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년 뒤에 지구가 멸망할 거니까요 외 9편

푸른여우, 하루하나 : 2024년 11월

by 푸른여우

머리말


올해도 벌써 다 갔네요. 근데 작년에 비해서 한 해가 가는 것에 그다지 감흥이 없는 것이 묘해서, 친구에게 얘기를 했더니 '나이 먹어서 그런다'는 대답이 왔습니다. 정말 끔찍한 말인데, 모든 현상을 납득시키는 말이라서 저는 그냥 아무 말 없이 있었어요.

며칠 전에는 눈이 엄청 왔어요. 옛날에는 눈이 내리면 무언가 포근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는데, 올해는 눈을 보아도 그다지 감흥이 없기에 그 얘기를 했더니, 또 '나이 먹어서 그런다'는 대답이 왔어요. 나이 안 먹었다니까! 다만 감흥이 없어지는 건 글 짓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좀 치명적인 질병 같은 것이라,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지 고민이 많이 됩니다.

이번 달은 딱히 명절도 없기 때문인지, 주어진 일을 열심히 수행하다가 시간이 다 가버렸어요. 연말도 여전히 바쁘겠습니다만, 몸 건강 마음 건강 모두 소중히 챙기면서 연말을 잘 마무리하길 기원할 뿐이에요. 동화책을 읽다가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나뿐'이라는 주제를 인상 깊게 접했습니다만, 그 말 그대로, 적어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내년 소망을 미리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10가지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와! 10개를 채우기에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근데 밝은 소망에 비해 표제작 제목이 되게 절망적이네요. 흠, 반면교사로 삼죠.)






입동立冬


"겨울 동안은 그럼 못 노는 거야?"

서운하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자연에서 지내는 데에 익숙해진 그녀에게 있어서 겨울은 달가운 계절이 아니었다. 반달가슴곰은 동굴로 자신의 가족들을 들여보내고 마지막 말을 건넸다.

"말했잖아. 우리가 다음 계절까지 살아남으려면, 지금부터 잠을 자야 해. 그게 곰과 인간의 차이야."

사실 서운한 건 반달가슴곰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개체 간의 차이를 극복하고 같이 다니기에는, 겨울 동안 자신들의 생명이 위험했다. 그렇기에 곰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굴 속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밤이 찾아왔고, 소녀는 마을로 내려와야만 했다.

적어도 겨울이 끝날 때까지, 당분간은 따분한 시간들이 이어질 것이었다. 매년 겪어야 하는 외로움이었지만, 익숙해지지는 못했다. 서당에서도, 집에서도 그녀는 혼자 지냈다. 유일하게 친하게 지내는 상대는 뒷산에서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곰뿐이었다. 그녀는 집에 틀어박혀 잠을 잤다. 부모는 밤늦게도 돌아오지 않았다.

깜깜한 밤이 되자, 아궁이의 불이 약한지 초겨울의 한기가 문틈으로 스며들어왔다. 그녀는 밖으로 나섰다. 그런데 집 밖이 떠들썩했다. 낯선 사람들이 행렬을 이루어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홀린 듯이 그 행렬을 따라갔다. 이윽고 관청으로 들어섰을 때, 높은 건물 위에 한복을 고이 입은 어르신 한 분이 음식을 대접받고 계셨다. 추어탕, 백숙, 시루떡, 우유. 특히 우유는, 어떤 맛일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조용히 음식을 드시던 어르신이 건물 아래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그녀를 건물 위로 데리고 오라고 했다. 그녀는 자신이 무언가 잘못을 한 것이라고 생각해 머리를 조아려 잘못을 빌었다. 그러나 어르신은 다른 빈 그릇에 우유를 덜어서는, 옆에 와서 같이 먹자고 이야기하셨다. 그녀는 상 위에 있는 산해진미를 하나씩 조심스럽게 맛보았다. 그리고 말을 물었다.

"혼자 있는 것이 힘들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러자 어르신은 추어탕 그릇을 비우시고는 말씀하셨다.

"이렇게 누군가와 같이 음식을 먹으면 될 거야."

다시금 우유를 잔에 덜어주셨다. 한 모금씩 마시니, 고소한 맛이 났다. 어르신은 하늘에 뻗은 감나무를 보며 말씀을 이어나가셨다.

"까치를 위해 까치밥을 남겨두듯 말이지."

그 말을 듣고 그녀는 생각했다. 나중에 깨어날 자신의 친구를 위해, 맛있는 과일을 미리 챙겨야겠다고. 연회는 밤새 이어졌다.






집중력(home gravity)


"나 요새 집에 있으면...... 자꾸 유체이탈을 겪어."

"뭔 소리야. 무슨 비유 같은 거야?"

"집에 들어가면 금세 잠들어버린단 말이야. 양치는 하고 자야지, 옷은 갈아입고 자야지, 항상 그렇게 생각하는데 결국 정신을 차리고 보면 정장 차림 그대로 침대에 잠들어 있어."

"피곤했나 보네. 일이 많이 힘든가 봐?"

"으응, 그렇지. 근데 어느 날부터 있잖아. 내가 꿈에서 양치를 하고 있는 거야."

"실제로는 못 했는데 말이지."

"어. 꿈에서 나는 침대에 누워 있는 나를 내려다보면서 양치를 하고 있어. 신기하지? 처음에는 그냥 꿈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있잖아. 날이 갈수록 꿈이 점점 길어지는 거야. 처음에는 양치만 했는데, 어느 날은 양치도 하고, 옷도 갈아입고. 어제는 있잖아. 옷도 갈아입고, 샤워도 하고, 심지어 빨래도 한 거 있지? 근데 일어나 보면 나는 여전히 정장 차림이고, 빨래는 안 되어 있고, 심지어 샤워도 안 해서 꾀죄죄한 거야."

나는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집에 뭔가 있는 걸까? 영혼이랑 육체를 쉽게 분리시키는, 뭔가 영적인 무언가가 있는 거 아닐까? 나 너무 무서워. 퇴마라도 시켜야 하나?"

"집 중력에 강하게 영향을 받는 체질일 수도 있어."

"그게 무슨 소리야?"

"집의 중력을 너무 강하게 느껴서, 육체는 그대로 침대에 끌어당겨진 채 영혼만 나가는 거지. 더 심해지면 아마 밖에도 못 나가고, 일도 못하고, 친구도 못 만나고, 그냥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서 영혼만 움직이게 될지도 몰라."

"와, 너무 무섭다. 어떡하면 좋지?"

"간단해. 퇴근하고 바로 집에 들어오면 돼. 그니까 여보, 내일도 친구 만난다고 새벽에 들어오면 진짜 죽여서 영혼만 남겨놓을 테니까 그렇게 아세요."






작지만 확실한 횡령

자본금에서 없어진 돈은 약 30만 원이었다. 직장인에게 30만 원은 적은 돈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돈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했다. 이런 말을 하기에는 뭐하지만, 횡령이라는 죄를 저지르면서까지 빼돌리기에는 어딘가 폼이 없어 보이는 금액이었다. 서울 자취방에서 월세를 내기에도 부족한 돈이었다.

범인은 금방 잡혔다. 범인으로 밝혀진 직원을 직접 심문하게 되었을 때, 나는 '왜 그런 짓을 했어요?'라는 질문을 먼저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30만 원이라는 애매한 금액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 입에서는 '어디에 썼어요?'라는 질문이 먼저 나왔다. 그가 한참을 입을 다물고 있다가 말했다.

"문구점에...... 썼어요."

문구점. 나는 그 세 글자가 가리키는 장소를 바로 떠올리지 못했다. 그만큼 예상치 못한 장소였던 탓이다. 나중에 그가 결제한 내역을 살폈을 때, 영수증에는 그런 물건들이 쓰여 있었다. 햄쥐 스테이플러. 2천 원. 나만의 반려 애완돌. 3천 원. (돌을 왜 3천 원이나 주고 사는 거지......?) 바로 붙여요 글라스데코. 5천 원. 불어불어 부루펜. 묶음으로 1만 2천 원.

마치 초등학생이 부모님 저금통에서 몰래 돈을 꺼낸 후 저지른 짓 같았다. 그러나 그는 초등학생이 아니었다. 하물며 그에게는 자식도 없었다. 그는, 구체적인 감정의 흐름은 모르겠으나 어쨌든 자기 자신을 위해, 남의 돈으로 문구점 사재기를 했다. 그 사실이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했다. 생활비가 심각하게 급했거나, 부모님 부양비가 당장 모자랐거나 하는 경우가 아니었다.

그제야 나는 '왜 그런 짓을 했어요?'라는 질문을 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온 질문이었다. 한동안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세요.'라고 하려던 찰나에, 그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돈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요."

"제 돈이...... 없어서......"

그는 말단 사원도 아니었다. 회사에서 꽤 성과를 올리던 직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성과를 올려도, 자신의 통장에 들어오는 돈이 그대로라는 것에 불만을 품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는 회식이 끝나고, 갖고 있던 법인 카드를 들고 한참을 방황하다가 무인 문구점에서 사재기를 했다.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마음껏 사지 못했던 어릴 적의 기억이, 문구점에 진열된 물건들을 보는 순간 충동으로 폭발했다는 모양이다. 취기에 법인카드를 긁는 그의 모습이 CCTV에 잡혀 있었다. 제정신을 차리고 집에 있는 문구 더미를 반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미 몇 개 뜯고 사용한 것도 있고, 자신이 경비 관리를 담당하고 있기도 해서 처리를 미루다가 어쩌다 보니 감사에 걸린 것이었다.

설령 적은 돈이더라도 횡령은 횡령이었다. 더군다나 이런 기묘한 사유로 사건을 일으킨 사람을 회사 안에 놔두는 것은 더더욱 기묘했다. 그가 해고되었고, 그의 책상에 있던 반려돌만이 화분 옆에 놓여, 마치 원래 있었던 돌처럼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가 법인카드를 긁고 바로 개봉해 버린 상품들 중 하나였다.

나는 어느 날 회사에 아무도 없는 때에 그 반려돌 앞에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는 산에서 보는 자갈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그 돌에 손을 댄 채로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그의 감정을 한번 따라가 보려 했다. 돌은 아무 말이 없었다.






무면허 심리상담 긴급처방


-저런, 지금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제가 감히 가늠을 할 수가 없겠네요. 그래도 저는 당신이 삶을 포기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자, 따라해 보세요. 나는 소중한 사람이다. 나는 잘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방은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이곳 센터의 단골손님이다. 매주 월요일 아침에 찾아와서는 학교에 가기 싫은 이유와 삶을 포기하고 싶은 이유를 줄줄이 나열하며 등교를 거부하는 친구다. 내 자식이었으면 한 대 쥐어박았을 것이다. 그러나 고객이니 그럴 수는 없었다. 매주 저렇게 마음대로 나를 자격 없는 사람 바라보듯이 비웃으며 자기 할 말만 늘어놓다가, 내 지시사항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고객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상담사 자격증, 없죠?

나는 입을 다물었다. 들켰다. 원장선생님도 아세요? 나는 그제야 그 학생을 무척이나 공감하고 싶어져서, 그 학생이 원장에게 이르기 전에 어떻게든 삶을 포기하면 안 되는 이유를 만들어줘야 했다. 그래서 말했다. 매주 들어줘야만 했던 그 학생의 취미와 흥미 같은 것들을 머릿속으로 필사적으로 끄집어내며.

-자, 따라해 보세요. 삶을 포기하면 안 돼요. 삶을 포기하면 안 되는 이유, 많잖아요. 따라해 보세요, 빨리. 나는 2025년에 나오는 마녀배달부 시즌2를 보고 싶다. 나는 내년 중 후반기에 나올 <어나더 월드>를 스위치로 하고 싶다. 나는 이번 달에 미처 못 간 드로핀 콘서트를 연말에 가고 싶다. 나는 그러고 싶은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삶을 포기할 수 없다. 더 크게, 더 크게! 나는 내년에!






삼 년 뒤에 지구가 멸망할 거니까요


-근데, 오늘처럼 민원인한테 심한 말을 자주 들으시면서 어떻게 멘탈 유지를 그렇게 잘하세요?

동기는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고 잔잔한 웃음을 띄우며 얘기했었다.

-삼 년 뒤에 지구가 멸망할 거니까요. 그때가 다가오면, 오늘 있었던 일은 무척이나 작은 일일 테니까요.

그 말을 들은 옆의 다른 선배가 말했었다.

-어휴, 또 불길한 소리 한다. 아무리 일이 힘들어서 그렇게 믿는 거야 상관없다지만, 계속 듣고 있으려니까, 진짜 삼 년 뒤에 지구 멸망하는 거 아닌가 무섭다 가끔.

-그야 진짜로 삼 년 뒤에 멸망하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얼굴에서는 분명히 그걸 진짜로 믿고 있는 듯한 기색이 엿보이기는 했었다.

나는 전선으로 이동하는 열차 안에서, 손에 든 소총의 서늘한 감촉에 여전히 익숙해지지 못한 채 창밖을 보았다. 다 쓰러져가는 빌딩들이 차례차례 눈에 들어왔다.

그때 어떻게든 했어야 했는데. 업무 스트레스를 받는 동기를 어떻게든 잘 달래주었어야 했는데. 그로부터 삼 년이 지났고, 진짜로 지구가 멸망할 위기에 놓였다. 멸망할 기미 하나 없던 지구를 직접 뒤집어엎은 사람은, 다름 아닌 그 동기였다. 강당 앞에서 연설을 하던 동기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고 머릿속에서 지웠다. 나는 그때, 무한히 이어지는 박수 소리 그저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인상이 너무 좋으세요


"어제 저는 길을 바삐 지나가는 한 청년에게, 용기를 내어 말을 건넸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곧바로 이어폰을 다시 귀에 꽂더니, 뒷말을 더 듣지 않고 저를 쌩 지나갔습니다. 그냥 지나간다면 다행이지만 어떤 분들은 입에 담을 수 없는 쌍욕을 하시기도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하물며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살면서 긍정적인 말을 건네받는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고 봅니다. 태초에 우리는 모두 한 가족이었으나,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핵가족화가 진행되어 이제는 가족끼리 사랑한다는 말도 잘 못 하게 되었습니다. 고독사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불행한 시대에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로 좀 더 따뜻한 말을 전달하는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저희의 말에 진정성이 없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저희는 나름대로 여러분들에게 진심을 담아 말합니다. 인상이 참 좋으세요. 관상을 보니 잘 되실 것 같아요. 진짜 인상이 안 좋은 사람한테, 예? 관상이 안 좋은 사람한테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물론 할 수도 있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요. 이 말이 왜 불쾌합니까? 불쾌한 기분을 느끼셨다는 반응을 접할 때마다, 곧 있으면 정말로 세상에 지옥불이 떨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악마들이 벌써 인간 세상에 도래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는 계속 좋은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저희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여주십시오. 길에서 저희를 만나면 서로 따스한 말을 주고받읍시다. 그것만이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모두 다 함께 천국에 가는 길입니다."

교회 앞에서 하는 연설에 팔랑귀인 나는 반 정도 넘어갔다. 확실히 좋은 말을 듣고 나쁘게 대응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다음에 길에서 그런 일을 겪게 되면, 이번에야말로 '당신도 인상이 너무 좋으세요'라고 해야지. 다음날 나는 길에서 다시금 붙들렸다.

"저기요, 제가 봤는데 인상이 너무 좋으세요."

순간 '당신도 인상이 좋으시네요.'라고 하려다가 말이 잘못 나왔다.

"남이사."







주말에아무것도안하기운동본부


일요일에 침대 위에 남동생이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나는 일요일이니까 집이나 좀 치우라고 한소리 했다. 그러자 남동생은 천장으로 시선을 향한 채 나지막이 말했다.

"나 이제부터 주말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아직 대학생인 애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까지 너무 평일과 주말을 구별 없이 일했던 것 같아. 공부도 그렇고, 알바도 그렇고. 그랬더니 몸이 언제 쉬어야 할지를 잘 모르는 것 같아. 계속 일하는 상태로 유지하고 있다고 해야 되나? 그러니까 오늘 일요일이잖아. 일요일만큼은 내 몸에게 휴식을 주려고."

"근데 너 과제 남았다고 하지 않았어?"

"남았어. 하지만 결국 하지 않았어."

"마감이 언제까진데."

"오늘 자정까지."






막다른 길에 선 붕어빵


"학생, 높이 서있는 벽을 앞에 두고 있으면, 사람은 지레 겁을 먹어서 막다른 길이라고 생각하곤 하죠. 하지만 하늘까지 닿는 벽은 존재하지 않듯, 막다른 길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만약 막다른 길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고개를 들어 그 벽을 찬찬히 보세요. 생각보다 뛰어넘을 만한 높이일지도 모르니까요."

그 말과 함께 붕어빵 아저씨는 붕어빵을 건네주셨다. 나는 어딘가 심오한 그 말이, 유독 비싼 붕어빵 가격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저 나는, 가게가 되게 구석에 있네요, 라고 말했을 뿐이다.






소설小雪


"서울은 오늘 첫눈이 내렸어."

"그래? 아직도 내려?"

"응. 펑펑 내리네."

"부산은 아직 비인데. 내일 그리로 갈게."

나는 잠시 자기 상황을 잊은 채, '내일 그리로 가겠다'는 말을 했다. 한국을 벗어나기 전에 한 번은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이번에 떠나는 곳은, 눈을 구경할 일 없는 더운 지방이었다. 아마 떠나면 몇 년은 돌아오지 못하겠지. 그렇다면 눈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오늘뿐이었다. 딱히 눈 내리는 걸 의무적으로 봐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쉬움이라는 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눈으로 바뀔 기미는 없었다. 그가 말했다.

"어떻게 오게?"

"글쎄, 기차라도 타고 갈게."

"벌써 새벽 5시잖아. 기차로 오기에도 너무 멀고. 아침 9시라며, 비행기."

그가 제시한 현실의 벽이 나의 소망을 짓눌렀다. 시간은 생각보다 빠듯했다. 조금 분했다. 왜 첫눈이 내리는 걸 지금 말하는지, 투정을 부리고 싶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잘못은 날씨에게 있었다. 아니면 지구온난화에게 있었다. 조금 더 환경을 사랑할 걸 그랬다.

"그래도...... 이번에 가면 당분간 못 오잖아."

내가 서운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말했다. 우리 둘은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그쪽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나에게 국제 면허는 없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둘 다 서로 오갈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그는 밖에서 눈을 보고 있는 듯했다.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는지, 플라스틱 같은 것이 딱, 딱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아, 눈 가지고 놀고 있었어. 많이 쌓였길래. 자랑하려는 의도는 없었겠으나, 나에게는 그것이 자랑하는 말처럼 들렸다. 내가 조금 핀잔을 주자, 그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아하, 미안, 미안. 내가 생각이 짧았네. 그래도 화를 낼 거면 선물 받고 나서 해. 좀만 기다리고 있어."

그렇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가 얼마 안 가 전화가 끊겼다. 것보다 선물이라니. 지난주 송별회에서 이미 선물과 따뜻한 말을 많이 받았다. 그로부터 받은 선물도 상당했다. 그것들은 이미 소중히 포장해서 택배로 현지에 보내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또 선물? 나는 정리가 끝나 캐리어를 빼면 아무것도 없는 기숙사 방 침대에 누워,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며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


인터폰 소리가 들렸다. 손목시계를 보니 아침 7시였다.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공항이 근처이니 상관은 없었지만, 조금만 더 늦잠을 잤으면 비행기 시간을 못 맞출 뻔했다. 눈을 손으로 비비며 인터폰 전화를 받았다. 경비원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 앞에 기사님 오셨으니까, 물건 받아가셔요. 기사님이요? 나는 얼떨떨한 기분을 끌어안은 채, 잠옷 바람으로 나섰다. 기숙사 공동 현관에는 옷을 두껍게 입은 배달 기사 분이 와계셨다. 건물 밖에 보이는 스쿠터에는 퀵이라고 쓰여 있었다.

물건을 보낸 사람은 그였다. 나는 그 묵직한 상자 같은 것을 든 채로 한동안 현관에 서 있었다. 준비를 끝내고, 조식을 먹으면서 한숨을 돌리고 있을 때 그 상자를 열어보았다. 검푸른 상자의 안에는 아이스팩으로 둘러싸인 작은 상자가 담겨 있었다. 그것을 열어보았다. 투명한 상자 안에, 흰 오리가 두 마리 있었다.

인스타로 본 적이 있었다. 이 나라에서는 겨울마다 눈으로 오리를 만드는 것이 유행이라고 했다. 나는 두 오리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는, 밤중에 그것을 열심히 만들었을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눈이 내리는 모습을 아쉽게도 보지 못했으나, 아직 녹지 않은 눈오리가 그곳의 정경을 전달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눈오리에 손을 댔다. 처음 만져보는 눈이 상당히 차가웠지만, 반대로 마음은 무척 따뜻해졌다. 그에게 전화를 했다. 선물은 잘 받았어? 응. 많이 차갑네. 그게 눈이라는 거래. 그래, 당신 덕분에 잘 알았어. 만드느라 고생 많이 했겠네. 고생은 퀵서비스 아저씨가 하셨지 뭐. 어쨌든, 더운 지방에서 아프지 말고, 잘 지내. 타지 생활을 잘 견딜 수 있기를.

나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 부디 당신도 추운 겨울을 잘 넘길 수 있기를. 전화를 끊었다. 잠시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시간은 얼마 없지만, 잠시나마 이 나라의 겨울을 마음속에 담아 가기로 했다. 그의 말대로, 더운 지방에서 잘 견딜 수 있도록.






살리에리 증후군


고등학교 동창이 화면 너머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영상 통화 같은 것이 아니었다. 잘 보지도 않던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가, 문득 <인기가요> 마지막 무대에 낯익은 얼굴이 비쳤다. 화장을 하긴 했지만, 틀림없이 그 애였다. 검색해 보니 출신 고등학교가 같았다. 그 애는 그룹의 일원으로서 고등학생 때 보여준 적 없었던 춤과 노래 실력을 뽐내고 있었다.

등 돌릴 사이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막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학창 시절의 친구들이 으레 그렇듯 (으레 그런 건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졸업하고 몇 년인가 떨어져 지내면, 진짜 친했던 몇몇 사람들하고만 연락하며 지내게 된다. 그 친구도 졸업 후 자연스럽게 멀어진 친구 중 한 명이었다.

화면 너머에 아이돌로서 활짝 웃고 있는 그 애의 모습을 보며, 나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강물 밑바닥에서 검은 흙 같은 것이 뿌옇게 올라오는 것을 보는 듯한 감정이었다.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는 모르겠다. 질투인가. 내가 아이돌을 하고 싶어하는 것도 아닌데. 텔레비전에 나올 일은 아니더라도, 나도 번듯한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리고 나 스스로는, 내가 남의 생활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질투라는 건, 자부심이 없는 사람들이 품는 감정이라고 했다. 언젠가부터 내 자신감이 많이 낮아진 걸까? 남의 행복에 지나치게 배 아파하는 사람은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배웠다. 언젠가부터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기 시작한 걸까? 주말에 본가에서 부모님 김장을 도와드리다가, 문득 배추 속에 양념을 묻히던 손을 멈춘 채로 가만히 나는 생각에 빠졌다. 많이 연약해졌나 보다. 겨울이 거듭될 때마다 한층 더 뼈가 아파오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나이를 먹으면서 나도 많이 연약해졌나 보다.

"젊은 애가 별소리를 다 한다."

옆에 빨간 고무대야를 탁, 놓으면서 엄마가 말했다.

"너는 남 신경 안 쓰고 사는 줄 알았더니."

그도 그럴 것이다. 엄마 친구 분들이 모여 계씬 자리에서, 어떤 분이 사업에 성공한 자식을 자랑하시면서 나에게 '돈도 안 되는 직업 뭐 하려 하냐'라고 비교를 하신 적이 있다. 우리 엄마가 거기에 화를 내기도 전에 내가 맞받아쳤다. 하고 싶은 일 하고, 손 안 벌리고 산다고. 근데 자식 분은 행복하세요? 그러자 먼저 비교를 하신 그분이 오히려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정작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 자리는 엄마가 계시니까 맞받아칠 수밖에 없었지만, 만약 택시 같은 곳에서 그런 얘기를 들었다면 나는 아, 네 하고 넘겼을 것이다. 세상에는 남과 자신을, 혹은 남의 자식과 자기 자식을 비교함으로써 자신의 성공과 행복을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많고, 그렇게 해서라도 마음에 품고 있는 결핍 같은 게 충족된다면 나는 기꺼이 나를 비교 대상으로 내어줄 생각이 있었다.

나도 학생 때는 그랬다. 자신과 남을 비교하면서, 그걸 원동력으로 좀 더 좋은 성적과 실적을 쌓으려고 했다. 하지만 졸업하고 나니 그러는 것도 지쳐버렸다. 그때부터 남이 눈에 안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내 삶을 유지하기에도, 무언가 벅찬 지점이 있었다. 그렇기에 오랜 동창으로부터 느낀 질투라는 게, 나로서는 굉장히 이상한 감정이었다.

"그런 거면, 반대로 생각해 봐. 네 삶이 그나마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거 아닐까? 남 신경이 다 쓰일 정도로."

"으음, 근데 그 애한테만 느낀 감정이라."

"됐어, 그럼. 깊이 생각하지 마. 사람 다 그래. 아, 방 청소했는데 너 옛날에 쓴 일기장 있더라. 돌아가기 전에 그거라도 보면서 옛날 추억에라도 잠기셔."

"아, 엄마 진짜 내 방 막 들어가지 말라니깐."

그렇게 그날 담근 김치 일부는 저녁에 수육과 같이 먹고, 나는 자기 전에 방 한구석에 있는 일기장을 들었다. 과거에 남긴 기록을 다시 읽는 게 그렇게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지금 봐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을, 굉장히 심각한 일처럼 써놓은 구절들은 항상 낯뜨거웠다. 컴퓨터 파일이었으면 언젠가 창피해서 지워버렸을지도 모른다.

몇 장 넘기다가, 그 애가 등장하는 구절에서 내 손이 멈췄다. 일기장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순수하게 축하의 말을 받았을 때, 나는 그 애한테 졌다고 느꼈다.

날짜를 보고, 휴대폰 사진을 뒤적여보았다. 이 날은 학교 축제 사회자를 뽑는 날이었다. 당시 나는 반장이었다. 무슨 욕심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활기록부에 스펙을 하나라도 넣으려고 사회자에 지원했었다. 그 애는, 그때까지는 아이돌 꿈을 꾸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 애도 같이 지원했다. 그렇게 그 친구와 경연 같은 것을 했고, 담임선생님은 내 손을 들어주셨다. 실력보다는 반장의 생활기록부를 위한 것이었다.

나는 그 애의 입장에서 속상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애는 순수하게 내가 사회를 맡은 것을 축하해 줬다. 순수하고 맑은 표정이 아직도 기억이 났다. 서운하지 않냐고 살짝 묻자, 그 애의 답은 '서운하지 않다'가 아니었다. '왜 서운해야 해?'였다. 그걸 보고 나는, 아무리 자신이 뛰어난들 그 아이보다 밝을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밝을 수는 없었다. 밝은 척을 하지도 못했다. 나는 성인이 되어,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일을 그만두었을 때 자기 자신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나는 남의 불행에 기뻐하지 않는 동시에, 남의 행복을 축하해주지도 않았다. 남이 잘 되는 걸 보고 배가 아프지 않다고 할 수는 있어도, '왜 배가 아파야 해?'라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랬나 보다. 그 친구가 여전히 그때와 같은 표정으로, 무대의 조명에 뒤지지 않는 밝은 기운을 뿜어내는 모습이 나에게는 너무 눈이 부셨던 것이다.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내일 일어나면 팬레터라도 쓸 수 있는지 한번 찾아봐야지. '너 나 기억해?' 같은 쪽팔리는 문구는 쓰지 말자. 그러나 잠들 때까지 몇 번이고 머릿속에 문구를 생각해 보아도, '당신의 밝은 모습이 좋아요' 같은 이상한 문구 빼고는 생각나는 게 없었다. 어색하고 부끄럽다. 아침에 다시 생각해야지, 에휴. 확실하게 안 건 하나 있다. 이래서 다들 아이돌 덕질을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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