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와 둔갑술

수첩소설 4.26-4.27 × <앨리스타임> 단편집

by 푸른여우

1.

"현관에 있는 체온감지기 있잖아요. 거기서 '정상입니다'라고 하면 되게 신경 쓰이지 않아요? 나만 그런가."

교수님이 말씀하셨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저도요,라고 할 뻔했다. 이 분야 사람들이 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일상의 사소한 문구들마저도 여러 갈래로 해석해버리는 것이 어느새 내 습관이 된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교수님은 '정상이랑 비정상을 나누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좀 그렇더라고요'라고 말씀하셨고, 반면에 나는 감지기 앞에 설 때마다 '나도 정상으로 쳐주는구나'라고 생각했으니 결이 조금 달랐다. 나는 이상한 부분에서 긍정적인 사람인지라, 매일 감지기 앞에 서는 게 조금은 즐거웠다.


2.

가끔씩 나는 나의 조상이 사실은 너구리 같은 산짐승이고, 나는 인간으로 둔갑해 산에서 내려와 살고 있는 동물이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내가 유심히 관찰해보건대, 인간들은 자연스럽게 포인트를 적립하고, 자연스럽게 서로 친해질 궁리를 마련하고,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일지라도 생계를 위해서 뛰어드는 한편, 싫은 사람 앞에서는 절대로 싫은 티를 내지 않았다. 부처님에 버금가는 아주 무서운 족속들이다.

그에 비해 매번 나의 감정과 생각들은 어딘지 모르게 현실이랑 자꾸 어긋나 있는 것 같았다. 인간과 닮고자 최대한 노력하지만, 결국에는 정체를 들킨 후 도망갈 운명인 옛날 요괴들 같았다.


3.

그날 저녁에는 학원을 마친 앨리스랑 우연히 만나 아이스크림 가게에 갔다. 초등학교 5학년인 이 아이는 '영수증 필요하세요?'라는 점원의 말에 자연스럽게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영특한 인간의 아이이다. 집에 가는 동안 앨리스는 자신이 요새 빠져 있는 만화 얘기를 했다. 학교에 나오는 요괴를 무찌르는 그런 판타지 만화인 듯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도 내 정체를 밝혀야만 했다.

"언니도 실은, 인간이 아닐지도 몰라."

그 말을 듣고 앨리스가 이상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럼 뭔데요?"

"모르겠어. 어쨌든 인간은 아닌 것 같아."


4.

거기까지 듣고, 앨리스는 잠깐 동안 묵묵히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입을 우물거리면서 무언가를 깊게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나의 조상이 어떤 동물일지를 머릿속에 그려보고 있던 참이었다.

그때, 앨리스가 손을 뻗어서 내 귀를 가볍게 잡았다. 순간 나는 얼떨떨해졌고, 그래서 아무 말도 못 한 채 그저 가만히 있었다. 앨리스는 무언가를 확인하듯 나를 빤히 쳐다보며, 확신에 찬 말투로 이내 말했다.

"인간이에요, 언니는."

그 말에 나는 시선을 제대로 두지 못하고 되물었다.

"확신해? 난 영수증 필요하냐고 하면 당황해."

"그건...... 아직 서툰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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