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소설 5.18
정직하게도 그가 아침 7시에 일어나자마자 한 행동은 인터넷에 '쉬는 방법'이라고 검색해보는 일이었다. 그 결과 현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적절하게 쉬는 방법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수상 스포츠나 낚시, 화분 가꾸기 등등 갖가지 활동들부터 시작해서 자기 루틴에서 벗어나라, 올바른 심호흡을 해라, 같은 조언들도 있었다.
개중에 다람쥐 몸집에서 가능한 것들을 찾아보던 와중에, 별로 와닿는 조언들이 없어서 현수는 다시 노트북을 덮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어젯밤도 마찬가지로 편하게 잠에 들지는 못했다. 오랜만에 집에 와서 그런 걸 거야, 아님 저녁때 마신 커피 때문에 그런 걸 거야,라고 애써 생각하며 오늘 밤은 적어도 잘 잘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기대하는 것밖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침밥을 먹은 후 그는 크로스백을 매고 밖으로 나섰다. 바깥바람을 쐬고 있으려니 방금까지 느꼈던 초조한 감정이 조금은 가라앉는 것도 같았다. 겨울이 가까워지면서 기온은 급격하게 내려갔고, 낙엽들은 하나 둘 지기 시작했지만 아직 바닥을 덮을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복슬복슬하게 난 털들은 그런 계절의 변화에 앞서 현수의 체온을 아직까지 잘 유지해주고 있었다. 후우, 하고 숨을 길게 내쉰 후, 그는 오랜만에 보는 마을의 풍경에 시선을 주었다.
마을에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은 자기와 같은 다람쥐들이 거주하기에 쾌적했다. 백화점이나 영화관 같은 편의시설에 대한 접근성도 좋아서 학생 때도 별로 불편함이 없었다. 현수는 입구 즈음에 위치한 나무 벤치에 앉아서 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흔들리는 낙엽들 사이로 햇빛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마치 바닷가에서 본 반짝거림 같아. 근데 마지막으로 바다를 본 게 언제였지? 한 해, 두 해, 과거로 돌아가 보았지만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를 쉽사리 떠올리지 못했다.
-야
학생 때까지 되새겨 보며 바다를 본 기억을 떠올려보려던 와중 은하의 문자는 갑작스레 날아왔다.
-너 왔다매
현수랑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동창이었다. 대학교를 일찍 끝내고 바로 출판사로 들어간 현수랑 달리, 은하는 한 2년 정도 일한 후 뒤늦게 대학에 들어간 터라, 같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까지 대학생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보다 한참 어리다면서 은하는 언젠가 이야기를 했다. 현수는 은하가 세상의 여러 시각들을 개의치 않아하는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서로 사는 곳이 달라도 둘이 거의 4년 넘게 연락을 주고받는 이유는 현수의 존경심도 한몫했다.
-왔지.
-왔으면 왔다고 얘기를 해야지 인마
-바빠가지고.
-뭘 바빠 바쁘기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네
곧바로 은하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이런 식으로 상대방이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는 상황인 것을 알면 대뜸 전화부터 걸곤 했다. 아무래도 그로서는 문자라는 통신 수단이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명랑한 목소리가 핸드폰을 타고 들어왔다.
[뭐 하냐. 토요일인데.]
"지금?"
그 말에 현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휴식 공간으로 만들어진 숲에는 바람이 통과하는 소리만이 사라락 울려 퍼지고 있었고, 주위에는 산책을 나온 몇몇 어르신들을 빼면,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는 젊은 다람쥐는 자기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런 생각이 들었고, 지금은 여느 때보다 편한 기분이니, 이런 게 쉬는 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는 무심결에 그렇게 말했다.
"쉬고 있어."
[쉬고 있구나.]
"근데 쉰다는 게 뭐야?"
[뭔 소리야. 지금 쉬고 있다매.]
"잘 모르겠어. 쉰다는 게 뭔지."
[지금 하고 있는 게 쉬는 거 아니야?]
"그렇게 단정 짓고 싶은데, 확신이 잘 안 서서. 너는 어떻게 쉬는데?"
그 말에 은하는 차 시동을 마저 걸지 않고 조용한 차내에서 가만히 자기 자신을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야기했다.
[나? 그야 뭐, 방에 누워가지고 유튜브나 보던지, 애들 불러서 맛있는 거나 먹던지, 정 안 된다 싶으면 밤에 클럽 가서 놀든지 뭐 그러는 거지.]
"나도 해보면 안 돼?"
[뭐를. 어?]
"너 쉬는 것처럼 나도, 해보게."
은하는 어딘지 모르게 정열이 들어 차 있는 현수의 말을 들으면서, 이게 그렇게까지 열정적으로 말해야 하는 일인가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좀 오래되었지만 옛날에 보았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다음으로 책상 앞에 앉아서 몇 시간이고 버티고 있던 그가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 꼬리를 흔드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어딘지 모르게 현실적이지 못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이 너무나도 진지하게 들렸던 탓에, 은하는 '안 어울리는 짓을 왜 하냐'는 식으로 넘기지 못하고 자기 또한 그 문제에 대해 어느새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그런 얘기를 했다.
[내일 점심에 집으로 오든지. 그때까지 모르겠으면 한번 내가 제대로 알려줄게.]
이렇게만 말하고, 오늘 중으로 그가 부디 잘 쉬기를 바랐다.
그나저나, 별 거 없는 데 정말, 저러다가 어느 날 책 같은 거 쌓아놓고 있는 거 아닌가. 휴식에 관한 책, 이런 거. 은하는 그렇게 생각하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하긴 저런 열정이 있었으니 그래도 저렇게 살고 있겠지만, 그래도 은하의 입장에서 저런 열정을 본받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체질 상 맞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자신은 그럴 체질은 못 되었다. 쉴 때도 그런 생각을 하면, 어떻게 쉬냐. 은하는 마지막으로 그런 말을 건네고는 전화를 끊고 차 시동을 걸었다.
"그래."
현수는 휴대폰을 크로스백에 도로 집어넣고, 잠시 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벤치에 등을 기대고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침에 얻은 휴식법 중 하나인 '명상'이라는 걸 해보기로 했다. 숨을 천천히 들이마쉬면서 숫자를 세어나갔다. 하나아, 두울..... 세엣...... 나뭇잎들이 서로 바스락대는 소리와 따뜻한 햇살이 서서히 자기에게로 다가왔다. 자신의 숨소리는 점차 묻혔다.
그 고요한 숲 속에서 현수는, 된 거 아닌가, 이 정도면, 하고 생각했다. 내일은 그냥 얼굴만 보고 와야겠다. 현수는 이미 자신이 쉬는 방법을 발견한 것만 같아서 내심 안도했다.
그렇게 현수는 집에 돌아와 부모님과 같이 드라이브를 나간 후 저녁이 되어서 집에 돌아왔다. 그가 장롱면허였던 탓에 현정이 운전을 대신해주었고, 뒷좌석에 탄 부모님은 오랜만에 온 아들이 반가웠던 탓에 평소보다 많은 이야기를 하셨다. 혼자 사는 건 괜찮아? 청소는 잘하나 몰라. 그런 말이 나왔을 때 그는 자기 방에 어지럽혀진 옷들이나 책들을 떠올리면서도, 겨우겨우 '네, 잘해요' 하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네 누나보단 낫지? 네 누나 방 치우다가 엄마 꼬리 뜯어질 뻔했다. 아이, 엄마 진짜. 그래도 내 방에선 냄새 안 나요.
이래저래 떠들면서 저녁 즈음에 집에 돌아온 후 현수는 자기 몸에 일어났던 여러 이상 증상들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안도했다. 어쩌면 이번에는 편히 잘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 잘 자. 자기 전 인사를 나누고 그는 다시금 방으로 들어갔다. 이불을 덮고 꼬리를 베개 삼아 누우니, 그래도 오늘은 잘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깜깜한 방에서 곧이어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렇게 혼자가 된 그에게 다시금 까맣게 점철된 감정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심장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는 것만 같았고, 결국 그날도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