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소설 6.9-6.16
1.
"거기는 지금 낮이야?"
"응."
"여기는 아직 밤인데."
2.
비가 내리는 새벽에 대학교 건물 5층에서 바깥을 바라본 적이 있다. 캠퍼스가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은 비상구 조명만이 은은하게 초록빛으로 반짝이고 있었고, 장맛비는 금방이라도 세상을 물에 잠기게 할 것처럼 계속 내렸다. 건물 안에도, 건물 밖에도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다. 수명이 다한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무인 편의점에서 우유랑 쿠키를 사서 돌아왔다. 그리고는 창가 가까이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쿠키를 베어 먹었다.
밤이 싫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은 밤을 긍정적으로 다루는 작가는 미친놈이라고 하셨는데, 나는 그들이 왜 밤을 긍정적으로 묘사하였는지 알 것도 같았다. 낮까지만 해도 시끌벅적했던 캠퍼스가 가로등이나 비상구 전등처럼 필요한 최소한의 불빛만을 남긴 채 잠들어 있었다. 나는 아기자기한 집들이 모여 있는 주택가에 시선을 돌리며, 한 집 한 집마다 곤히 잠들어 있을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들은 낮 동안 한껏 바빴거나, 바쁘지 않았거나, 행복했거나 행복하지 않았거나, 기뻤거나, 슬펐거나 했을 것이다. 설령 잠들기 전까지는 많은 걱정을 품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무 걱정 없이 쌔근쌔근 숨을 내쉬고 있을 것이다.
이대로 조용한 시간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곳은 아직 점심시간이었고, 그는 바쁜 와중에 전화를 했다. 나는 내 생각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여기가 계속 밤이면, 거기는 계속 낮일 테니.
3.
한 달에 한 번, 마음에 밤이 찾아온다. 나는 마음에 찾아오는 밤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시간적으로 대낮이든, 한밤중이든, 일단 마음에 밤이 찾아오면 나를 둘러싼 세상은 완전히 깜깜해진다. 분명히 주변의 사물이나 사람은 눈에 들어오는데, 나는 자꾸 '깜깜하다'고 느낀다. '안 보인다'고 이야기한다.
그때까지 열심히 하고 있던 일도 갑작스럽게 중단할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진다. 몸에 힘이 빠지고 머릿속에 자신의 단점에 대한 생각만이 가득 들어찬다.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어져서 그나마 빛이 뻗어 나오는 곳으로 몸을 피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또 다른 깜깜한 방이 나올 뿐이다. 무수히 많은 방을 탈출하고 있는 기분이다. 끝나지 않는 방 탈출 게임을 하는 기분이다. 나는 지금 가장 안쪽 방에 있고, 빠져나오려면 어떻게든 힌트를 찾아서 다음 방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는 힌트가 하나도 없다. 아니면 힌트를 찾기에는 주변에 사물이 너무나도 많다.
4.
오후 2시에 나의 마음에 밤이 찾아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밤이 찾아왔을 때, 나는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내 삶이 '잘못된' 것이라고 규정하고 시작한다. 그래서 살아온 시간들 중에 고치고 싶은 순간들, 후회뿐인 순간들을 이리저리 긁어보다가 결국 상처가 덧난다. 이런 순간이 다가올까 봐 미리 적어놓은 위로의 문장들은 어느새 재가 되어서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잘하고 있어. 이 말들은 무척 의미 없는 말처럼 들린다. 그 말에 괜찮아지는 내가 너무 바보 같을 것 같다. 하고 싶은 걸 하라는데, 나는 지금 하고 싶은 게 없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지는 않다.
어쩌라는 거야.
그래, 나도 어쩌라는 건지 잘 모르겠어. 몇 번인가 탈출을 시도하고, 그때마다 출구는 등장하지 않고, 계속 깜깜한 방이 나왔다. 나는 힌트를 얻고 싶었다. 옆에 달려 있는 유선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분명 여기 처음 들어올 때, 직원이 정말 급할 때는 이 전화를 쓰라고 이야기했다. 상대방은 조금 있다가 전화를 받았다.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내가 대뜸 이야기했다. 빗소리가 들렸다. 밤이 너무 무서워, 내가 또 대뜸 이야기했다.
5.
"거기는 지금 밤이야?"
그가 이야기했다. 나는 내리쬐는 햇빛 아래에서 대답했다.
"응."
"여기도 밤인데, 무슨 소리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혼자 고요해졌다. 시공간을 누군가가 세게 짓뭉개 버려서, 해가 떠 있는 이곳에서 나 혼자 밤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해야 할 일은 눈앞에 있었고, 나는 멍해졌다. 논리적으로 무언가를 생각하기에 내 주변 상황이 너무 비논리적이었다. 그가 잠시 고민하는 소리를 내다가 이야기했다.
"곧 아침이야."
그러니까 기다려 봐. 피곤하면 좀 자든지. 그제야 그가 살고 있는 곳이 현재 새벽 3시라는 것을 알았다.
6.
나는 비상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몇 번째일지 모르는 깜깜한 방에서 눈을 감았다.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렸다. 그 사이 창문 너머로 보름달이 떠서, 나는 사진을 찍어 보냈다.
가방 속에 들어 있던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 둘 꺼내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짐은 점점 가벼워졌고, 언젠가 넣어두었던 패스츄리 두 개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하나를 먹고, 잠깐 잠에 들었다. 꿈에서 나는 망망대해 위를 배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을 그가 노를 젓고 있었다. 나는 누운 채로 저만치 뜬 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단단해지고 싶어.
그리고 그가 말했다.
-간단해지고 싶다고?
달이 지평선 아래로 사라졌다. 깊은 밤이 찾아왔고, 눈은 점차 어둠에 익숙해졌다. 세상은 구체적인 형태를 잃어버리고 더욱 단조롭게 바뀌어나갔다. 마음속을 떠돌고 있던 복잡한 생각들도, 그렇게 점차 간단해졌다.
7.
눈을 뜨니 어느덧 창문으로 새벽빛이 스며들어오고 있었다. 곧 아침이었다.
곧 아침이야, 나는 소리 내어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