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소설 5.13
우중충한 조명만큼이나 어둡던 회식 분위기가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도토리 4인분이 철판 위에 놓이면서였다. 현수는 자연스럽게 집게를 잡아 들었다.
"다음 주부터 다들 뭐 하나?"
적막한 분위기를 깨고 팀장이 질문을 던졌다. 어쩌다 보니 현수는 언제나 팀장 옆자리에 앉는 신세였으나, 그에 대해 그는 딱히 불만을 토로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다른 직원들이 너도나도 부담스러운 자리를 피하려고 한다면, 자신이 그곳에 앉는 것이 맞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현수는 능숙하게 도토리를 이리저리 집게로 뒤적거렸다.
"저는 한 네 달만 잤다가, 나머지 두 달은 애아빠하고 여행이나 좀 갔다 오려고요."
인상 좋은 다른 팀원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옆에 있던 신입이 맞장구를 쳤다.
"안 피곤하시겠어요? 저는 여섯 달 풀로 자도 일 나오려면 힘들던데."
"그래도 모처럼만에 쉬는데 이때라도 시간 내야지, 언제 가. 힘든 거야 나중 일이고."
그렇게 질문의 차례가 현수에게로 돌아왔고, 그는 자신이 작년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자신은 그냥 잘 거라고, 별다른 계획은 없다고 이야기하며 다 구워진 도토리를 각자의 접시에 나눠 담았다. 팀원들은 그에 대해 딱히 의외라는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지나치게 성실한 현수라는 인물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그가 아마 동면 기간에도 회사에 나와 일을 할 것이라며, 실은 편집2부에도 소속되어 있어 겨울에도 나와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농담 섞인 추측을 하기도 했다. 생물에게는 보통 공과 사라는 게 있기 마련인데, 현수에게는 일반 다람쥐들이 흔히들 갖고 있는 사적인 영역이 어쩌면 결여되어 있는지도 몰랐다.
애인이라도 좀 만들고 그래, 심심하잖아, 팀장이 이야기하자, 요새 그런 말 함부로 하면 안 돼요, 맞은편에 있던 팀원이 받아쳤다. 현수는 자신의 사생활이라는 것에 대해 떠올리려 했지만, 특별한 이미지가 생각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가면 오전에 못다 한 일을 하거나, 언젠가 사뒀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시간을 보냈다기보다는 '때웠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 모습을 누군가가 본다면 '업무의 연장선'이라고밖에 정의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사생활이라고 하는 단어는, 현수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어느 작가로부터 받았던 문자에도 들어 있었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아서 원고를 독촉하고 있던 와중, 그 작가는 현수에게 그런 투의 문자를 보낸 적이 있었다.
선생님 저도 사생활이란 게 있는데......
하고. 일을 막 시작한 참이었던 그는 자신들의 사정을 요만큼도 알아주지 않는 거만한 베스트셀러 작가에게 분노하기보다도, 우선 그 '사생활'이라는 단어가 주는 오묘한 감정에 한참을 휩싸여 있었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듯한 공허한 느낌이었다. 만약 자신의 생활 영역을 구분한다면 과연 어디까지가 공이고, 어디까지가 사일까.
호프집 한 구석에 놓인 텔레비전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진상 규명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는 생물들의 모습이 비쳤다. 저들도 겨울잠 기간에는 잘까, 하고 현수는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일하는 것도 좋지만, 쉬어가면서 하세요. 가끔 보면 병날 것 같아요."
맞은편에 앉은 팀원이 그의 집게를 가져다가 다음 도토리를 불판 위에 올렸다. 현수는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다음 주부터 자신이 취해야 할 휴식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 그녀 말 그대로, 최근 들어서 자꾸만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운 것은, 자신이 제때 쉬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편집2부에서도 그가 일을 하고 있다는 소문은 완전히 헛된 소문은 아니었다. 현수는 작년 겨울잠 기간에도 이따금 회사로 나와서는 2부 직원들과 업무에 관해 얘기를 나누곤 하던 것이다. 요새 나오는 책들은 이렇더라, 라는 식으로, 지나가다 들렀다는 식으로 말을 건네면서. 일이 좋아서 그랬는지, 단순히 자신의 루틴을 지키려는 본능 때문이었는지는 본인도 잘 몰랐다.
단지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그도 어쨌든 생물이었기 때문에, 어렴풋하게 그의 정신 또한 한계에 다가서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번 겨울잠 기간에는 반드시 자신도 '휴식'이라는 것을 취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조만간 큰 사단이 날지도 모른다. 스트레스로 쇼크사하는 다람쥐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엊그제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그 추세에 자신이 편승하고 싶은 생각은 적어도 없었다.
본가로 향하는 기차는 내일 오전 8시 출발이었고, 맥주를 마시는 지금은 아직 오후 10시도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