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이 다하는 날까지 행복을 떠올릴 권리 외 8편

푸른여우, 하루하나 : 2024년 12월

by 푸른여우

머리말


12월 31일과 1월 1일에는 모든 일을 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날이 바뀌는 것은 쉽게 경험할 수 있지만, 해가 바뀌는 것은 좀처럼 흔한 일이 아니니까요. 만약 우리가 백 살까지 산다고 하면, 해가 바뀌는 경험은 살면서 백 번밖에 경험할 수 없어요(사람에 따라서는 '백 번이나?'라고 하실 수도 있지만......). 어찌 됐든 그런 희소한 일을 몸과 마음으로 온전히 체험할 수 있도록, 연말과 연초에는 법적으로 업무를 금지시켜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맞아요. 제가 못 쉬어서 이런 말씀을 드렸어요. 그 바람에 보름이나 12월호가 늦어진 점, 혹시 기다리셨다면 정말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엊그제가 되어서야 밀린 일을 끝내고 일 년 간의 기록을 다시 읽어봤어요. 옛날처럼 꾸준히 일기를 쓰지는 못했지만, 생각보다 다사다난한 일이 많았던 한 해였다는 감상이 있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일 일어날 일도 모르는데 '십 년 뒤의 자신을 상상해 보라'는 면접 질문은 참 바보 같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여러 일을 겪고 나니 미래에 대해 추측하는 것도 생각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지 십 년 뒤에도 누군가에게 새해 인사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이기를. 일단은 그렇게 바라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9가지 이야기를 준비해 봤습니다)






떡국떡볶이떡국떡떡볶이


"팀장님, 떡국떡으로 떡볶이를 만들면 '떡국떡볶이'일까요, 아니면 '떡국떡떡볶이'일까요."

"그런 얘기할 시간에 일을 하세요."

지금 두 시간째 고민하고 있어요, 라고 고백하는 후임에게 나는 잔소리를 하고는 자리로 돌아왔다.

회식 후 집으로 돌아와서 바로 침대에 누워서는, 술기운 때문에 당장은 잠들지 못한 채 내일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주말이니까 밀린 빨래를 일단 하고, 청소도 해야 될 거 같고, 아, 냉장고에 있는 거 다 먹어야 되는데. 냉장고에 어제 먹은 엽떡이 남아 있었다. 내일은 꼭 저걸 해치워야지. 근데 엽떡에서 떡국떡으로 떡볶이를 만들면 그건 떡국떡볶이인가 떡국떡떡볶이인가?

"어?"

나는 묘한 생각에 지배당하기 전에 다른 걸 생각하기로 했다. 그치. 내일 국악사에 들러서 지역 공연에 쓸 갓이나 부채 같은 걸 사가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유치원 때 장구나 북 같은 걸 쳤던 적이 있었지. 크면서 장구 칠 일은 한 번도 없는데 왜 그렇게 유치원에서는 장구를 시켰을까. 오른손에 채를 잡고 쿵 더러러러를 정말 열심히 연습했던 기억이 있다. 덩기덕 쿵더러러러. 쿵 쿵덕 쿵덕. 박자가 뭐였지... 쿵 쿵덕 국덕 쿵덕떡 덩기덕 쿵덕국떡볶떡 떡국떡, 떡국떡으로 떡볶이를 만들면 그건 떡국떡볶이인가 떡국떡떡볶이인가?

"아이씨."






내일 네일아트


네일숍에 찾아온 93세 할아버지께서 손톱을 깎아달라고 부탁하셨다고 한다. 나는 손님의 손톱에 파츠를 붙이고 있다가, 문득 가게 한 구석에 놓인 오래된 텔레비전에서 그 뉴스를 접했다. 그리고는 아빠의 손톱이 어땠는지를 떠올리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너는 손 잘 그리겠다. 매번 손님들 거 보니까. 나는 웹툰 그릴 때 손 그리는 게 제일 어려워. 근데 AI도 그건 어려워하더라고.

작가인 친구의 손톱을 칠해주던 때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러나 나도 매일같이 여러 사람들의 손을 봐오지만, 막상 머릿속으로라도 그려보려고 하면 쉽지 않은 구석이 있었다. 아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얼마 전 고향에 내려가서 본 아빠의 얼굴이나, 나이가 들면서 왜소해진 듯한 체격 같은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었지만, 손과 손톱을 떠올리려 하면 뿌연 안개 같은 것에 가로막혀 있었다.

다 되셨어요. 갓 수능을 끝낸 고등학생은 자기 손톱에 수 놓인 꽃무늬를 보면서 무척 기쁜 표정을 지었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제일 먼저 네일아트를 하러 온 그 학생을 보고 있으려니, 옛날에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던 자기 자신이 떠올랐다.


주말이 다가왔고, 나는 여느 때처럼 고향에 내려가 아빠 일을 도와드렸다. 그런데 나는 아빠 손으로부터 계속 눈을 피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것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남의 손톱을 요 몇 년 동안 지겹게 봐왔다. 매장에서 에나멜 색이나 스톤이나 파츠의 종류를 머리 아프게 고민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게 경력이 몇 년 쌓이다 보니, 이제는 아무리 볼품없는 손톱이라도 마주할 자신이 생겼다. 그럼에도 나는 하루 종일, 아빠의 손에 시선을 향하지는 못했다.

저녁에 시장에서 산 찬거리로 밥을 먹으며, 우리는 반주를 기울였다. 낮에 한 일에 대한 피로 때문인지, 애당초 서로 말수가 적었기 때문인지,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술을 마셨다. 술이 들어가자 아빠는 몇 마디인가 말씀하셨다. 일은 안 힘드냐, 이상한 손님은 없느냐, 네일 아트를 한다고 했을 때 못마땅해하시던 시절도 있었는데, 몇 년이 지나니 그런 기색은 없으셨다. 나는 이렇게 저렇게, 괜찮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도 끝끝내 맥주잔을 드는 아빠의 손에서는 시선을 돌렸다.

시간은 자정을 넘기고, 나는 소파에 기댄 채 별로 재밌지도 않은 주말 예능 재방송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아빠는 어느새 소파에서 누워 코를 골고 계셨다. 술기운 탓인지, 문득 용기가 생겨 고개를 돌려 아빠 손을 보았다.

손톱에 피가 고여 있었다. 덜덜 떠는 손으로 손톱깎이를 대다가 엇나갔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일을 하다가 다치셨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마음을 쿵, 내려앉게 하는 손이었다. 아니, 말씀을 하시지, 혼자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는 자신의 두 손으로 아빠의 손을 포갠 채 그때는 가만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대설大雪

-내일 3시에 인연의 광장에서 보자.

잘 쓰지 않던 어투였다. 작은 부탁을 할 때도 곧잘, '해줄 수 있어?'와 같이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곤 했던 그였다. 상대방이 혹여 자신의 부탁을 강압적으로 느낄까 싶은 마음에 이따금 어투가 상당히 부자연스럽게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 보낸 문자는 달랐다. 습관적으로 떠올린 우려보다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소망이 컸다. 그래서 오늘 그가 보낸 문자는 여느 때보다도 더욱 적극적인 어감이 컸다. 응, 하고 답장이 왔다.

저녁 일기예보에서는 폭설이 내릴 것이라 했다. 백 몇 년 만의 폭설이라고 했던가. 오랜만에 그녀가 귀국하는 날에 하필 그렇게 큰 눈이 내리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내일 볼 수 있겠어? 라고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문자가 가지 않았다. 하필이면 그날은 또 쌓인 눈 때문인지 통신장애가 회복되지 않아, 연락을 취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누구든 그 사이에 이번에는 그냥 집에 있자, 라고 문자를 보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냥 집에 있어, 걔도 안 나왔겠지. 가족 중 누군가 그렇게 얘기했지만 그는 내일 광장에 나가보기로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전날 밤 세차게 내리던 눈은 그치지 않았으나, 바람만은 다소 잦아들었다. 다만 내리는 눈의 양이 여전히 많아 앞을 보기가 힘들었다. 황급히 나가다가 현관에서 한번 미끄러진 그는, 엉덩방아를 찧은 후 이내 일어나서는 광장으로 뛰어갔다. 아무리 빨리 뛰어가도, 어쩌면 당연히 안 나올 것이라 생각하고 그녀는 집에 있는지 몰랐다. 그래도, 그는 그냥 나갔다. 못 만난다면, 못 만나는 대로 그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광장에 도착했을 때, 검은 우산을 쓴 그녀가 눈에 띄었다.

"오랜만."

흰 눈과는 대조되는 짙은 검은색 우산이었다. 못 본 사이에 피부가 많이 탔다. 얼마나 기다렸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녀의 코가 조금 빨갰다.

"폭설인데, 집에 있지 그랬어."

그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우산도 없이 광장까지 뛰어온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그녀는 오랜만에 본 그의 머리를 털어주었다. 조금 키가 큰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온 세상이 마비된 듯한 조용한 공간에서, 둘은 광장 들판에 누웠다. 한동안 그가 우산으로 눈을 가려주고 있다가, 나중에는 합의 하에 우산을 치웠다.

"오랜만에 왔는데 날씨가 이래서 어떡해. 휴대폰도 안 되고. 하마터면 못 만날 뻔했어."

"글쎄. 난 반대라고 생각하는데."

그녀가 이쪽을 봤다.

"무슨 뜻?"

"휴대폰이 잘 됐으면, 누구든 내일 눈 오니까 다음에 보자고 하지 않았겠어?"

적어도 나는 아닌 것 같은데, 라고 말하려 했지만, 그 눈을 보고 있으려니 문득 대꾸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다만 고개를 돌려 그녀 쪽에 시선을 향함으로써 부정의 의사를 밝혔다. 그녀가 조금 기쁘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이제야 눈 오는 것도 보고."

"그러게."

퀵으로 눈오리를 보냈던 작년 일을 떠올렸다. 그 눈오리, 그때 공항에 놔뒀는데 아직 남아 있을까? 라고 묻는 그녀의 질문에, 이미 일 년이나 지났으니까 녹았을 거라고 당연한 말을 했다. 조금 감성 없는 대답이었나 싶었다. 거기에 대한 책망은 없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꽤 두근거리는 말이었다.

"그럼 너만 남았네."

"...... 응."

그는 부끄러운 마음을 겨우 숨겨야 해서 그렇게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말을 돌리기로 했다.

"언제 또 돌아와?"

"글쎄. 아직 몰라. 이번에도 갑자기 온 거라. 내일이면 또 떠나야 돼."

"금방 와. 겨울은 추우니까."

"그래? 그럼 다음에는 좀 따뜻한 계절에 와야겠다."

그녀가 옆에 놓인 검은 우산을 집어 들고 일어섰다. 떠날 시간이 되었나 보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여기 남아 있을게, 오랫동안. 그 말에 그녀는 잠시 멈춰 섰다. 그러나 이내 돌아보지 않고, 다시 가던 길을 걸어갔다. 그는 그녀가 멀어질 때까지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가 혹여 길에서 미끄러지지는 않을까, 그렇게 걱정하는 마음과 함께,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녀가 미끄러져서 당황하는 모습을 혹시라도 볼 수 있을까 봐, 그걸 기대하는 조금은 짓궂은 마음으로.






네 기분이 우울해 보이길래 샤워기를 고장 내봤어


샤워기가 고장이 났다.

수압 문제가 아니라, 정확히는 샤워 호스에 몇 개의 구멍이 나서 물이 줄줄 새고 있었다. 헤드까지 충분한 양의 물이 옮겨가지 못해, 침이라도 흘리는 듯이 얼마 안 되는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행히 계절은 겨울이었다. 밖에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그래서 하루에도 샤워를 몇 번이나 해야 하는 여름이었다면 난데없이 지옥에 들어설 뻔했다.

집주인께 도움을 요청할까? 그렇게 방으로 시선을 돌리니, 오래된 빨래나 인형이나, 읽은 적 없는 책더미나, 남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굿즈 같은 것들이 무질서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누가 물어봤을 때 '그래도 나름의 질서가 있는 거예요'라고 핑계를 대기 부끄러울 정도의 지저분함이었다. 게다가 저번에 집주인이랑 월세 문제로 서운한 말을 주고받은 탓에 더 얼굴 보기가 껄끄러웠다.

그렇다고 대중목욕탕을 가자니, 이 주변은 무슨 일인지 가까운 목욕탕이 걸어서 30분 되는 거리에 있었다. 무슨 냇가에 목욕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나는 단념했다.

그러다가 중요한 면접을 앞둔 날, 거울에 비친 자기 몰골이 말이 아님을 깨닫고는, 어떻게든 샤워를 해보려고 이리저리 호스를 움직였다. 그리고 그 헛된 동작을 하는 사이에 새삼, 온몸을 따뜻한 물로 적실 수 있다는 건 사실 현대인이 느낄 수 있는 큰 행복이었다는 사실을, 호스에서 줄줄 흐르는 얼마 안 되는 물을 맞으며 생각했다.

면접이 끝나고 다이소에 들러서 필요한 물건들을 샀다. 샤워 호스랑 같이 혹시 모르니까 필터도 샀다. 나는 샤워기가 그렇게 쉽게 분리되는 물건이라는 사실을 그날 처음 알았다. 절대 안 풀릴 것 같았던 나사에 손을 대자 그것은 참 쉽게도 빠졌다. 새로운 호스를 연결하니 그제야 물이 제대로 나왔다. 그렇게 간단한 일을, 귀찮다고 씻지 않는 쪽을 택하려 했던 자기 자신이 왠지 모르게 묘했다.

밤에 쉬고 있을 즈음에 전화가 걸려왔다. 저번에 집에 놀러 왔던 아는 동생이었다.

"너 저번에 왔을 때 샤워 어떻게 했어? 샤워기 고장 났던데."

"아, 그거...... 미안, 말한다는 걸. 그거 내가 그랬어."

"뭐?"

상대방은 변명하듯 얘기했다.

"근데 그거 일부러 그런 거야. 네가 좀 우울해 보이길래. 제대로 씻을 수 있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 건지 좀 알려주려고 그랬어. 알겠어? 내 깊은 속을."

"그냥 미안하다고 해."







도장의 각도


잠시 해외로 가 있는 사이 부사수에게 도장을 맡긴 적이 있었다. 내 결재가 필요한 경우에는 도장은 대신 찍되, 서류 내용은 나에게 미리 확인을 받으라는 식으로 지도했었다. 진짜 인감은 따로 두고 있으므로 상관없기도 했고, 그래도 믿을 만한 친구라고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담당자한테서 연락이 왔기에 해외에서 서류를 일괄로 확인해 보니 죄다 도장이 거꾸로 찍혀 있었다. 기분이 좀 묘해서, 그래도 도장은 바로 세워서 찍으라고 한번 주의를 줬는데, 귀국하고 확인해 본 새로운 결재서류에는 또 도장을 눕혀서 찍어놨다. 보다 못한 내가 얘기했다.

"아니 왜 자꾸 결재 서류에 도장을 이렇게 찍는 거야. 이름이 바로 서게 찍으라니까?"

"너무 관료제적인 발언이세요, 팀장님. 일본에서 막 사장님 도장은 바로 찍고, 부장님 조금 기울여서 찍고, 부부장님 더 기울여서 찍고, 그러는 거. 그런 잘못된 관습 같은 게 일의 효율을 망치는 지름길이 된다니까요."

"좀 기울이는 거야 뭐라 안 하잖아. 내 도장은 왜 맨날 거꾸로 찍는데? 내가 서류 나중에 볼 때마다 물구나무서는 느낌이라니까? 한 번 고쳐놨더니 오늘은 또 눕혀 놨데. 왜 눕혀 놨어. 날 눕혀버리고 싶다는 거야, 뭐야."

그러자 뭐가 자랑스러운 건지 아주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그가 결재 서류 한 귀퉁이를 가리켰다. 가로로 눕혀 찍은 내 도장 바로 아래에 그의 도장이 바로 선 채로 찍혀 있었다.

"이게 뭔데."

"제가 떠받들고 있잖아요. 팀장님을요."

나는 잠시 동안 빨간색 이름 두 개가 서로를 의지하고 있는 듯한 모양새를 보고는, 정중하게 이야기했다.

"내 도장 돌려줘, 당장."





대설주의보


혹시나 해서, 적어 둔 시간보다 약 1시간 먼저 나는 인연의 광장에 나가 있었다. 세상은 여느 때처럼 조용했다. 눈이 내리는 날이라서 더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눈이 사람들의 아우성을 흡수해 버린 듯했다. 물론 눈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시간이 되었다. 나는 광장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위치에 서서, 아무도 없는 광장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거기에 조금 절망하고 있을 무렵,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세븐스타 선생님 아니세요?"

세븐스타는 내 필명이었다. 나를 부른 남자는 트렌치코트를 입고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젊고 생기가 넘쳐 보이는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올드한 복장이었다. 나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아 네, 혹시 누구신지......"

"와, 선생님 저, 선생님 작품 팬이에요. 이번에 그리신 작품도 잘 봤어요."

"아아, 네...... 이번에 좀처럼 솜씨 발휘를 못 해서 걱정했는데, 잘 읽어주셔서 너무 기쁘네요."

"에이, 겸손하셔요. 마지막 문자에 이끌려서 저도 나와봤어요. 여기 인연의 광장이잖아요. 저에게도 무언가 특별한 인연이 있지 않을까, 하하, 뭐 그런."

"아, 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광장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근데 선생님, 그 처음에 '광장에 모이자'라고 쓰신 문자 있잖아요. 좀, 어색하지 않나요? '광장에서 만나자'나 '광장에서 보자'라면 모를까. 꼭 여러 사람이 와야 될 거 같은...... 아 이건 그냥 제 생각이에요."

"아, 그건 또 그렇네요. 제가 항상 편집부에서도 단어로 주의를 받곤 해서요. 다음에는 단어 선별을 신중히 해야겠어요."

"이런 상황이니까 더더욱 단어 선택에도 주의해야죠. 다행히 오늘 저랑 선생님만 계시니까 망정이지, 세 명 이상 모였으면 어쩌실 뻔했어요. 요새는 모이는 것도 위법인데."

그때 저만치서 회색 모자를 쓴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이 손을 흔들며 내 뒤로 다가왔다. 맞은편에 있던 남자가 웃으면서 나를 보았다. 친구인가? 그런 생각을 했다. 갑작스레 눈앞이 깜깜해졌다. 마치 누군가 세상의 불을 꺼버리기라도 했듯이. 그러나 시간은 아직 대낮이었다. 대낮에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나는 힘없이 땅바닥으로 쓰러졌다. 아까까지 이야기를 나눴던 젊은 남자가, 내 앞에 쪼그려 앉아 말했다. 어쩌죠. 제 친구까지 와서 이제 세 명이네요. 선생님은 법을 위반하셨어요. 법을 위반하면 대가를 치르셔야죠.






동지冬至


해안길을 쭈욱 달리고 있었다. 길게 펼쳐진 도로에 내 차 말고 다른 차는 없었다. 상당 시간 달린 것 같은데 아직도 주변은 깜깜했다. 밤이었다. 히터 소리가 유독 크게 느껴졌다. 차 안에 퍼진 열기가 조금 덥게 느껴질 즈음, 스위치를 눌러 히터를 껐다. 그러자 차 안은 고요해졌고, 창문을 열면 미미한 엔진소리와 함께 저만치서 옅은 파도 소리가 섞여 들어왔다.

한참을 다시 달렸다. 어디까지고 이어질 것 같은 깜깜한 밤길이었다. 그 끝은 불현듯 찾아왔다. 저 멀리에 거대한 문 같은 것이 보였다. 고인돌을 연상하게 하는, 돌로 만들어진 대문 같은 것이 어둠 속에 모습을 드리우고 있었다. 포장도로는 끊겨 있었다. 나는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그대로 천천히, 그 좁은 틈으로 차를 들여보냈다. 조심스럽게 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잠에서 깼다.

"깼어?"

나는 노마의 어깨에 기댄 채 눈을 떴다. 박물관 한 구석에 만들어진 휴게 공간은, 한 면이 전부 유리로 되어 있어 햇빛을 온전히 내부로 들여보내고 있었다. 겨울임에도, 등을 감싸는 햇빛은 상당히 따스했다. 정면을 보니 우리가 앉아 있는 것과 똑같이 생긴 벤치에, 박물관을 오가던 사람들이 앉아서 이래저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노마."

"응? 왜."

"이런 말 하면 불길하다고 할 거 아는데요."

"괜찮아. 얘기해 봐."

"노마가 죽는 꿈을 꿨어요. 꿈에서 저는 그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장례식도 가지 않은 채 몇 년인가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도시에서 살았었어요. 그리고 노마의 부탁을 전해 듣고 먼 훗날 도시에 다시 돌아와서, 노마의 묘비에 글귀를 새겼어요. 노마가 생전에 한 말 중 하나를 골라서."

"흥미롭네. 그래서, 내 묘비에는 무슨 말을 써줬어?"

"그건..... 잘 기억이 안 나요."

헤헤, 하고 나는 살짝 바보같이 웃었다. 떠올려보려 해도 꿈속의 그 묘비를 떠올리려 하면, 마치 이끼가 덮이기라도 한 것처럼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럼 그렇게 중요한 말은 아니었나 보네."

"아니에요. 무척 중요한 말이었어요. 그것만은 기억해요."

노마가 살며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오늘은 일 년 중 가장 밤이 긴 날이야. 나쁜 귀신들이 돌아다니기 가장 좋은 날. 불길한 일은 상대하지 말고, 원한다면 좀 더 자둬."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수긍의 의사임을 노마는 알고 있었다. 노마는 안심하라는 듯이 등을 톡, 톡 두드렸다. 안심해, 노마는 말을 이었다.

"내일부터는, 밤보다 낮이 더 길어질 거니까."






나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빨래를 돌렸다


연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하마터면 종말이라고 쓸 뻔한 것을 연말이라고 빠르게 바꿨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세계를 위기에서 구한 지 벌써 오 년이 지났다. 그때의 자신은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다. 국가에서 보상으로 죽을 때까지 연금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어느 식당을 들어가도 사람들은 공짜로 식사를 제공해 주었다. 살면서 처음 누려보는 호사였다. 그리고 오 년이 지났다.

요즘 들어 무엇을 먹어도 맛이 나지 않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코로나라도 걸린 줄 알았다. 하지만 병원에 가도 어떤 질병도 진단받지 못했다. 무엇을 봐도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세계가 망할 뻔했던 그때, 그리고 세계가 정상으로 돌아왔던 그때, 그때만큼의 희극을, 비극을 이겨낼 정도로 자극적인 것은 없었다. 언젠가 술을 먹고 전쟁이 다시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내뱉었던 적도 있었다. 피비린내 나는 옛날을 옹호하던 나이 든 사람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은 다행히 금세 사라져 버렸다. 어느 날 역 앞을 지나가다가 낯익은 사람이 거대한 팻말 같은 것을 들고 사람들을 향해 소리 지르고 있었다.

-여러분! 세계가 멸망할 뻔했던 그때로 다시 돌아갑시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 스스로 전쟁을 일으킵시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서, 우리 모두 하나로 단결합시다! 제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저는 그때 여러분들을 구했던 용사였습니다!

역 앞에 흔히 출몰한다는 미치광이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마지막 말이 유난히 걸렸다. 그래서 흘깃, 그쪽을 보았다. 분명 그때, 세계가 멸망하기 직전에 같은 파티를 결성했던 사람이었다. 우리는 총 4명이서 파티를 꾸려 세계를 구했다. 그는 전사였다. 그는 그때 찼던 대검을 등에 걸쳐 맨 채로, 붉은 글씨로 '전쟁은 善이다'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었다.

보다 못한 어느 노인이 항의를 했다. 그러자 그는, 옛날에 적 군단을 무찔렀던 대검을 빼어 들어 노인을 향해 휘둘렀다. 노인은 가까스로 피했으나 살짝 베인 어깨에서 피가 흘렸고, 언제 신고를 받았는지 부리나케 달려온 경찰들에게 끌려갔다. 나는 무시하고 기차역으로 들어갔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야 한다고 잠깐 생각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증오했다.


그때 우리 파티에는 네 명이 있었다. 나머지 두 명도 소식이 끊긴 지 오래였다. 궁수였던 그녀는 이상한 종교에 빠졌다는 소문이 있었고, 나머지 한 명(전직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은 정치에 뛰어들더니 얼마 전에 내란죄로 잡혀가는 것이 텔레비전에 비쳤다. 그가 이전에 세상을 구한 영웅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같은 파티에 있던 나머지 사람들의 신상을 캐려는 시도들이 이어졌다. 몇몇 기자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내 집으로 찾아왔다.

나는 그것에 분명 소름이 돋아야 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들이 내 집 앞까지 찾아왔을 때, 나는 무덤덤한 일상이 잠깐 들썩인 것에 대해 '재미있다'라고 느끼고 있었다. 나는 이사를 갔고, 이사를 가자마자 내가 처음으로 한 행동은 정신과에 가서 약을 받아 오는 일이었다.

이사를 간 집은 4평짜리 집이었다. 전에 살던 3층 집보다는 분명 턱없이 작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 집이 마음에 들었다. 전에 살던 집에서는 유독 목소리가 울리는 것만 같았으니까. 나는 신분을 숨기고 작은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돈이 필요했던 게 아니었다. 무언가 일을 하지 않으면 미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큰돈을 벌면 일 다 때려치우고 나머지 인생은 유유자적 살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어떨까. 의미 없는 생각을 했다.

아침 6시에 출근해서 저녁 10시에 퇴근. 카운터에 앉아 있다 보면, 책에 둘러싸이는 것만으로 조금씩 마음이 편해지는 것만 같았다. 나는 처음에 월급은 안 받아도 상관없으니, 대신 인기 없는 책 몇 개를 집으로 갖고 가게 해달라고 했다. 젊은 점장은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다가, 가뜩이나 좋지 않은 영업 상황에 월급으로 나갈 돈을 아껴서 좋은 듯 이내 승낙했다. 나는 아무도 사가지 않을 듯한 책을 몇 개 얻어 집에 올 수 있었다.

집에 책이 하나둘씩 늘어갔다. 나는 그 책들을 읽어보지 못했다. 점장이 좋다고 추천해 준 책들을 계속 쌓아만 두고 있다가, 이따금 열어볼 용기를 내고 펼쳐보면 몇 페이지인가를 넘기고 그대로 닫아버렸다. 그렇게 내 집은 마치 관리가 안 된 헌책방처럼 바뀌기 시작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때는 책을 차곡차곡 쌓아두긴 했었다.

연말이었다. 책방이 문을 닫았다. 내게 줄 월급을 아끼더라도 결국 경영난을 이기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그날 밤 나는 가게에 들어가 책 몇 개를 훔쳤다. 그냥 점장님에게 말하고 책을 더 가져와도 됐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나는 자신이 무엇을 해도 용서받는 사람인지 굳이 굳이 시험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나 보다. 동료들의 추태와 그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끝끝내 점장은 나를 신고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내가 월급을 몇 달이나 받지 않고 일했다는 사실 때문에 점장은 자신이 고발당할 것을 우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갖고 온 책을 집에 들어오자마자 던졌다. 그러자 쌓아두었던 다른 책들이 도미노 쓰러지듯 방 안에 널브러졌다. 책 위에 책이 있고, 책 밑에 책이 있고, 책 옆에 책이 있었다. 그렇게 여러 책들이 서로 어수선하게 몸을 섞고 있었다. 그것은 조금 멀리서 보면 하나의 바다처럼 보였다. 옛날 사람이 '의해(義海)'라는 말을 썼다. 지식의 바다. 이 광경을 보니 내 머릿속에 그 표현이 떠올랐다. 그게 조금 웃겼다. 그래서 나는 현관에 주저앉아 막 웃다가, 이내 재미가 없어져서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매트리스 위에 누웠다.

밖에 나갈 수도 없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할 수도 없었다. 옛날에 자신은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고 했던 사람이었고, 누구보다 열심히 하려고 했고, 그래서 세계가 위기에 빠졌을 때 발 벗고 나서서 어떻게 해야 적을 쉽게 무찌를지, 어떻게 해야 한 명이라도 시민을 더 구할지 밤을 새 가며 고민했다. 거기에 후회는 없다. 성공했고, 그에 따른 보상도 받고 있다. 그럼 된 거 아닌가. 더 필요한 게 없다. 나는 내 생명이 끝날 때까지 유유자적 살아가면 된다. 그런데. 그런데 왜 지금 나는 잠들지 못하고 있을까. 잠들고 깨어나도 왜 자꾸 힘이 들까. 더 필요한 게 없는데. 더 필요한 게 없다면. 그럼, 그럼 내가 살아야 할 이유는 뭘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잠이 오지 않아 서랍 한구석에 박혀있던 수면제를 꺼냈다. 그리고 알약 하나를 까서 손바닥 위에 놓았다. 그리고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알약 하나를 더 까서 손바닥 위에, 알약 하나를 더 까고, 알약 하나를 더 까고, 알약 하나를 더 깠다. 그리고 그대로 입에 털어 넣었다. 삼켰다.


*


한참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내가 어느 미지의 공간에서 눈을 떴을 때 주위에는 작은 유리 파편 같은 것이 떠돌고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 누군가가 서있었다. 일어나셨군요.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나는 얼굴을 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세계를 관장하는 여신이었다. 세계가 위험에 빠졌을 때,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그 여신님이었다. 나는 예의를 갖추어야 마땅했으나 몸이 나른하여 일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여신의 표정을 읽을 수 없다. 다만 목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여신님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다만 이렇게 말했다.

-나의 자랑스러운 자식이여. 만약 그대가 이대로 죽음을 택한다면 저는 그대의 선택을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대가 아직 삶을 바라고 있다면....... 기다려주십시오. 자기 자신을.

나는 그때 어떤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정신에 누군가가 표백제를 들이부은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옛날 적군 중에서 상대방의 정신을 마비시키고 세뇌시키는 기술을 쓰는 이도 있었다. 수면제를 만들 때 그 기술을 활용하기라도 한 걸까. 알 길이 없다. 나는 그저 바닥에 누워 긴 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기다린다고? 내 무의식은 기다리기를 택했다. 그 선택에 나는, 조금은 신기했다.

다시금 눈을 떴을 때 나는 읽어보지 못한 책들에 둘러싸여 있었고, 세탁물은 한구석에 쌓여 있었다. 배달음식을 감싸고 있던 비닐봉지들이 그 옆에 널려 있었다. 한참을 누워 있었는지, 아직도 약 기운이 도는 것인지, 내 몸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세탁기 앞에 쌓인, 아직 빨지 못한 옷이 풍기는 꿉꿉한 냄새를 나는 지금이 되어서야 참을 수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 짜내 세탁기를 돌렸다. 세제랑 섬유유연제를 듬뿍 넣고, 동작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그 앞에 가만히 누운 채로, 돌아가는 세탁물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조금만 더 자기로 했다. 그리고 아직 전쟁 때에 머물러 있는 자기 자신의 파편이 세탁이 끝날 때까지는 이곳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주기로 했다. 시간은 많으니까, 기다려주기로 했다.






생이 다하는 날까지 행복을 떠올릴 권리


지하철 플랫폼에 혼자 앉아 있었다. 벌써 몇 차례인가 지하철은 내 앞을 지나갔다. 전화가 걸려 왔다. 이 시간에 누가 전화를 걸었지?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뜬 전화를 나는 매번 그냥 거절하고는 했는데, 그날은 문득 통화 버튼을 눌러버렸다. 밤이었다. 이제 곧 막차가 올 시간이었다.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상대는 따스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어, 새해 복 많이 받아. 상대를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그렇게 응대했다. 언젠가 만난 적이 있었는지, 낯익고 친숙한 목소리였다. 그래서 나는 무심코 반말로 이야기를 해버렸다.

-찾고 있던 행복은 찾았어요?

오글거리는 질문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보면 올해도, 인생에 한 번쯤 일어났으면 좋겠다 싶은 엄청 큰 행복은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매년 그것이 찾아오기를 기대하곤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올해 있었던 갖은 사건들을 겪으며, 동시에 나이를 먹으면서, 오늘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제야의 종을 들으며 새해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행복의 적정량은 달성한 셈이었다.

앞으로 이렇게 새해를 맞이할 수 있는 횟수가, 아무리 오래 살더라도 두 자릿수였고, 혹여 내 생각보다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무척 아쉽게 느껴졌다. 그 시간들이 지나면 행복이나 불행에 대해 느끼지 못하는 다른 세계로 이동하겠지. 거기에는 슬픔이 없겠지만, 기쁨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행복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살아 있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권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말했다.

-찾았어. 제가 살던 곳에 있었어요. 아주 오래전부터.

-잘됐네요. 그럼 늦지 않게 돌아와요. 다들 걱정하고 있어요.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막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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