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잠 5부

수첩소설 5.19

by 푸른여우

새벽이 되어 그는 거실에 있는 소파에 누웠다. 창밖으로 어슴푸레 새벽빛이 스며들어올 즈음이 되어서야 그는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었고, 가족들은 어딘지 모르게 피곤해 보이는 현수를 깨우지 않고 소파에 그대로 두었다. 모친은 근처에 있던 담요를 얼굴 밑까지 덮어주고 난 후, 혹시 아들 방에 또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싶어 그의 방에 들어가 주위를 살폈다. 그 방은 현수가 학생 때부터 쓰던 방이었다. 현수는 적당히 좁지도 넓지도 않은 방 크기가 괜찮다고 말했지만, 모친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자식이 괜찮다고 이야기해도 더 큰 것을 내주지 못하는 아쉬움이 따랐다.

그녀는 장판에 날리는 다람쥐 털들을 테이프로 이리저리 정리하면서, 작년에 바닥 너머에 잔뜩 피어 있던 곰팡이를 떠올렸다. 물가에 가깝게 놓인 방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현수의 방은 언젠가 걷잡을 수 없이 곰팡이가 번진 적이 있었다. 그때 방에서 풍겼던 눅눅한 냄새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혹시, 하는 생각에 그녀는 장판을 들춰보았다. 그러나 한번 뜯어고친 바닥은 그녀가 주기적으로 제거제를 뿌린 탓인지는 몰라도 깨끗했다. 그녀는 혹시 몰라 한 번 더 제거제를 뿌린 후 밖으로 나왔다.

"약 쳤으니까 오늘은 좀 잘 만 할 거다. 마를 때까지 기다려."

모친이 현수의 등을 툭 쳤고, 그는 잠에서 깼다.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직장에서 문자가 몇 통 와 있었는데, 인수인계를 해주어야 하니 꼭 출근하라는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면 현수는 일에 대한 어떤 마무리도 없이 급하게 이 마을에 내려와 버렸다. 월요일은 대체공휴일이니, 출근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았다. 창문에서 바닥으로 길게 뻗은 햇빛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그는 쉬고 싶다고 생각했다. 일이 없었는데도 그는 어째선지 쉬지 못했다. 그는 곧바로 집을 나섰다.


은하가 사는 자취방에 오랜만에 들어갔을 때, 현수는 혼자 사는 다람쥐들이 얼마나 정리정돈을 하지 않는지를 깨달았다. 정리하다 만 페트병이나 휴지 같은 것들이 비닐봉지에 담긴 채 방 한구석에 방치되어 있었다. 은하는 그를 맞이한 후에는 방 한가운데로 돌아와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그리고는 오른손으로 바닥을 팡팡 두드리며 이야기했다.

"누워."

그 아무렇지 않은 말에 현수는 잠시 동안 누우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다가, 들고 온 크로스백을 한 구석에 놓고 자기도 은하를 따라서 옆에 누웠다. 게임에 열중하는 은하 옆에서 현수는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보았다. 자연스레 손을 모아 배 위에 올렸다. 어딘지 모르게 자신이 흰 천장을 향해 기도를 바치고 있는 것 같았다.

흰 천장은 어딜 가나 다 비슷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집에서 풍기는 어떤 냄새나 분위기 같은 것이 여기가 낯선 곳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현수는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천장을 바라본 채로 말을 했다.

"두 사람 누워도 한참 남네."

"자취방은 안 그래?"

"바닥에 눕기는 좀 벅차."

"팔 굽혀 펴기는 되냐?"

"대각선으로 해야 돼."

은하는 아이구, 하는 소리를 내면서도 휴대폰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현수도 별안간 스마트폰을 꺼내서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렇게 조만간 두어 시간 정도 시간을 보냈다.

문득 햇빛이 들어오는 각도가 이전과 달라졌을 즈음, 수십 개의 영상을 본 그는 일요일이라는 시간을 이렇게 보내는 것이 과연 의미 있는 일인지를 서서히 생각하게 되었다. 영상은 다음으로 넘어갔고, 드라마에서 발연기를 하는 배우 다람쥐의 영상이 나왔다. '나만 이런 거야? 내가 이상한 거야?'라고 이야기하는 배우는 누가 봐도 이상해 보였다. 현수는 영상을 그만 보기로 했다. 은하가 '이러면 좀 쉰 것 같아?'라고 물어봤을 때, 현수는 완전히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못했다. 그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음, 하는 소리를 내어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신의 감정을 겨우겨우 표현했다. 은하는 몸을 일으켜서 어이구, 하고 현수의 꼬리를 한번 툭, 치고는 저녁이나 먹자면서 밖으로 그를 끌고 갔다.


간단하게 둘은 저녁을 먹고 은하는 마지막까지 '정말 갈 거야?'라고 이야기했지만, 현수는 어떻게든 편해지지 못하는 자신에 진절머리가 나 어느 순간 필사적으로 그를 쫓고 있었다. 은하는 못 말린다는 듯 번화가 쪽으로 현수를 데려갔다. 밤이 다 깊었는데도 눈을 찌를 듯 반짝이는 네온사인들이 거리에 줄을 잇고 있었다. 시선을 확 끄는 간판들을 주욱 보면서 현수는 '관능'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지금 이 반경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자신과 달리 편안한 상태에 이르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유일하게 불편한 자신이 무척이나 덜떨어져 보였다. 그러나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단지 스쳐 지나가는 이들이 입가에 띠고 있는 즐거움을 부러워했다. 은하는 그를 이끌고 조금 안쪽에 있는 가게로 들어갔다.

들어갈 때 그들은 손등에 도장을 하나씩 찍었다. 특수한 라이트를 비춰야만 보이는 도장이었다. 그들은 어두운 계단을 내려갔다. 현수는 스쳐 지나가는 동물들의 손등에 무심코 시선이 갔다. 그들 모두 손등에 보이지 않는 증표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계단 밑에서, 폐가 떨릴 정도로 울리는 음악 아래에서 토끼, 다람쥐, 고양이 등등 여러 동물들이 마치 하나의 무리처럼 들썩이고 있었다. 현수의 눈에, 그들은 꽤 괜찮아 보였다.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즐거움을 그들이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현수는 은하를 따라 그 인파 속으로 들어가 곧 자신을 묻었다. 처음 보는 그 분위기에 맞추고자 그는 어색함을 애써 감추며 주변 사람들의 동작을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따라 했다. 그렇게 무리에 편승했다. 자신이라고 하는 존재가 따뜻함과 뜨거움 사이에 있는 온도 속에서 점차 녹아내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그는 자신을 지워나가고자 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무대 뒤쪽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은하는 현수의 꼬리에 머리를 대고 이따금 추위에 몸을 떨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처음 보는 다람쥐들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은하가 친구들을 부른다고 했던 것 같다. 현수는 머릿속에 있던 어떤 중요한 구슬이 한 방향으로 미끄러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중심을 잃고 아찔해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양의 술이 체내를 휩쓸고 있었고, 그가 움직일 때마다 그나마 잠잠하던 알코올이 혈관을 타고 빠르게 확산되었다.

시야가 무척이나 몽롱했다. 귀는 아직까지도 먹먹했다. 그는 그렇게 멍하니 자리에 앉아 무대 앞에서 여전히 들썩이고 있는 동물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그는, 아까 분명히 저 안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그 무리에 더 이상 낄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후에야 자신의 본래 목적이 뒤늦게 떠올랐다.

한 다람쥐가 맥주병에 머리를 박고 위태롭게, 또한 기괴하게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는 자고 일어난 후 그 다람쥐의 이마에 생길 원형의 자국에 대해 떠올렸다. 그러다가 별안간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자기 얼굴을 어떻게든 가리려 했으나, 가릴 방법이 없었다. 그는 옆에서 자기 꼬리를 베개 삼아 자고 있는 은하를 보며 이야기했다. 이런 게 쉬는 거야? 그런데 잠들어 있는 은하의 표정은 무척 편해 보였다. 나만 못 쉬는 거야? 현수는 굴러다니던 병뚜껑을 주워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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