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어떠한 사건사고를 앞에 두고 누군가는 책임을 묻고, 누군가는 그걸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고, 누군가는 분노하고, 누군가는 멋대로 그것을 문학으로 쓰기도 합니다. 정말로 사람을 위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며칠 동안 생각하다가, 가장 진중한 애도는 묵묵히 행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10.29-31에 해당하는 마지막 란을 비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9가지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하늘
"몇 번이든 사진을 찍고 싶어지게 하는, 그런 하늘을 만들고 싶어. 누구든 올려다보면 위로받을 수 있게. 누구든 자신의 삶이 아름답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게. 아무리 서로 떨어져 있는 사람들일지라도, 서로 같은 하늘을 보고 있을 거라고 안심할 수 있게."
공주는 하늘이 담긴 유리병을 열었다.
질투
"자매님, 인간은 질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가만히 무릎 꿇고 행운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인간들만이, 타인의 행복을 부수려고 칼을 듭니다. 저는 매일같이 저의 행복만을 기원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남의 불행 말고, 나의 행복 말입니다."
금반지를 낀 남자가 무릎을 꿇은 신자 앞에 섰다.
"처단하는 것도 자비를 베푸는 것도 하늘이 하는 겁니다. 그리고 하늘에 가까워지고 싶으면, 끊임없이 질투하십시오. 누가 그러지 않았습니까? 인생은 스포츠가 아닙니다. 남이 못한다고 내가 잘하는 게 아니죠. 그리고 그렇게 이긴 팀은, 언젠가 실력이 들통나는 법입니다."
선물
우리는 영원히 밤이 오지 않는 거리를 걷고 있었다. 인파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널 죽여버릴 거야."
"어떻게."
"아주 크고 푹신푹신한 인형을 너희 집으로 보내줄 거야."
"그건 고마운 거잖아."
"그럼 너는 침대에서 못 나오겠지?"
정말 잔인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혼밥
둘이 살던 집에 나 혼자만 남았다. 그가 미처 안 가지고 간 대빵 큰 강아지 쿠션만이 침대 위에서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계속 혼자일 걸 그랬어. 혼밥보다 더 외로운 건, 둘이 먹으려다 혼자 먹는 밥이다.
새벽에 잠이 안 와서 유튜브를 보다가, 누군가 '야'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스마트폰에서 나는 소리인 줄 알았다. 야. 또 들렸다. 그것은 분명 이어폰 너머에서 나는 소리였다.
"야."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시바견 인형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나는 내가 외로워서 정말 돌아버렸구나 싶었다. 내가 말했다.
"어디다 대고 반말이야."
"멍청한 인간한테는 반말해도 돼."
"내가? 내가 뭐가 멍청해."
"너한테 무례했던 인간을 그리워하고 있는데 그럼 안 멍청해?"
조난
그 남자는 흰색 와이셔츠에 정장 바지, 구두까지 복장을 완벽히 갖추고 있었다. 여기가 야산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냥 지나가는 회사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저기, 누구세요......?"
나는 조난당한 주제에 살려달라고 외치기 전에 먼저 상대방의 신원을 물었다. 남자는 한쪽 어깨에 걸치고 있던 크로스백을 고쳐 매며 대답했다.
"구미호인데요."
"남자 아니에요?"
"남자로도 변할 수 있죠. 여자로도, 노인으로도, 어린이로도. 변하고 싶다면야."
소원
오늘 겪은 일이다.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다보니 어떤 할머니께서 유모차를 앞에 두고 곤란해하셨다. 나는 할머니께 의사를 여쭌 후, 돌덩이같은 유모차를 지상까지 옮겼다.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
"착한 청년이네. 혹시 소원같은 거 있어요?"
소원이라 하셨다. 사례였다면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겠는데, 나는 소원이라는 단어가 주는 비현실적인 어감에 그냥 가만히 있었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무언가에 빌듯 이야기했다.
"행복하고 싶어요."
그러자 할머니는 가만히 나의 눈동자를 보며 이야기했다.
"이미 누군가 이뤄줬구먼."
배우
"사랑해, 좋아해, 같은 말들 손님들한테 너무 많이 하지 마. 나중에 진짜 짝 만나면 할 말 없어진다?"
여태껏 그냥 열성적으로, 좀 더 고정층을 확보하고 싶다는 마음에 그들의 요청에 응했다. 그들은 자신의 사랑이 쌍방임을, 다르게 말하자면, 쌍방의 합의에 의한 합법적인 것임을 항상 확인하고 싶은 듯했다. 선배는 이야기했다. 연기에 너무 몰입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배우처럼. 내가 답했다.
"괜찮아요. 저 같은 사람이 진짜 사랑을 할 수 있을 리 없잖아요. 평생 이러다가, 그냥 가려구요."
내심 빌었다. 지금 나는 이렇게 살고 있으니, 만약 그런 운명적인 사람이 있다면 죽을 때까지 나타나지 말아 달라고. 하지만 그렇게 비는 한편으로는, 내 삶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했는지도 모른다. 이제 와서는 알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운명처럼 어떤 한 사람을 만났다. 나는 그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은 무척 비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다.
더워
고서점을 정리하다가 백 년 전에 나온 잡지를 발견했다. 한자가 금박으로 새겨진 표지, 빛이 많이 바랜 갈색 종이까지, 이 안에는 어떤 고지식한 내용이 들어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책을 펼쳐나갔다. 마지막 장에 당시 출판사에서 일했던 편집자의 후기가 쓰여 있었다. 1937년 7월 20일, 거기에는 딱 한 마디가 쓰여 있었다.
'더웁습니다.'
얼마나 덥고 지쳤으면 저 한 말만 남겼을까. 먼 과거의 사람도 우리랑 똑같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려니, 조금은 정다워진 것 같기도 했다. 2022년 10월 28일, 여기는 추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