하루만큼은 이렇게 화목하게 지내려고요. 신령님 얘기 들으면서. 어째 이용해 먹는 느낌인데? 기분 탓이에요, 기분 탓.

뭐, 어찌 되든 좋았다. 그렇지만 농경신은 떡국을 다 먹고 나서 가만히 생각하기를, 옛날 얘기라고 해도 자신이 살아온 세월이 길어 어떤 이야기를 먼저 시작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 일단 계절 순서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서로 옛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줘야지. 아니다. 계절 당 하나면 너무 적으니까 절기로 따져서 해야겠다. 그 정도면 하룻밤을 지새우기에는 딱 좋을 거야. 그렇게 그날 밤, 농경신은 밤이 깊도록 스물네 개의 이야기를 친히 들려주었다. 그는 단지 이불속에서 흥미진진하게 옛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뿐이었다.




입춘立春


살면서 '절기'라고 하는 것에 그렇게 관심을 둔 아이는 처음 봤다. 작년 여름에 무더위가 끊이지 않아서 내가 '여름 언제 끝나지?'하고 욕을 뱉고 있을 때에는, 그가 '이제 곧 입추라 시원해질 거예요.'라고 이야기했다.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를 달래는 듯한 말투였다. 실제로는 내가 훨씬 연상인데. 그리고 할아버지의 날씨 예측이 언제나 잘 들어맞듯, 날씨는 곧바로 선선해졌다.

"오늘 입춘이래요."

그리고 오늘 아침, 겨울바람이 아직 살벌한 시기에 그가 새로운 봄의 시작을 알렸다. 그 말을 듣고 밖으로 나서니 날씨가 포근해진 것도 같았다. 나는 이따금 그가 날씨를 관장하는 신이 아닐까 상상하곤 했다.




우수雨水


-마음에도 사계절이 있다면, 너는 나에게 어떤 계절을 줄 생각이야?

다만 당신에게 준 계절이 겨울이 아니었기를 바랄 뿐이다. 여름이 아니었기를 바랄 뿐이다. 당신이 준 것처럼 따뜻한 봄을 나는 주지 못했지만, 적어도 혹독한 계절을 주지는 않았기를. 쌓인 눈이 녹아 물이 되는 날씨였다. 지금 그쪽 세계에 내린 눈도 녹았을지, 그런 게 문득 궁금해졌다.




경칩驚蟄


기나긴 잠에서 깨어난 그날은 비가 내렸다. 겨울에는 잠만 잤다. 콧잔등에 맺힌 이슬을 앞발로 훑었다. 나는 동굴 앞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이번 봄은 도무지 버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잠들기 전에 바랐던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우리 일족은 여전히 스스로 먹이를 찾아야 했고, 언제든 더 큰 짐승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었다. 불안을 떨쳐보려 한숨을 쉬었다. 하얀 입김이 나왔다.

"잘할 수 있을까?"

그렇게 중얼거리니, 뒤에 있던 아빠가 말했다.

"작년 이맘때도 그러더니. 재작년, 그전 이맘때도."

"그래요?"

"그럼. 어릴 때부터 그랬어. 그렇게 불안해하고는, 언제든 잘 헤쳐나갔으면서."




춘분春分


어느새 당신이 사는 세계는 밤보다 낮이 더 길어졌다.

어릴 적의 당신은 밤이 일찍 찾아오는 겨울을 기나길다고 느끼며, 방 한구석에서 매일 봄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올해의 당신은 낮과 밤의 시간 차이를 인식하지 못했다. 애써 더 나은 내일이 있을 것이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그냥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찾아서 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게 되면, 그날 저녁에는 먹고 싶었던 것을 먹었다. 누군가가 그런 당신을 보고 시니컬해졌다고 했다. 시니컬해진 당신은 더 이상 봄이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좋았다. 그렇게 어느새 당신이 사는 세계는 밤보다 낮이 더 길어졌다.




청명淸明


-만약에 내가 없어지면, 그때는 저기 옥상에 한번 올라가 봐.

나는 밤길을 걸을 때는 항상 노마의 손을 잡고 있었다. 노마는 도중에 멈춰 서서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높은 건물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비스듬히 올려다본 건물의 옥상에는 외롭게 불빛 하나만이 켜져 있었다. 그러나 그 건물은 폐쇄된 지 오래되었기에 입구가 언제나 잠겨 있었다.

노마는 지병이 있었다. 내가 기말고사를 치던 날에 노마는 조용히 숨을 거뒀다. 나는 노마의 장례가 끝나자마자 도망치듯이 마을을 떠났다. 마을을 떠난 뒤 낮에는 공부를 했고, 밤에는 일을 했다. 여러 일을 전전하다가 끝내는 동네 서점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나는 결국 노마를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노마는 그 마을에서 동네 책방을 운영하고 있었으니까.

그 해 여름에, 나는 서점에서 책 정리를 하다가 밤늦게 돌아왔다. 그날은 노마의 기일이었다. 나는 그것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어느새 평소 가지 않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비탈길을 내려가던 중에 흰색 페인트가 벗겨진 낡은 건물을 발견했다. 그 건물은 검은색 계단이 크리스마스 트리에 걸린 꼬마전구처럼 감겨 있었다. 건물을 둘러싼 나선계단은 옥상까지 이어져 있었다. 나는 홀린 듯이 건물을 쫓아 나선계단에 발을 디뎠다. 한 계단, 한 계단 밟아나갈 때마다 끼익, 끼익 하는 불길한 소리가 고요한 밤에 울려 퍼졌다. 계속 같은 방향으로 돌고 있었다. 마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처럼, 끝없는 계단이 이어졌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숨이 차오르고, 윗옷이 땀으로 젖어갈 즈음 옥상에 다다랐다. 옥상에는 외롭게 전등 하나만이 켜져 있었다. 마치 이곳이 목표지점임을 겨우 표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콘크리트로 된 옥상에 주저앉았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건물들이 무척이나 작게 느껴졌다. 그제야 노마가 했던 다음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만약에 내가 없어지면, 그때는 저기 옥상에 한번 올라가 봐. 여기 있었던 모든 일들이 얼마나 작은 일이었는지를 알게 되면, 슬퍼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슬프더라도, 울지 않을 수 있으니까.


*


긴 시간이 지난 뒤에야 나는 내가 살던 마을로 돌아올 수 있었다. 벌초나 도우러 와라. 여긴 늙은이들밖에 없어서 힘들다. 오랜만에 전화를 하신 책방 아저씨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 말에는 그런 뜻이 담겨 있었다. 말도 없이 떠난 데에 대해서는 아무 책망도 하지 않을 테니, 늦기 전에 한 번은 마을로 와라. 보고 싶다는 말이 서툰 아저씨들은 가끔 누구보다도 비유를 선호하시곤 했다.

그리고 아저씨는 말했다. 노마가 나에게 묘비에 쓸 문구를 부탁했었다고. 나는 그 말을 들은 다음 날, 연차를 내고 기차를 예약했다. 햇빛이 선명한 어느 봄날이었다.


며칠 동안 나는 책방 2층에 있는 아저씨의 작업실에서 지내게 되었다. 아저씨가 하루 정도 마을로 나가 있는 사이, 나는 밤새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노마는 나에게 부탁했다. 긴 시간 동안 남을 자신의 마지막 말을.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에서, 나는 노트에다가 노마와 나눴던 이야기들을 밤새 끄적여 갔다. 그러나 어떤 말도, 노마의 삶을 나타내기에는 분명하지 않은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새벽빛이 창가에 드리울 즈음에, 나는 노마와의 어떤 기억을 떠올렸다. 어느 날 저녁. 노을이 금빛으로 물드던 때에 우리는 강변에 앉아 있었다. 노마가 병원에서 좋지 않은 소식을 듣고 온 날이었다. 나는 눈치 없이 무섭지 않으냐고 물었다. 노마는 웃으며 대답했다. 무서워. 그 말에 내가 또 눈치 없이 말했었다. 근데 어떻게 웃고 있어. 그러자 노마는, 그날 유독 하얗게 보였던 손으로 턱을 괴며, 어쩌겠어, 하고 그렇게 말했다.

-지구의 절반은 밝고, 절반은 어둡대. 그러면 한평생 밝은 부분만 얘기해도 시간이 모자라잖아. 그러니까 앞으로, 필요하게 어두운 얘기는 안 하게.

병원 나오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 노마가 나를 보며 웃었다. 나는 그 옅은 미소를 오랫동안 가슴속에 품고 있었을 터였다. 그걸 맨 마지막에 떠올린 자신이, 무척이나 미웠다.


다음날, 나는 아저씨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아저씨는 멋들어지게 문장을 만들어 대리석을 잘 다루는 이웃에게 부탁하셨다. 얼마 후, 잘 정돈된 무덤의 앞에 조용히 비석이 놓였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노마에게 절을 올렸다. 두 번째로 고개를 숙였을 때 속으로 자신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뭐가 무섭고 두려워서, 여태 여기에 오지 못했을까. 엎드린 채로, 나는 눈물이 서린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아 오래도록 고개를 들지 못했다. 노마의 말마따나, 너무나도 맑은 햇빛이 이 산 전체에 드리워 있었다. 마치 내 안에 있는 어둠도 물리쳐주려고 하려는 듯이.

그날 밤 나는 돌아오는 기차에서 잠에 들어버렸다. 꿈에서 나는, 곤히 누운 노마의 머리를 무릎에 벤 후 조용히 말했다. 나는 여기에 있어. 노마는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자고 있었다.




곡우穀雨


비가 몹시 내리던 어느 밤이었다. 배수 기능이 잘 작동하지 않았던 것인지, 세상이 약 2cm 정도 물에 잠겨버렸다. 그냥 걸어 다니면 신발이 젖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맨발로 다니기에 아스팔트 바닥은 무척 위험해 보였다. 그녀는 고민 끝에 구두를 한쪽만 벗기로 했다. 어느 집의 바퀴 달린 의자가 그녀의 집으로 떠밀려 온 참이었다. 신발을 신은 쪽의 다리를 의자에 올리고, 킥보드를 타듯 밖으로 나아갔다.

내리막길을 주욱 내려가다가 어느 잔디광장에 도착했다. 구획이 나눠진 논처럼, 가로세로로 대리석 길이 깔린 정갈한 광장이었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가로등 불빛 아래로 누군가가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광장 정중앙에서. 플리츠스커트의 밑자락이 빗물에 젖는 것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녀는 물살을 가르며 정중앙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누군가를 애도하고 있는 이의 옆에다가 바퀴 달린 의자를 멈춰 세우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나를 위해서도 애도해 줄 수 있어? 그러나 상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이 자신을 위한 애도라고 생각하고 만족하기로 했다. 긴 시간이 지나 기도하던 이가 고개를 돌렸을 때, 거기에는 바퀴 달린 의자만이 남아 있었다. 세상은 아직 물에 잠겨 있었다.




입하立夏


가장 어렸을 때의 기억을 찾아나가다 보면, 나는 세 살이 되던 해 어린이날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그날 나는 접이식 핸드카트에 탄 채로 쭈쭈바를 먹고 있었다. 오렌지맛의 내용물이 입안을 차갑게 식히고 있었다.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나왔을 아버지는 카트를 손으로 끌며 동물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떤 동물을 봤는지, 하물며 어디에 있는 동물원이었는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이제는 머리가 하얗게 새신 아버지께 그 이야기를 드렸다. 아버지는 담장 벽에 무리를 이룬 담쟁이덩굴에 시선을 두셨다. 담쟁이 잎들이 눈부신 햇살을 반사하면서 더욱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아직 5월이었다. 그러나 날씨는 벌써 여름에 접어든 듯했다.

"그때도 오늘처럼 엄청 더웠지. 아빠도 기억나네."

그러나 그 더위를 떠올리는 아버지는 웃고 계셨다. 여름이었다. 나는 어디서 처음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그 유행어를 속으로 말해보았다. 그 말은, 지금부터 시작될 찝찝한 더위마저도, 나중에 하나의 추억이 될 거라고 속삭이는 듯한 묘한 말이었다.




소만小滿


축제 열기가 도서관 안으로까지 스며들고 있었다. 조용했던 근처 도로가 오늘은 시끌벅적했다. 어느 대학교에 어떤 연예인이 오는지에 대해 커뮤니티에 개개인의 추리가 연달아 올라오고 있었다. 퇴근할 준비를 마치면서, 그녀는 '선생님은 좋아하는 연예인 없으세요?' 하고 물었다. 선생님이라고 불린 여자는 에어컨 리모컨의 건전지를 갈아 끼우고 있었다. 그리고 무심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은 다 죽더라구."

그건 꼭, '내가 응원하는 야구팀은 맨날 꼴찌더라.'라는 식으로 하나의 징크스를 얘기하는 듯한 말투였다. 그러나 의미는 달랐다.

그녀는 이럴 때마다 자기를 백 년 넘게 살아 있는 뱀파이어라고 지칭하며, 마치 괴담을 들려주듯이 이야기했다. 그러므로 저 이야기는, 늙지도 않는 자신보다 먼저 죽어버린 옛날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리라.

그런 선생님의 밑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던 그녀는, 선생님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겉으로는 수긍하는 척하더라도, 속으로는, 나보다 나이도 많으면서 왜 저러실까, 하고 안쓰러워하는 눈빛을 숨기지 못했던 것이다.

"이 시기에 축제를 한다는 것도, 지금 생각하면 되게 신기해."

뱀파이어가 입을 열었다.

"왜요?"

또 옛날 얘기인가 보다,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맘 때는 보릿고개였거든."

"보릿고개는 겨울 아니에요?"

"아니. 벼는 가을에 수확하고, 보리는 여름에 수확하니까. 여름이 시작될 즈음에는 먹을 게 없어져. 가장 굶게 돼. 그래서 여러 사람도 죽고."

뱀파이어는 속으로 회상했다. 먼 옛날, '배고픔'으로 이웃이 굶어 죽는 것을 그녀는 몇 번이고 봐왔다. 살아남기 위해 나무껍질을 뜯어서 먹었다. 그래.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가끔 자신이 겪은 일들이 모두 꿈이 아닐까 생각했다. 자신은 정신에 문제가 생겨서 스스로를 늙지 않는 뱀파이어로 착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런 기대는 몇 년째 기대로만 남아 있었다.

배고픔으로 죽기 직전인 친구의 집을 찾았을 때, 그 친구는 자신의 손목을 깨물었다. 그 깨무는 정도가 너무 심해 그대로 피가 새어 나올 정도였다. 친구의 매서운 눈빛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원망이 담겨 있었다. 자신에 대한 원망인지,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계절에 대한 원망인지는 알 수 없었다.

뱀파이어는 어느 날인가 꿈에서 친구의 말을 들었다. 어디 한 번 영원히 이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살아 봐. 친구는 죽었고, 나이는 그해부터 멈췄다.

수백 개의 계절이 지나고, 전쟁이 끝났고, 배고픔을 어느 계절이든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 왔다. 지구 반대편에서 아직 배고픔을 느끼는 이들에게 지원금을 보내줄 수 있는 세상이 왔다. 그리고 그 세월들을 바쁘게 보내고 드디어 여유를 찾은 지금, 즐거운 일들이 즐겁지 않기 시작했다. 일기를 안 쓴 지도 오래되었다. 일기를 쓰면 하루하루가 오래가니까.

축제 같은 걸 가보지 않은지 꽤 되었다. 무언가의 팬이 되어본지도 꽤 오래되었다. 끝나지 않는 수명을 끝나지 않는 것으로 단지 인식할 뿐, 그것을 축복으로도 저주로도 여기지 않은 채 옛날이야기를 고장 난 카세트테이프처럼 반복했다.

카세트테이프......? 그것도 이제 구시대의 산물이다. 세상이 너무 빨라.

"축제, 안 가실래요?"

이야기를 듣던 그녀는 뱀파이어에게 물었다. 누구보다도 즐겁고 싶은 사람들이, 흥미 없다는 듯 시시콜콜한 얘기를 늘어놓는 모습을 그녀는 이미 많이 봐왔다. 그래서 이런 즐거운 날에 아픈 얘기를 꺼내는 것이리라. 그녀는 더 이상 늙다리의 입에서 옛날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팔을 잡고 물었다.

"오늘 하이라이트 오빠들 온대요."

"나 같은 할머니 끌고 가서 뭐 하게."

"제가 하는 게임에서는 오백 살 넘는 엘프도 나와요."

도대체 무슨 게임을 하는 거야. 뱀파이어는 어리둥절하면서도, 그녀의 손을 떨치지 못하고 오랜만에 대학 축제를 갔다.

그날은, 최근 삼십 년 간 즐거운 일이라곤 하나도 없었던 그녀의 일상에서, 오랜만에 일기에 남기고 싶었던 충만한 하루였다.




망종芒種


힘들어서 더 이상은 걸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밭 한가운데에 주저앉아버렸다. 추수가 끝난 보리밭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더운 날에, 하필 우리는 왜 도망치기로 결심했을까. 그나마 위안인 것은, 이미 해가 져서 뙤약볕 아래를 걷지는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눈치 없이 달려드는 모기 몇 마리를 손으로 잡으며 둘은 잠시 쉬기로 했다.

아빠 이거 봐요! 자신처럼 한참 굶었을 소년이 밭 한 귀퉁이를 보며 외쳤다. 아픈 무릎을 부여잡고 걸어가니 베지 않은 보리가 몇 개인가 남아 있었다. 풋보리였다. 둘은 보리밭주인이 오기 전에 그 풋보리라도 입에 넣고자 했다. 아빠라 불린 사람이 갖고 있던 라이터를 켜서 풋보리를 그을렸다. 부스럭, 부스럭. 검게 그을린 풋보리를 두 손으로 비비며 두 사람은 이따금 피어오르는 탄내에 기침을 했다.

두 사람은 오늘 처음 보는 사이였다. 한 명은 이혼을 한 중년 남성이었고, 한 명은 가출 청소년이었다. SNS에서 가족을 구하다가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끝에 직접 만나기로 했다. 이른 아침에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나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른 채 계속 이동했다. 인스타에서 본 프로필 사진이랑 실제 인물이 너무나도 다른 두 사람이었다. 필터의 힘은 대단하네요, 둘은 어울리지 않는 사진을 서로 놀리면서 나름 시간을 때웠다. 서로 한 번도 불러본 적 없는 아빠, 아들이라는 호칭을 써보기도 했다. 그 외에 다른 호칭이 떠오르지 않았던 탓도 있었다.

그들은 제각기 놓인 상황으로 인해, 밤마다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상상을 자주 하곤 했다. 그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을 바에야 직접 벼랑 끝에 서기로 결심했다. 꼭 죽기로 결심했다고 해석하기는 애매했다. 그냥 자신이 벼랑 끝에 내몰리기를 누군가가 바라는 것만 같아, 그래, 그럼 내몰려줄게, 하고 승낙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짐이라고는 편도로 가는 버스표 하나만 챙기고, 집도 몇 채 없는 휑한 논밭에 내렸으리라. 배가 고파 죽는 것이 가장 괴로운 죽음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한 채.

다행히 들판에 기적처럼 남아 있던 풋보리 몇 개를 그을려 먹은 탓에 배고픔이 조금은 달래졌다. 배고픔을 달래자 재로 검게 더럽혀진 두 손이 눈에 보였다. 두 사람은 어느새 자신들의 손이 더러워진 것이 슬프고 짜증이 나서, 참았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조용했던 논밭에서 두 사람은 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들은 옷에 재가 묻는 것도 개의치 않고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눈물 콧물을 질질 짜면서. 그것이 풋보리를 태울 때 나온 연기를 들이마신 탓이라고 겨우 둘러대면서.




하지夏至


너는 좀 재미없어.

이별의 이유란 정말 하찮은 것이었다. 왜 헤어지자는 건지, 그 이유도 묻지 못한 채 고개만 숙이는 나를 앞에 두고 남친은 자기 할 말만 했다. 재미없다. 그게 이유였다. 내가 무슨 네 광대야? 그렇게 화낼 수 있었다면 좋을 텐데, 화를 별로 내지 않는 나의 끓는점에 그 사람은 아슬아슬하게 도달하지 않고 적정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내가 오늘 아침 예상했던 문구들, 예를 들면 '우린 사랑해서 헤어지는 거야'라든지, '내가 준 선물 다 돌려줘'라든지 하는 문구가 나왔다면 나는 화를 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문구가 나오면 화를 내기로 결심했으니까.

그러나 참 기묘하게도 그 사람은 전혀 예상치 못한, 그러나 무의식 중에 내가 인지하고 있었을 콤플렉스를 건드렸고, 나는 덕분에 아무 말도 못 하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우리는 어째선지 학교 모래밭 위에 서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일 때문에 돌아가야 한다고,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핑계를 대고 저만치로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냥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전화가 걸려 왔다. 나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자판기를 발견하는 꿈을 꾸고 있었다. 자판기를 발견하고 부리나케 지갑을 열었으나, 현금이 없어서 목말라 죽는 꿈이었다. 잠에서 깬 곳은 초등학교 벤치였다. 옆에서 수위 아저씨가 얼굴을 찡그리며 서 있었고, 나는 계속 울리는 휴대폰 화면을 보고, 모르는 전화번호임을 신경 쓰지 못한 채 그대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수화기 저편에서 누군가가 울음을 참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누구누구가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장례식장의 위치를 알려줄 테니 꼭 오라고 이야기했다. 전화 잘못 거셨는데요, 라는 말을 선뜻하지 못했다.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내가 내뱉는 모든 말들이 재미없게 느껴졌다. 관객 중 누군가가 야유를 보내는 것을 눈치챈 소심한 코미디언처럼, 자신감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의 말에 단호하게 거절도 못하고, 네, 네, 하고 어떻게 돌아가시게 되었는지까지 들어버렸다. 마지막으로 그 사람이 덧붙였다. 나 안 울어, 나 부모님 돌아가실 때도 안 울었는데. 전화를 건 사람은 계속 울음을 참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먼 길을 돌아왔다. 나는 스스로 멀쩡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무덤덤하게, 눈물을 흘리지도 않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떨어진 식재료를 좀 사고, 빵집에서 빵도 몇 개 사고, 마감 기한이 아직 남은 과제들을 몇 개인가 미리 끝내놓고, 잘 시간이 되어 침대에 누웠다.

그러나 이상했다. 눈앞이 이상하리만치 밝았다. 정신이 멀쩡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창밖에서 아직도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미 잘 시간 아닌가? 손목시계는 1시로 찍혀 있었다. 오전 1시인지, 오후 1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보다 시계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축축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땀에 젖은 블라우스를 벗지도 않고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찝찝했다. 나는 블라우스를 벗고 샤워를 했다. 그래도 밤은 찾아오지 않았다. 이번주는 장마라고 했는데, 비도 오지 않았다. 하늘이 기분 나쁠 정도로 맑았다.

머리를 자르고 싶었다. 긴 머리가 어깨까지 닿았다. 실연당한 사람들이 머리를 자르고 싶어지는 이유가 이런 거겠지, 싶었다. 그냥 밀어버리고 싶었다. 전부 다. 겨울에 헤어지는 사람들도 이런 찝찝함을 느낄지는 모르겠다. 누군가 통계 자료를 내줬으면 좋겠다. 계절별로 실연하는 커플을 대상으로 한 미용실 이용 빈도 증가 여부 같은 거. 다음 과제 주제로 하는 건 어떨까? 하, 하. 재미없다.

부고 문자가 휴대폰으로 날아왔다. 이름 모르는 중년 아저씨가 돌아가셨다. 어쩌다가 나에게 전화가 왔을까. 어쩌면 내가 모르는 먼 친척의 죽음일지도 몰랐다. 가족에게 물어보지는 못했다. 무언가 언어를 만들어내는 게 무척 하찮은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동시에 마음 안쪽에 안 좋은 무언가가 계속 쌓여가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그와 반대로 울음을 참고 있던 상주의 목소리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왜 그 상황에서도 그 사람은 울지 않고 있었을까. 그래도 가기로 했으니까, 밤이 되면 가봐야지, 밤이 되면...... 그러나 수화기 너머에서 마지막으로 들렸던 말이 마음에 걸렸다. 내 시계가 이상한 것 같아...... 시간이 안 가...... 시계가 계속 그 자리야......

나는 밖으로 나섰다. 밖은 여전히 더웠다. 시계는 이제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여전히 밤은 찾아오지 않았다. 지구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확실히 가고 있었다. 진짜로? 시간은 확실히 가고 있는 거 맞아? 지금까지 봐온 시간들은 손목시계로 잠깐 본 시간이었잖아. 내가 시계를 볼 때마다, 정지된 시간이 무작위로 표시되고 있는 걸 수도 있잖아.

이런저런 상상을 미용실 의자에 앉을 때까지 이어나갔다. 어떻게 해드릴까요. 나는 그때도 정지된 시간을 떠올리다가, 이내 대충 잘라달라고 이야기했다. 싹둑, 싹둑,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떨어져 나갔다. 뒤에서 미용실 사장님의 두 아들이 틈날 때마다 울어댔다. 아이들은 사탕이 먹고 싶다는 이유로 미용실이 떠나가게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은 자신이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울음으로 그것을 표현한다고 했다. 커트는 오래 걸렸다. 오래 듣고 있기에 귀가 아플 정도로 아이들은 신나게 울어댔다. 커튼, 커튼 좀 쳐주세요. 그러나 내 목소리가 작았나 보다. 아이들의 울음소리에 내 요청이 묻혔다. 나는 화가 나지는 않았다. 아이가 우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다. 단지 저렇게 울어도 괜찮은 나이대가 부러웠다. 마음껏 울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로, 돌아가고 싶은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러운 감정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지금 내 나이는, 마음껏 울면 이상한 나이인가. 사실 마음껏 울어도 되는 나이였던 것은 아닐까.

머리는 그지같이 잘렸다. 나는 적지 않은 돈을 내고 밖을 돌아다녔다. 그다음 손목시계를 봤을 때 시계는 또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휴대폰을 켜자 마찬가지로 4시였다. 휴대폰이 꺼지자 검은 화면에, 그지같이 잘린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무언가 참을 수 없는 감정을 느껴 발걸음이 빨라졌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제대로 씻겨나가지 못한 머리카락이 뒷덜미를 찌르며 나를 괴롭혔다. 방금 샤워했는데, 옷이 또 땀으로 젖기 시작했다. 아직도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괴로웠다. 사람 많은 길로 들어서자 이런저런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코인노래방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다, 노래방은 옆방에서 뭘 하는지 들리잖아. 집으로 돌아갈까, 집은 방음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러면 어디로 가야 해. 어디로 가야 좀 태양을 피할 수 있을까. 내가 무슨 가수 비도 아니고. 하, 하. 재미없어. 다 재미없어. 다 재미없으니까 제발, 기우제라도 할 테니까 제발, 누가 나 좀.

나는 어느새 장례식장으로 향해 있었다. 거기에 찾아가기까지의 기억은 없었다. 나는 이름 모를 누군가의 영정에 두 번 절을 하고, 아직 울음을 참고 있는 상주의, 어디서 오셨냐는 물음에 답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서 울음을 터뜨렸다. 아아악, 흐윽, 허으윽...... 숨이 넘어갈 정도로 쏟아지는 서러운 통곡에 덩달아 상주도 참고 있던 눈물을 터뜨렸다. 한동안 우리는 서로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서로를 부둥켜 울었다. 재미없을 정도로 긴 시간 동안 울고 난 뒤에야, 하늘은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소서小暑


장마철이었다. 우리는 가게 천막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나 마음에 비가 내려."

"우산을 써."

"마음에 우산을 어떻게 써."

"나야 모르지."

지금도 우산이 없어서 너랑 있잖아, 그 사람이 웃었다.




대서大暑


정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동생이 한 손에는 촛불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책 한 권을 펼쳐서 보여주고 있었다. 옛날 사람들이 남긴 '더위를 없애는 방법'이 적혀 있었다. 솔밭에서 활쏘기, 연못의 연꽃 구경하기, 비 오는 날 한시 짓기...... 옛날 사람들은 이런 행위만으로도 더위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인가. 선풍기고 에어컨이고 없던 시대에는 획기적인 방법이었을지도 모르나, 요즘 사람들에게는 궁상맞은 행위일지도 몰랐다.

냉장고가 멈췄다는 사실을 알자, 동생은 옆에서 이런 지식도 알려줬다. 형, 옛날 사람들은 겨울철에 꽁꽁 얼어붙은 한강물을 석빙고에 넣어서 그걸 여름까지 썼대. 자신의 지식을 늘어놓는 동생을 옆에 두고, 나는 단수가 되기 전에 허겁지겁 물을 받아두었다. 그로부터 한 시간이 지났다. 벌써 전기가 돌아오고도 남을 시간인데, 아직도 세상은 깜깜했다.

휴대폰을 이따금 켜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전기가 복구될 기미는 전혀 없었다. 나는 단념하고 거실에 누워서 이따금 불어오는 여름 바람에 촛불이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책을 읽고 있는 동생을 물끄러미 봤다. 눈 나빠진다, 그렇게 얘기해도 동생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방금 본 더위를 없애는 방법 맨 마지막 문장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달밤에 개울가에서 발 씻기. 달밤에 개울가. 거기에 왜 이리 마음이 끌리는지 생각해 보면, 근 몇 년 간 일만 하느라 여름에 물놀이 한번 제대로 못 간 탓이다.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요 몇 년 간 나는 동생을 굶기지 않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고, 정작 내가 일을 나가 있는 사이에 동생이 집에 혼자 있다는 생각은 못했다. 정전이 일어나고, 깜깜해진 공장 안에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어진 우리에게 조기 퇴근 명령이 내려졌을 때, 나는 오랜만에 깨어 있는 상태의 동생을 만날 수 있었다. 동생은 어디서 촛불을 발견해 켜놓고는 책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동생은 워낙 내성적인 성격에 놀러 가자는 말도 못 하고, 조심스레 더위를 없애는 방법이 적힌 페이지를 나에게 보여줬다. 아마 뭐라도 말을 섞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눅눅한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책을 읽고 있는 동생에게 말을 걸었다.

"나갈까?"

어디로? 라고 말하고 싶은 듯한 눈치로 동생이 나를 쳐다봤다.

"멀리는 못 가고. 요 앞 청계천이라도 나가자."

처음에는 무덤덤한 줄 알았더니, 동생은 이내 일어나서는 바삐 방으로 달려가 나갈 채비를 하고 돌아왔다. 나는 수건 두 개에 방금 받아놓은 물을 적셔서 하나는 동생의 목에 걸어주고, 다른 하나는 나의 목에 걸었다. 한참 뛰어놀 나이에 집에만 갇혀 있는 것이 얼마나 고역인지를 나는 알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인천 앞바다까지 가고 싶었지만, 시간은 이미 아홉 시가 가까웠고, 전기는 금방 돌아오면 내일 아침부터는, 언제나처럼 나는 깨어 있는 동생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밖으로 나오자 달은 저만치 떠 있었다. 깜깜한 세상에서 달을 올려다보던 동생이 아얏, 하고 눈을 가렸다. 달이 밝으면 얼마나 밝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하늘을 올려다보던 나도 이내 눈이 멀 것 같아 고개를 숙였다. 출근할 때 쓰던 스쿠터의 뒷좌석에 동생을 태웠다. 연료가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왕복할 정도는 되겠지. 라이트를 켜고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속도가 점차 빨라졌다. 평소보다 더욱 확보되지 않는 시야에 사고가 날 뻔도 했으나, 속도를 줄이지 못했다. 동생이 혼자 있었을 시간들이 자꾸만 나를 재촉했다.

얼마 후 청계천에 도착해, 우리는 조심스레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동생은 갑갑한 헬멧을 벗고 땀에 젖은 머리를 이리저리 흩날렸다. 동생은 냇가로 조심스레 달려가서는, 마치 바다에 처음 놀러 간 어린아이처럼 이내 신이 난 듯 이리저리 물장구를 쳤다. 튀기는 물방울이 달빛을 반사했다. 어슴푸레 보이는 동생의 미소를 나는 가만히 쳐다보며 냇가에 발을 담갔다. 세상은 여전히 어둠에 휩싸여 있었고, 동생을 비추는 달빛은 꼭 연극 무대의 스포트라이트 같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 더위를 버텨야 할까. 언제 전기가 돌아올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단지 동생의 저 미소를 언제까지나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것뿐이었다. 열대야에 미지근해진 수건으로 나는 얼굴을 닦고, 흐르는 냇가에 그것을 다시금 적셨다.




입추立秋


마을 사람들이 신당 앞으로 모여들어 농경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농경신은 또 나만 갖고 그런다는 생각을 겨우 감추고는, 무슨 일로 이렇게들 찾아왔는지를 물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마을 사람들은, 입추가 며칠 지났음에도 날씨가 시원해지지 않는 것을, 농경신인 자신에게 따지러 온 것이었다. 무리 중 한 명이 고개를 숙인 채로, 그러나 강인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신께서는 여름이 끝나지 않는 이유를 알고 계시나이까."

"나는 날씨를 관장하는 신이 아니라서, 자세한 연유는 모르네."

"신께서 문 앞에 써붙이신 종이를 보십시오. 거기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오늘은 초복이니 삼계탕을 갖다 바치게'라고."

그러고 보니 확실히 그랬다. 초복에 자신은 왠지 모르게 삼계탕을 공양받고 싶었다. 그래서 농사가 잘 되기를 바란다면 자신에게 삼계탕을 바치라고 이야기했다. 중복이 지나고 입추가 지날 때까지, 여전히 그 종이는 문 앞에 붙어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남자가 말했다.

"신께서 쓰신 종이에 계속 오늘을 초복이라고 지칭하셨으니, 계절신께서 문 앞에 붙은 종이를 보시고는 아직 여름인 줄 알고 돌아가신 것임이 분명하옵니다."

"허, 허튼소리를!"

농경신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순간 큰 소리로 화를 내긴 했으나,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님을 깨달았다. 자신은 신이었다. 신이 하는 말은 보통 사람들이 예상할 수 없는 효력을 발휘하곤 했다. 농경신의 머리에, 매일 밤마다 가을신이 문 앞까지 왔다가 돌아가는 장면이 떠올랐다. 주먹을 쥔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농경신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흘깃, 흘깃 잠깐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숙이며 자기들끼리 쑥덕거렸다.

농경신은 부끄럽기도 하고, 또 매번 자신을 몰아세우는 마을 사람들에게 화가 나서, 문 앞에 붙인 메모를 주욱, 뜯어낸 후, 그것을 구깃구깃 뭉쳐서 마을 사람에게 던졌다.

"이러면 됐지! 이러면! 왜 맨날 나만 갖구 그래! 이런다고 날씨가 좀 시원해질 것 같아? 다 지구온난화 때문이야! 다! 내가 고작 글 하나 잘못 써붙였다고 계절이 안 바뀌었겠어? 어? 다들 나가! 꼴도 보기 싫어! 애초에 니들이 삼계탕을 한 번이라도 바쳤으면 내가 저걸 놔뒀겠냐! 그렇게 오래 써붙였으면, 한 놈은 사서 바칠 줄도 알아야지! 다들 나가! 어디 오늘 밤부터 편하게 잘 수 있나 두고 보자!"

그러나 그날 저녁부터 계절은 가을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오랜만에 선선해진 날씨에 조금은 편안히 잠에 들었다. 방황하던 계절신이 드디어 가을을 가져다준 것이었다.

그해 농사 또한 무사히 해결할 수 있었는데, 그날 밤 마을 사람 몇 명이 돈을 모아 삼계탕을 사서 바치며 농경신을 위로했기 때문이었다. 이번만, 봐줄게. 낮에 화낸 것이 부끄러웠던 농경신은 그 자리에서 묵묵히 닭다리를 물었다는 모양이다.




처서處暑


항상 방학의 존재 의의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여름이 끝나고 드디어 밖에 나가 놀 수 있는 날씨가 되면 어김없이 방학도 같이 끝나버리곤 하니까. 결국 방학이라는 건 날씨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자가 격리 기간 같은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방학 때도 학교에 나와서 밤까지 자습을 하는 우리는 뭘까? 고3 여름방학이 거의 끝나고 있었다. 우리는 창문에 몸을 기대고는, 시원한 듯 시원하지 않은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 아빠 요새 담배 피우신다고 밤에 자주 나가셨거든."

"많이 힘드신가 보네."

"근데 어제 경비실에서 전화가 왔단 말이야."

"왜. 담배 냄새 때문에?"

"아니. 놀이터에 있는 트램펄린을 몰래 타고 계셨던 거야. 밤마다."

"그건 무섭긴 하겠다."

그리고 잠시 동안 우리는 다시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습은 앞으로 30분 남았다. 내일도 어김없이 학교에 나와야 한다.

"방방이나 타러 가자. 내일. 방학 끝난 기념으로."

"좋지. 근데 우리 고딩인데 받아주긴 할까?"

"안 되면 성인용 방방 찾아보지 뭐."

"성인용 방방이 있어? 이름만 들으면 되게 선정적인데."

"찾아볼게...... 와 있긴 있네. 코엑스에 있대. 한 시간에 만 오천 원."

"겁나 비싸. 거긴 얼린 요구르트도 안 팔겠지?"

그날 우리가 여름의 끝자락에 했던 일은, 고3 수험생이 받을 수 있는 사회적 혜택을 인터넷에서 모조리 긁어모으는 일이었다. 여름에 놀지 못한 모기가 가을에 활개를 치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가을이 되면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데, 이날도 자습 중에 모기에 물린 걸 보면, 지구온난화가 심각하긴 한가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로白露


"옛날에 어머님들은, 직접 입으로 포도 껍질이랑 씨를 발라서 자식에게 먹여주셨다구. 그렇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포도지정(葡萄之情)이라고 해. 포도지정을 잊지 말길 바라."

그러나 고문헌을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말을 찾을 수는 없었다. 여러 신문 기사와 칼럼에서 출처 언급 없이 '옛날에 이런 말을 썼다'라고 두루뭉술하게 언급하고 있을 뿐이었다. 출처나 유래를 알 수 없다는 유령 한자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무수한 한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어느새 생성되어 버린 한자처럼, 이 '포도지정'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인지.

이 시기를 조사해 보면 유난히 포도와 관련된 얘기가 많았다. 포도순절(葡萄旬節). 백로에서 추석까지를 이르는 말. 포도지정(葡萄之情). 어머니가 입으로 포도의 씨와 껍질을 발라내어 아이에게 먹여주던 정. 그러나 둘 다 고문헌에서 찾아볼 수 없는 말이다. 그럼에도 검색해 보면 뉴스 기사에는 나온다. 과거 어느 때 실제로 존재했는지 알 수 없는 말. 이 단어를 처음 수록한 사람은 그 단어를 실제로 들은 것일지, 들었다고 착각한 것일지, 아니면 자신이 만들어낸 것일지.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포도지정을 잊지 말길 바라. 나는 다른 의미로 그 단어를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추분秋分


"접니다."

그 말에 국왕은 아무 말도 않은 채, 입에 갖다 댔던 차를 탁상 위로 내려놓았다. 자수의 말을 뱉은 관원을 보는 눈빛은 얼핏 다정해 보였으나, 자세히 보면 눈동자에는 증오의 감정이 서려 있었다. 이윽고 국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 쪽으로 몸을 돌린 채 말을 이었다.

"추분도 되었으니, 반란을 꿈꾼 관원들을 참수하라고 자네에게 지시했네. 봄에 조사하기로 반란자는 총 여섯 명이었으나, 붙잡힌 관원은 정작 다섯 명이었지. 아무리 그들을 고문해도 남은 한 명의 이름은 끝끝내 나오지 않았는데. 방금 자네는, 그 마지막 한 명이 자신이라고 밝혔어. 이유가 뭔가."

관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을 체념한 표정으로 정면을 보고 있을 뿐이다. 자신들이 도모했던 반란이 봄에 한 차례 꺾였을 때, 붙잡힌 동료들은 운 좋게 체포되지 않은 자신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떤 끔찍한 고문을 겪으면서도 끝끝내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고문 현장에는 자신도 참석했다. 피 흘리는 동료들의 옷에 꽃잎이 흩날렸다. 혼자 남은 그는, 다음 계절에는 세상이 나아져 있기를 빌었다. 한 번도 임금이라 여긴 적 없던 이 자에게 천벌이 내려지기를 빌었다.

그러나 세상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자신의 우유부단함을 직면하게 되었다. 자신은 반란을 실행에 옮길 수 있을 정도로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바로 결단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봄, 여름, 초가을에 이르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었다. 기도. 언젠가 저잣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거지가 '도와주신다면 기도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했을 때, 자신은 그 거지를 경멸하지 않았던가.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지금, 그렇게 따지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다.

어느새 자신은 그 자의 최측근에서, 권력에 누구보다 앞잡이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무고한 죄로 옥에 들어가는 이들은 늘어갔고, 그 사이에서 옥에 갇힌 동료들에게 식사량을 좀 더 늘려주는 식으로 자신이 선행을 하고 있다고 믿고 싶어 했다. 이러다가 언젠가 풀려나겠지, 영웅이 나타나주겠지. 하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형 집행은 추분 이후에 실시한다. 그렇게 추분이 되었다. 다섯 명의 동료는 반란을 도모했으나 바로 죽지 않았다. 남은 한 명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도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목숨을 유지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반란을 달성하지 못한 분노로 몇 달을 지새웠다. 그리고 어제, 날씨가 부쩍 선선해진 어제, 결국 사형을 집행하라고 명령이 내려왔다. 처음에는 자신을 마지막 남은 한 명의 반란자로 의심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잠들지 못한 채로 새벽녘이 되어서야 그것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선택지임을 알았다. 너의 손으로 너의 우유부단한 삶에 마침표를 찍어라.

그리고 하늘이 너무나도 높아 보이는 오늘, 그는 자신이 마지막 남은 한 사람임을 시인했다. 그리고 왕은 왜냐고 물었다. 등에 숨긴 활을 움켜쥐었다. 그간 잃어버렸던, 아니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싶었던 그 활을 다시 꺼내 들었다. 지금부터 밤은 더 길어질 것이다. 밤이 더 길어지기 전에 이 어중간한 인생에 마침표를 찍자. 그는 단지 우스갯소리를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말했다.

"가을걷이는 하고 죽어야겠다 싶어서 말입니다."




한로寒露


"저걸 머리에 꽂아. 그러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무도 널 해치지 못할 거야."

다 죽어가는 나뭇가지에 빨간 수유 열매 몇 개가 매달려 있었다. 정작 그 사실을 알려준 아이는 나무에 가까이 가려 하지 않았다. 그걸 보고 나서 나는 아이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곳으로 잘못 들어온 나를, 이승으로 갈 수 있게 끝까지 도와준 이 아이의 정체를. 나는 머뭇거렸다.

"왜 멍하니 그래. 빨리 안 가면 영원히 여기에 있어야 될 수도 있어. 집에 돌아가서 엄마 아빠랑 다시 만나야지."

"너는?"

"나? 나는. 에헤, 너 따라서 곧장 달려갈게. 나 달리기 잘하는 거 알잖아."

저 멀리 검은 하늘에서 새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아직 생명이 남아 있는 영혼을 쪼아 먹기 위해. 그러나 그 새들이 노리는 건 나뿐이었다. 서리가 내리는 추운 날씨여서 새들은 더더욱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는 듯했다. 거무칙칙한 세상에서 새들의 그림자도 검고 흉측했다. 나무에 매달린 수유 열매만이 희미하게 빨간빛을 내뿜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약속해."

뒤를 돌아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아이는 말을 고르는 듯 침묵하다가, 이윽고 조금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난 약속 같은 거 못해."

어쩔 수 없다는 말투였다.

"하지만, 하지만 있잖아. 날씨가 추워지면 비가 눈이 되는 것처럼, 나도 어떤 형태로든 변해서 너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런 거, 그냥 궤변이야."

"거짓말이 아니야.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 그러니까 너는, 그 내일에 내가 있을 거라고, 그렇게 믿어주면 돼."

어느새 내 귓가에 수유 열매가 닿았다. 그것을 만진 너의 손이 가루가 되어 사라진 것을 나는 보고도 못 본 체했다. 대신 나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너도 믿어줘. 너의 내일에도 내가 있을 거라고. 꼭이야."

그 말에 네가 끄덕였는지는 알 수 없다. 내일 봐, 라고 말하고 집으로 달려가던 친구들처럼, 나는 빛을 향해 달렸다. 달려 나가는 나를 보고 날아오던 새들이 이윽고 붉은 수유 열매를 보고는, 피야, 피야, 이미 누가 파먹었나 보군, 하고 혀를 차며 쏜살같이 다른 방향으로 돌아갔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다리가 점점 아파왔다.




상강霜降


뒷산에는 단풍이 울긋불긋 물들어 있었다. 학생 때 얼마나 많이 이 산에 올랐는지 모른다. 불안과 걱정이 있을 때마다 마음을 다잡고 싶어서 이곳에 올랐다. 이름 없는 정자가 산 중턱에 놓여 있었다. 주말에 이따금 등산객들이 쉬어 가는 경우를 제외하면 정자는 거의 비어 있었기에, 나는 자주 거기에 앉아서 시간을 때우곤 했다.

내가 정자에 앉아 있으면 어느새 산 위로부터 흰 안개가 뻗어 나와 시야를 덮었다. 그렇기에 나는 나름 도시에 살고 있었음에도, 안개가 세상을 뒤덮을 것처럼 피어오르는 일이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차디찬 계절에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흰 안개는, 신기하게도 그다지 차갑지 않았다. 안갯속에 있으면 자신의 몸이 점점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기분 좋게 떠도는 상상을 하면, 이때까지의 불안과 걱정도 사라지는 듯했다.

이따금 안개에게 공감 능력이 있는지 궁금해했다. 내 불안이 잠재워지는 시간과 안개가 물러가는 시간이 거의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게 우연인지 필연인지, 설령 내가 심리학과라도 알 수는 없었다. 내가 상담해 주는 사람 심리도 솔직히 잘 모르겠는데, 안개의 심리까지 알 리가 없었다. 다만 나는 그걸 필연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세상 어딘가에, 초자연적인 무언가가 자신을 지켜주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에는, 멋대로 안개에게 말을 걸진 않았다.

겨울이 되기 전에 나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다. 나이가 들어서 산에 오르는 것도 벅찬 상황에서 어찌어찌 기억을 더듬어 그 정자를 찾았다. 기억보다는 조금 옅게 느껴졌지만, 여전히 희뿌연 안개가 정자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나는 잔을 두 개 꺼내서는, 국화주를 조심스럽게 따르며 말했다. 이제 괜찮아. 이제야 안개에게 말을 걸었다. 앞으로 살면서 괜찮지 않은 일들도 많겠지만, 그래서 무너질 것 같은 때도 많겠지만, 그래도 괜찮아. 누구든 알아들을 수 있게, 자신도 알아들을 수 있게, 천천히 말했다. 그러니 이제 쉬어. 산짐승들은 이 시기가 되면 겨울잠에 든다고 했다. 봄, 여름, 가울에 느낀 피로를 풀 기회가 찾아오는 것이었다. 안개도 겨울잠을 자는지는 몰랐다. 다만 나는 모든 일에는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꼈을 뿐이다.

집으로 가겠다고 마음을 먹자 또 안개는 내 마음을 알았는지 어느새 저만치로 사라져 있었다. 따뜻한 봄에 다시 만나자. 그렇게 살짝 손을 흔들고 나는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갔다.




입동立冬


"겨울 동안은 그럼 못 노는 거야?"

서운하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자연에서 지내는 데에 익숙해진 그녀에게 있어서 겨울은 달가운 계절이 아니었다. 반달가슴곰은 동굴로 자신의 가족들을 들여보내고 마지막 말을 건넸다.

"말했잖아. 우리가 다음 계절까지 살아남으려면, 지금부터 잠을 자야 해. 그게 곰과 인간의 차이야."

사실 서운한 건 반달가슴곰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개체 간의 차이를 극복하고 같이 다니기에는, 겨울 동안 자신들의 생명이 위험했다. 그렇기에 곰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굴 속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밤이 찾아왔고, 소녀는 마을로 내려와야만 했다.

적어도 겨울이 끝날 때까지, 당분간은 따분한 시간들이 이어질 것이었다. 매년 겪어야 하는 외로움이었지만, 익숙해지지는 못했다. 서당에서도, 집에서도 그녀는 혼자 지냈다. 유일하게 친하게 지내는 상대는 뒷산에서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곰뿐이었다. 그녀는 집에 틀어박혀 잠을 잤다. 부모는 밤늦게도 돌아오지 않았다.

깜깜한 밤이 되자, 아궁이의 불이 약한지 초겨울의 한기가 문틈으로 스며들어왔다. 그녀는 밖으로 나섰다. 그런데 집 밖이 떠들썩했다. 낯선 사람들이 행렬을 이루어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홀린 듯이 그 행렬을 따라갔다. 이윽고 관청으로 들어섰을 때, 높은 건물 위에 한복을 고이 입은 어르신 한 분이 음식을 대접받고 계셨다. 추어탕, 백숙, 시루떡, 우유. 특히 우유는, 어떤 맛일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조용히 음식을 드시던 어르신이 건물 아래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그녀를 건물 위로 데리고 오라고 했다. 그녀는 자신이 무언가 잘못을 한 것이라고 생각해 머리를 조아려 잘못을 빌었다. 그러나 어르신은 다른 빈 그릇에 우유를 덜어서는, 옆에 와서 같이 먹자고 이야기하셨다. 그녀는 상 위에 있는 산해진미를 하나씩 조심스럽게 맛보았다. 그리고 말을 물었다.

"혼자 있는 것이 힘들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러자 어르신은 추어탕 그릇을 비우시고는 말씀하셨다.

"이렇게 누군가와 같이 음식을 먹으면 될 거야."

다시금 우유를 잔에 덜어주셨다. 한 모금씩 마시니, 고소한 맛이 났다. 어르신은 하늘에 뻗은 감나무를 보며 말씀을 이어나가셨다.

"까치를 위해 까치밥을 남겨두듯 말이지."

그 말을 듣고 그녀는 생각했다. 나중에 깨어날 자신의 친구를 위해, 맛있는 과일을 미리 챙겨야겠다고. 연회는 밤새 이어졌다.




소설小雪


"서울은 오늘 첫눈이 내렸어."

"그래? 아직도 내려?"

"응. 펑펑 내리네."

"부산은 아직 비인데. 내일 그리로 갈게."

나는 잠시 자기 상황을 잊은 채, '내일 그리로 가겠다'는 말을 했다. 한국을 벗어나기 전에 한 번은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이번에 떠나는 곳은, 눈을 구경할 일 없는 더운 지방이었다. 아마 떠나면 몇 년은 돌아오지 못하겠지. 그렇다면 눈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오늘뿐이었다. 딱히 눈 내리는 걸 의무적으로 봐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쉬움이라는 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눈으로 바뀔 기미는 없었다. 그가 말했다.

"어떻게 오게?"

"글쎄, 기차라도 타고 갈게."

"벌써 새벽 5시잖아. 기차로 오기에도 너무 멀고. 아침 9시라며, 비행기."

그가 제시한 현실의 벽이 나의 소망을 짓눌렀다. 시간은 생각보다 빠듯했다. 조금 분했다. 왜 첫눈이 내리는 걸 지금 말하는지, 투정을 부리고 싶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잘못은 날씨에게 있었다. 아니면 지구온난화에게 있었다. 조금 더 환경을 사랑할 걸 그랬다.

"그래도...... 이번에 가면 당분간 못 오잖아."

내가 서운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말했다. 우리 둘은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그쪽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나에게 국제 면허는 없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둘 다 서로 오갈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그는 밖에서 눈을 보고 있는 듯했다.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는지, 플라스틱 같은 것이 딱, 딱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아, 눈 가지고 놀고 있었어. 많이 쌓였길래. 자랑하려는 의도는 없었겠으나, 나에게는 그것이 자랑하는 말처럼 들렸다. 내가 조금 핀잔을 주자, 그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아하, 미안, 미안. 내가 생각이 짧았네. 그래도 화를 낼 거면 선물 받고 나서 해. 좀만 기다리고 있어."

그렇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가 얼마 안 가 전화가 끊겼다. 것보다 선물이라니. 지난주 송별회에서 이미 선물과 따뜻한 말을 많이 받았다. 그로부터 받은 선물도 상당했다. 그것들은 이미 소중히 포장해서 택배로 현지에 보내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또 선물? 나는 정리가 끝나 캐리어를 빼면 아무것도 없는 기숙사 방 침대에 누워,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며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


인터폰 소리가 들렸다. 손목시계를 보니 아침 7시였다.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공항이 근처이니 상관은 없었지만, 조금만 더 늦잠을 잤으면 비행기 시간을 못 맞출 뻔했다. 눈을 손으로 비비며 인터폰 전화를 받았다. 경비원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 앞에 기사님 오셨으니까, 물건 받아가셔요. 기사님이요? 나는 얼떨떨한 기분을 끌어안은 채, 잠옷 바람으로 나섰다. 기숙사 공동 현관에는 옷을 두껍게 입은 배달 기사 분이 와계셨다. 건물 밖에 보이는 스쿠터에는 퀵이라고 쓰여 있었다.

물건을 보낸 사람은 그였다. 나는 그 묵직한 상자 같은 것을 든 채로 한동안 현관에 서 있었다. 준비를 끝내고, 조식을 먹으면서 한숨을 돌리고 있을 때 그 상자를 열어보았다. 검푸른 상자의 안에는 아이스팩으로 둘러싸인 작은 상자가 담겨 있었다. 그것을 열어보았다. 투명한 상자 안에, 흰 오리가 두 마리 있었다.

인스타로 본 적이 있었다. 이 나라에서는 겨울마다 눈으로 오리를 만드는 것이 유행이라고 했다. 나는 두 오리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는, 밤중에 그것을 열심히 만들었을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눈이 내리는 모습을 아쉽게도 보지 못했으나, 아직 녹지 않은 눈오리가 그곳의 정경을 전달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눈오리에 손을 댔다. 처음 만져보는 눈이 상당히 차가웠지만, 반대로 마음은 무척 따뜻해졌다. 그에게 전화를 했다. 선물은 잘 받았어? 응. 많이 차갑네. 그게 눈이라는 거래. 그래, 당신 덕분에 잘 알았어. 만드느라 고생 많이 했겠네. 고생은 퀵서비스 아저씨가 하셨지 뭐. 어쨌든, 더운 지방에서 아프지 말고, 잘 지내. 타지 생활을 잘 견딜 수 있기를.

나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 부디 당신도 추운 겨울을 잘 넘길 수 있기를. 전화를 끊었다. 잠시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시간은 얼마 없지만, 잠시나마 이 나라의 겨울을 마음속에 담아 가기로 했다. 그의 말대로, 더운 지방에서 잘 견딜 수 있도록.




대설大雪


-내일 3시에 인연의 광장에서 보자.

잘 쓰지 않던 어투였다. 작은 부탁을 할 때도 곧잘, '해줄 수 있어?'와 같이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곤 했던 그였다. 상대방이 혹여 자신의 부탁을 강압적으로 느낄까 싶은 마음에 이따금 어투가 상당히 부자연스럽게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 보낸 문자는 달랐다. 습관적으로 떠올린 우려보다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소망이 컸다. 그래서 오늘 그가 보낸 문자는 여느 때보다도 더욱 적극적인 어감이 컸다. 응, 하고 답장이 왔다.

저녁 일기예보에서는 폭설이 내릴 것이라 했다. 백 몇 년 만의 폭설이라고 했던가. 오랜만에 그녀가 귀국하는 날에 하필 그렇게 큰 눈이 내리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내일 볼 수 있겠어? 라고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문자가 가지 않았다. 하필이면 그날은 또 쌓인 눈 때문인지 통신장애가 회복되지 않아, 연락을 취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누구든 그 사이에 이번에는 그냥 집에 있자, 라고 문자를 보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냥 집에 있어, 걔도 안 나왔겠지. 가족 중 누군가 그렇게 얘기했지만 그는 내일 광장에 나가보기로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전날 밤 세차게 내리던 눈은 그치지 않았으나, 바람만은 다소 잦아들었다. 다만 내리는 눈의 양이 여전히 많아 앞을 보기가 힘들었다. 황급히 나가다가 현관에서 한번 미끄러진 그는, 엉덩방아를 찧은 후 이내 일어나서는 광장으로 뛰어갔다. 아무리 빨리 뛰어가도, 어쩌면 당연히 안 나올 것이라 생각하고 그녀는 집에 있는지 몰랐다. 그래도, 그는 그냥 나갔다. 못 만난다면, 못 만나는 대로 그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광장에 도착했을 때, 검은 우산을 쓴 그녀가 눈에 띄었다.

"오랜만."

흰 눈과는 대조되는 짙은 검은색 우산이었다. 못 본 사이에 피부가 많이 탔다. 얼마나 기다렸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녀의 코가 조금 빨갰다.

"폭설인데, 집에 있지 그랬어."

그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우산도 없이 광장까지 뛰어온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그녀는 오랜만에 본 그의 머리를 털어주었다. 조금 키가 큰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온 세상이 마비된 듯한 조용한 공간에서, 둘은 광장 들판에 누웠다. 한동안 그가 우산으로 눈을 가려주고 있다가, 나중에는 합의 하에 우산을 치웠다.

"오랜만에 왔는데 날씨가 이래서 어떡해. 휴대폰도 안 되고. 하마터면 못 만날 뻔했어."

"글쎄. 난 반대라고 생각하는데."

그녀가 이쪽을 봤다.

"무슨 뜻?"

"휴대폰이 잘 됐으면, 누구든 내일 눈 오니까 다음에 보자고 하지 않았겠어?"

적어도 나는 아닌 것 같은데, 라고 말하려 했지만, 그 눈을 보고 있으려니 문득 대꾸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다만 고개를 돌려 그녀 쪽에 시선을 향함으로써 부정의 의사를 밝혔다. 그녀가 조금 기쁘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이제야 눈 오는 것도 보고."

"그러게."

퀵으로 눈오리를 보냈던 작년 일을 떠올렸다. 그 눈오리, 그때 공항에 놔뒀는데 아직 남아 있을까? 라고 묻는 그녀의 질문에, 이미 일 년이나 지났으니까 녹았을 거라고 당연한 말을 했다. 조금 감성 없는 대답이었나 싶었다. 거기에 대한 책망은 없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꽤 두근거리는 말이었다.

"그럼 너만 남았네."

"...... 응."

그는 부끄러운 마음을 겨우 숨겨야 해서 그렇게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말을 돌리기로 했다.

"언제 또 돌아와?"

"글쎄. 아직 몰라. 이번에도 갑자기 온 거라. 내일이면 또 떠나야 돼."

"금방 와. 겨울은 추우니까."

"그래? 그럼 다음에는 좀 따뜻한 계절에 와야겠다."

그녀가 옆에 놓인 검은 우산을 집어 들고 일어섰다. 떠날 시간이 되었나 보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여기 남아 있을게, 오랫동안. 그 말에 그녀는 잠시 멈춰 섰다. 그러나 이내 돌아보지 않고, 다시 가던 길을 걸어갔다. 그는 그녀가 멀어질 때까지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가 혹여 길에서 미끄러지지는 않을까, 그렇게 걱정하는 마음과 함께,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녀가 미끄러져서 당황하는 모습을 혹시라도 볼 수 있을까 봐, 그걸 기대하는 조금은 짓궂은 마음으로.




동지冬至


해안길을 쭈욱 달리고 있었다. 길게 펼쳐진 도로에 내 차 말고 다른 차는 없었다. 상당 시간 달린 것 같은데 아직도 주변은 깜깜했다. 밤이었다. 히터 소리가 유독 크게 느껴졌다. 차 안에 퍼진 열기가 조금 덥게 느껴질 즈음, 스위치를 눌러 히터를 껐다. 그러자 차 안은 고요해졌고, 창문을 열면 미미한 엔진소리와 함께 저만치서 옅은 파도 소리가 섞여 들어왔다.

한참을 다시 달렸다. 어디까지고 이어질 것 같은 깜깜한 밤길이었다. 그 끝은 불현듯 찾아왔다. 저 멀리에 거대한 문 같은 것이 보였다. 고인돌을 연상하게 하는, 돌로 만들어진 대문 같은 것이 어둠 속에 모습을 드리우고 있었다. 포장도로는 끊겨 있었다. 나는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그대로 천천히, 그 좁은 틈으로 차를 들여보냈다. 조심스럽게 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잠에서 깼다.

"깼어?"

나는 노마의 어깨에 기댄 채 눈을 떴다. 박물관 한 구석에 만들어진 휴게 공간은, 한 면이 전부 유리로 되어 있어 햇빛을 온전히 내부로 들여보내고 있었다. 겨울임에도, 등을 감싸는 햇빛은 상당히 따스했다. 정면을 보니 우리가 앉아 있는 것과 똑같이 생긴 벤치에, 박물관을 오가던 사람들이 앉아서 이래저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노마."

"응? 왜."

"이런 말 하면 불길하다고 할 거 아는데요."

"괜찮아. 얘기해 봐."

"노마가 죽는 꿈을 꿨어요. 꿈에서 저는 그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장례식도 가지 않은 채 몇 년인가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도시에서 살았었어요. 그리고 노마의 부탁을 전해 듣고 먼 훗날 도시에 다시 돌아와서, 노마의 묘비에 글귀를 새겼어요. 노마가 생전에 한 말 중 하나를 골라서."

"흥미롭네. 그래서, 내 묘비에는 무슨 말을 써줬어?"

"그건..... 잘 기억이 안 나요."

헤헤, 하고 나는 살짝 바보같이 웃었다. 떠올려보려 해도 꿈속의 그 묘비를 떠올리려 하면, 마치 이끼가 덮이기라도 한 것처럼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럼 그렇게 중요한 말은 아니었나 보네."

"아니에요. 무척 중요한 말이었어요. 그것만은 기억해요."

노마가 살며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오늘은 일 년 중 가장 밤이 긴 날이야. 나쁜 귀신들이 돌아다니기 가장 좋은 날. 불길한 일은 상대하지 말고, 원한다면 좀 더 자둬."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수긍의 의사임을 노마는 알고 있었다. 노마는 안심하라는 듯이 등을 톡, 톡 두드렸다. 안심해, 노마는 말을 이었다.

"내일부터는, 밤보다 낮이 더 길어질 거니까."




소한小寒


"소한이 대한보다 더 춥대. 왜인지 알아?"

"왜 그러는데요."

"갑자기 겪는 추위라 그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익숙해지는 거고."

그 대답을 듣고 나서야, 절기가 유래된 중국의 기후와 실제 한국의 기후가 달라서 그렇다는 식의 근거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가만히 있기로 했다. 그해 겨울이 유난히 추웠기 때문이다. 자신 있게 그가 내뱉은 말을 듣고서는, 곧 이 추위와 고통에도 덤덤해지기를, 그냥 그렇게 소망하고 싶어졌다.




대한大寒


본격적인 한파가 시작되고 나서부터 나는 며칠인가 잠들지 못했다. 나는 퀭한 눈으로 회사에 가기 일쑤였고, 돌아와서는 침대에 누워 잠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결국 길게 자도 10분 정도만 잠에 들고 어김없이 깨어났다. 그 짧은 순간에 매번 나는 꿈을 꿨고, 꿈속에서는 무슨 일인지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눈을 뜬 후에는 찝찝한 기분으로 계속 몸을 뒤척이다가 아침이 밝아버리곤 했다.

"저는 손만 대면 어떤 병이든 알아맞힐 수 있는 초능력이 있어요."

회사로 가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갑작스레 새벽부터 폭설이 내렸다. 나는 우산을 든 채로 빙판길을 조심스럽게 걸어가고 있었다. 눈 때문에 출근 시간이 한 시간 미뤄진 탓에, 등교하던 초등학생들 사이에 껴서 어렵게 어렵게 길을 지나갔다. 가능한 한 애들과 부딪치지 않게 조심하며 걸어가던 중이었다. 교문 앞에 서 있던 그 애가 나를 보며 자신의 초능력을 밝혔다. 근처에 살던 조카였고, 나는 왠지 모르게 분한 기분이 들어 유치하게 되받아쳤다.

"그래? 나도 초능력 있는데."

"어떤 건데요?"

그러나 내뱉고 나니 나한테 무슨 초능력이 있는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한테는 아무 능력이 없어. 그게 어른이란다.' 라는 음울한 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제 쪽잠을 자다가 꾼 꿈을 겨우 떠올리고는 말했다.

"내 초능력은 현실의 눈물을 꿈의 눈물로 바꾸는 거야."

"그게 무슨 능력인데요?"

"나는 꿈에서만 우니까, 현실에서는 울음을 참을 수 있어. 그게 내 초능력이야."

그러자 조카는 나를 웅크리게 하고는, 내 이마에 손을 대더니 말을 했다.

"꿈에서 흘린 눈물은 꿈에 그대로 남는 거 아세요? 이 언저리에 눈물이 쌓여 있어요."

나는 좀 기가 막혀서 얘기했다.

"학교에서 아직 안 배웠나 본데, 우리 몸은 세포부터 해서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지 않아. 사람한테는 눈물샘이 있어. 그럼 왜 나는 눈물이 안 나오는데?"

"날씨가 추워서 눈물이 얼어버렸나 보죠."

"그럼 어떡해."

"이제 곧 입춘이니까, 그때까지 기다리세요."

주먹에 힘이 좀 들어갔다.

"못 기다리면?"

"그럼, 안아드릴게요."

아직 웅크려 있던 나를 그 아이가 갑자기 꼭 안아주었다. 등교하던 학생들이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 나눠 받은 체온이 너무나도 따뜻해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마랑 콧잔등이 뜨거워졌다. 머릿속에 있던 덩어리 같은 것이 쩌적, 쩌적 소리를 내며 녹는 듯했다. 왜 학생들이 이상한 눈으로 나를 보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어느새 눈물콧물을 질질 흘리며 안겨 있었다. 그 모습을 절대 이 아이에게만큼은 보여주기 싫어서, 언제까지고 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가만히 있었다. 그걸 알아채기라도 한 듯, 그 아이가 말했다.

"봄 되면, 꼭 알려드릴게요."

털장갑을 낀 손으로 내 등을 두드리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이제 곧 따뜻해진대요."




추석秋夕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지나, 어느 날 농경신은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한때 이 근방에 끝없이 펼쳐졌던 논밭에는, 이제 아파트와 건물만이 위세 있게 늘어서 있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보름달을 보면서 풍작을 기원하던 것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는 못했고, 앞으로 몇 세대가 지나면 보름달에 소원을 비는 일도 미신으로만 치부되지 않을까 싶었다.

추석이 되었고, 농경신은 동네 여러 신들을 집에 불러들여 다 같이 전을 부쳤다. 제사를 받는 존재인 그들이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전을 부치는 모습은 누가 보면 소스라치게 놀랄 일이었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즐거웠다. 가족들이 함께 살아야만 했던 옛날부터, 혼자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지금에 이르렀다. 오랫동안 누군가와 함께 사는 일이 유전자에 배어있던 그들에게 있어서, 혼자 산다는 것은 어색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 어색함을 이렇게 전이나 부치는 때에야 그들은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고구마전, 호박전, 산적까지 여러 음식들이 노릇노릇 익어 바구니에 놓였다. 이 음식들은 아마 추석이 끝날 때까지 반찬으로 올라올 터였다. 농경신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고는 숨을 내쉬었다. 이번 추석 연휴는 날씨가 무척 더웠다. 기상청에서는 계절을 재조정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는 모양이다. 사계절도 어느새 옛날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자고 가라는 말에도, 이래저래 바쁜 동네 신들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혼자 남은 농경신은 적적함을 떨쳐내려 유튜브를 틀고, 책상 앞에 앉아 노트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딱히 우체국에 보낼 생각은 없었지만 편지를 쓰면서, 자신이 신이라는 사실도 잊고 저 멀리 뜬 보름달을 보며 빌었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마음에 풍요로움을 심어주시옵소서. 안녕. 이 한 마디만이라도 달빛처럼 온 세상에 전해주시옵소서. 그렇게 다시금 안부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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