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잠 3부

수첩소설 5.14-5.17

by 푸른여우

"쉰다는 건 뭘까?"

"뭐?"

현정은 한참을 궁리하던 남동생의 입에서 나온 말에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집에 내려와서는 부모님 일도 돕고, 저녁 먹을 때 이래저래 말도 잘하길래, 아 그래도 얘가 조금은 사회인처럼 됐구나 하고 내심 안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잘 때가 되어서 흘깃 보니 여느 때처럼 동생은 꼬리 정돈도 안 하고 한참을 생각에 빠져 있었다. 책상 앞에 묵묵히 앉아 있는 그 모습은 영락없이 예전에 봤던 동생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녀는 정돈이 덜 된 동생의 꼬리를 이리저리 앞발로 손질해주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그냥 쉬어. 다음 주부터 계속 잘 건데."

"그러고 싶은데. 뭔가 못 쉬겠어, 집에 오면."

자취방에 있을 때는 비는 시간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무언가를 했다. 그런데 습관이 잘못 들은 것인지 현수는 본가에 내려와서도 무언가를 하지 않고는 못 배겼다. 여기 오면 가장 마음이 편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요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이 자꾸만 자신을 덮치곤 했다. 심장이 빨리 뛰는 거 같고, 머리가 묘하게 아파오기도 했다. 일이 손에 익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그 눅눅한 감정은 본가로 도망 온 자신까지 쫓아오는 듯했다. 현수로서는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었다.

"그래서 작년에 안 온 거야? 부모님이 얼마나 아쉬워하셨는데."

"아니, 그때 내 방만 장판 썩었다며. 방 고칠 때까지 오지 말라고 하시길래..."

그러고 보면 그때 그런 일이 있었다. 가족들끼리 서로 업자를 부르겠다고 말만 해놓고 동면 기간이 끝날 때까지 잠만 잤던 탓에, 현수 방에 업자가 들어온 건 꽤나 최근의 일이었다. 현정은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그냥 맛있는 거 먹고 쿨쿨 자고 그래. 나라에서 그러라는데."

"그런가."

"뭔가 일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지 너는?"

하긴, 몇 달 전인가 동생이 집에 내려왔을 때 동생은 그때도 편히 잠을 못 자는 듯했다. 이따금 밤중에 나와보면 노트북을 켜고 문서작업을 하고 있기에, 적당히 하고 자라고 자신이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동생이 쉬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학생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열심히 자기 할 일을 하는 모습에 어른들은 입이 닳도록 칭찬했지만, 누나 입장에서는 저렇게 하다가는 병이 먼저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곤 하는 것이다.

"누나는 일 끝나고 뭐 하는데?"

"일 끝나면 뭐, 술 마시고."

"회식 같은 거야?"

"회식을 왜 가. 친구랑 가야지... 그래 가지고 오늘 이유 없이 먹은 욕들 다 털어내고, 노래방 가서 소리 지르고... 그렇게 하고 나면, 아 그래도 내일까진 나가야겠다, 하고 다음날 나가지."

현수는 자신이 누나의 루틴을 따르는 상상을 해보았다. 물론 그녀도 동생이 이런 루틴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현수는 막 모여서 떠들면서 마시기보다는 혼자 사색을 즐기며 마실 것 같은 그런 다람쥐였다. 땅콩도 하나씩 까먹으면서 음미하는 그런 다람쥐.

다 정리한 꼬리를 통통 두드리며 그녀는, 뭐 해보고 싶은 거라도 없냐고 이야기했지만, 현수는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학생 때는 책 읽는 게 좋았지만, 출판사에 들어간 후에는 유일한 취미가 일이 된 것만 같아 모든 책들이 일거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더 늦기 전에 찾아야 돼. 내 나름대로 쉬는 방법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시금 머리 안쪽에서 지잉, 하고 무언가가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겨울잠 기간이 시작되면 다들 잠이 들 테니, 적어도 현수는 늦기 전에 아는 사람들이라도 만나면서 한 번씩 물어보기로 했다. 다들 어떻게 쉬는지. 어떻게 해야 마음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는지. 안 그러면 이번 겨울부터는 자취방은 물론 본가에서도 눈 뜬 채로 지낼지도 모른다.

현정이 방문을 나서기 전 문득 그런 말을 했다.

"근데 네 방 뭔가 이상한 냄새 안 나냐."

"저번에 왔을 때부터 그런 거 같은데."

어딘지 모르게 습한 냄새가 방 안을 돌고 있었다. 나무를 파서 만든 벽이라 부패할 위험이 없는 건 아니지만, 요새는 다람쥐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서 소독도 정기적으로 나온다. 혹시나 해서 장판을 들춰봤지만 새 장판을 깐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오히려 더 깨끗해 보였다.

현정은 잠시 생각하다가, 동생을 보고 이야기했다.

"씻고 다녀라 좀."

"남이사."

현수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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