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길에는 이미 아침 햇살이 드리워 있었다. 전날 보았던 네온사인들은 수명이 당한 듯 불빛이 꺼져 있어 먼지투성이인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바람은 무척이나 차가웠다. 무언가 썩는 듯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왔다. 축제가 끝난 다음날 아이스박스에서 피어오를 법한 그런 역한 냄새였다. 머리에서 지잉, 하고 무언가가 울리는 듯했다.
현수의 정신은 유독 말짱했다. 그래서 그는 의문이었다. 비틀거리는 은하를 집까지 부축해서 옮긴 것도 그였다. 생각해보면 자신은 한 번도 누군가의 부축을 받을 정도로 취해 본 적이 없었다. 늘 신경이 곤두서 있던 그는 술은 잘 못했지만, 언제나 술 취한 이들을 부축해주는 쪽이었다. 그게 어쩌면 내심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회식이 좋았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게 일이라면, 어쨌든 직무상 해야 하는 일이라면, 불만은 덜했으니까.
체질인가 봐.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숲 입구에 들어섰다. 새벽이라 그런지 그가 숨을 길게 내쉬었을 때 뽀얀 김이 하늘로 올라갔다. 이제 진짜로 겨울이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현수는 하얗게 떠있는 낮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밤은 지났을 텐데 아직도 그 달은 창백하게 하늘 위에 떠 있었다. 그는 깨어 있는 사람들의 입김으로 달이 하얗게 물들어가는 상상을 했다.
"너 외박했냐?"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현정이 따졌다. 그는 샤워를 간단하게 하고는, 서울로 올라갈 준비를 끝마치던 참이었다. 결국 현수는 자신이 어떤 곳에서도 마음 놓고 쉴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게 이번에 본가에 돌아오고 나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현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가방에 필요한 물건들이 다 있는지를 다시 확인했다.
"나 잠깐 서울 좀 갔다 올게."
"왜 또."
"인수인계해야 되는 걸 깜빡해서. 너무 급하게 왔나 봐."
"어쩐지, 일찍 내려온다 했다."
현정은 하룻밤 사이 사라졌던 현수의 행적을 마지막까지 묻지 않았다. 그런 사정까지 일일이 묻기에 그들이 벌써 성인이었던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무언가를 묻기에 그는 많이 지쳐 보였다. 그러나 무엇이 그를 지치게 하는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것을 생각하면 마음 깊은 곳에서 찝찝한 기분이 올라오려 했다. 그래서 어깨를 몇 번인가 토닥거려준 후, 그와 함께 기차역으로 향했다.
대합실에서 둘은 나란히 앉아 열차가 오고 가는 것을 표시해주는 전광판에만 시선을 주고 있었다. 월요일 오전임에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어차피 금방 올 건데 뭐하러, 하고 현수는 누나의 배웅을 만류했으나 현정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역까지 따라왔다. 서울로 가는 기차는 약 10분 후 역으로 도착할 예정이었다. 잠시 시간이 지났다. 현수가 이야기했다.
"누나, 나는 못 쉬는 체질인가 봐."
현정은 그 말을 들었다. 그러나 당분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르고 있었다. 무릎에 올려놓은 주먹에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말 하나가 깊은 곳에서 떠올랐다. 그녀는 그 말을 꼭 하고 싶었고, 그러나 그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매표 기계 앞에 있는 동물들에게 눈길을 줬다. 나란히 놓인 두 기계를 다람쥐들이 각각 하나씩 붙들고 있었다. 그녀는 왼쪽 다람쥐가 먼저 매표를 끝내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고, 열차 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두 다람쥐 모두 기계를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동생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담아둔 말을 했다.
"넌 너한테 미안하지도 않니?"
※
현수가 탄 기차가 느린 속도로 서울을 향하고 있었다. 오가면서 몇 번이고 보았던 익숙한 풍경임에도 현수는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산이나 강, 그리고 아파트들이 모조리 자신의 뒤편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인수인계 때 어떤 것들을 전달할지를 생각하려 했는데, 정작 일에 대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잘 떠오르지 않았다. 불꽃이 일어나지 않는 라이터를 몇 번이고 켜보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던 중 은하로부터 문자가 왔다.
[잘 들어감?]
현수는 답했다.
[너보다는]
[야 나 어제 기억이 없어]
그렇겠지. 현수는 살짝 웃으며, 크로스백에 휴대폰을 도로 집어넣고 다시금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는 은하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몰래 내용만 보고 답장을 잠시 쉬기로 했다. 그는 자신이 편안하다고 느꼈던 때를 떠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덜컹, 덜컹하고 차내가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이따금 흔들렸다.
휴대폰이 울렸다. 은하가 또 전화를 하려는 모양이라고, 그런 생각에 휴대폰을 들어보니 이번에는 뜻밖에도 부친의 전화였다. 그는 연결 칸으로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도착했냐.]
"아뇨. 아직 가는 중이에요."
[언제 또 오게.]
"오늘 인수인계하고 바로 내려오려고요."
[좀만 있다가 내려와라.]
그 말에 현수는 사연이 짐작되지 않아 미리 그 사연을 떠올려보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추측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되물었다.
"왜요?"
그런데 부친이 잠시 뜸을 들였다. 어떤 말을 먼저 해야 하는지 고르고 있는 듯했다. 현수는 어떤 큰일이라도 난 것인가 싶어 움찔했다. 그러나 그것이 불안으로 바뀌기 전에 부친이 다시 이야기했다.
[장판. 좀 다시 봐야 될 거 같애.]
"장판이요? 작년에 바꿨잖아요."
[엄마가 네 방에만 곰팡이 제거제 뿌렸는데, 그거 문제 있대. 뉴스에서.]
현수는 잠시 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그는 그 방에서 느꼈던 우울이나 두통에 관한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들이 사실은 자신의 체질과는 전혀 상관없이 어떤 화학적인 반응으로 인해 발생한 증상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어느 기업에서 잘못 만든 약품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수에게, 누나는 분명히 미안하지 않냐고 했다. 자기 자신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이 습관이 된 남동생에게 분명하게 일갈했다. 오히려 그간 자신이 느낀 여러 불안, 불면, 우울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그는 더더욱 알 수 없게 되었다. 어쩌면 이게 곰팡이 제거제의 부작용일지도 모른다. 머리는 안 아프냐. 몸은 이상 없고. 부친의 물음에 그는, 네, 괜찮아요. 하고 겨우 답했다. 다행이네. 부친은 이야기하며 뒷말을 이었다. 나중에 엄마한테도 전화 좀 해. 엄마 많이 힘들어한다. 네.
현수는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열차가 서울에 닿으려면 아직 멀었고, 그는 이번 겨울잠은 잘 잘 수 있을지, 도무지 가늠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