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 내가 네 그림자를 밟았어." / "어쩐지, 따갑더라."
한 해가 두 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걸 쓰고 있는 때는 벌써 두 달도 남지 않았어요.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한참을 고민해보다가, 그걸 생각하려면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안 하던 짓도 많이 해 본 올해였어요.
여전히 가보지 않은 길이 많다는 것을 알아요. 모르는 것도 많아요. 그렇기에, 세상 다 산 사람처럼 풀 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좌절하기에는, 다른 지역, 다른 사람, 다른 계절 등등, 세상에 누릴 게 너무 많네요.
(10가지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이번 추천작은 '실연'입니다.)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어떤 할아버지께서 꽃다발을 들고 계셨다. 화사한 꽃들에 얼굴이 가려질 정도였다. 나는 그 꽃다발을 받게 될 사람이 그분의 사모님이실지, 따님이실지, 길을 걸으면서도 오래 궁금해했다. 성공적인 노후, 라는 광고 문구를 보게 될 때 나는 여태껏 보아 온 어르신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누군가에게 꽃을 선물할 수 있는 그런 노후, 버스에서 내릴 때 함께 나이 든 동반자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그런 노후.
어느 마을은 버스 배차 간격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길었다. 오늘 그는 그런 시골 마을에서 혼자 답사를 마치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뒤에 있는 건 사람 없는 비료공장, 앞에 있는 건 단풍나무 숲뿐인 이곳에서 신호등만이 세상의 정적을 필사적으로 물리치고 있기라도 하듯 유난히 깜빡, 깜빡거렸다. 날이 금세 저물고 가로등 하나 없는 정류장을 칠흑 같은 밤이 집어삼켰다. 추위와 맞서 싸우면서, 그는 차량용 신호등 높이까지 차오른 물안개를 바라보았다. 안개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세상이 곧 종말할 것 같았다.
그는 마지막까지 버스를 기다려보려 했다. 파견 차 나온 이곳은 아는 사람도 없고, 주위에 민가조차도 없다. 이쯤 되면 분명히 오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버티다가, 차오르는 물안개나 지독한 어둠에 두려움이 커졌다. 이곳의 택시는 잘 잡히지도 않을뿐더러, 유독 비쌌다. 그는 지금 먼 거리를 가야 했으므로 엄한 곳에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뒤에 붙은 시간표와 달리 한참 지나도 버스는 오지 않았고, 불길해진 그의 손은 어느새 택시 앱으로 향했다.
이윽고 저 멀리 안갯속에서 택시 한 대가 빠르게 달려왔다. 그런데 그 뒤쪽에 거대한 무언가가 바짝 붙어 오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여태 안 오던 27번 마을버스였다. 좀 더 믿어야 했나, 그는 왠지 모르게 분한 기분이 들었다.
어느 마을은 버스 배차 간격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길었다. 오늘 그는 그런 시골 마을에서 혼자 답사를 마치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뒤에 있는 건 사람 없는 비료공장, 앞에 있는 건 단풍나무 숲뿐인 이곳에서 신호등만이 세상의 정적을 필사적으로 물리치고 있기라도 하듯 유난히 깜빡, 깜빡거렸다. 날이 금세 저물고 가로등 하나 없는 정류장을 칠흑 같은 밤이 집어삼켰다. 추위와 맞서 싸우면서, 그는 차량용 신호등 높이까지 차오른 물안개를 바라보았다. 안개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세상이 곧 종말할 것 같았다.
그는 마지막까지 버스를 기다려보려 했다. 파견 차 나온 이곳은 아는 사람도 없고, 주위에 민가조차도 없다. 이쯤 되면 분명히 오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버티다가, 차오르는 물안개나 지독한 어둠에 두려움이 커졌다. 이곳의 택시는 잘 잡히지도 않을뿐더러, 유독 비쌌다. 그는 지금 먼 거리를 가야 했으므로 엄한 곳에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뒤에 붙은 시간표와 달리 한참 지나도 버스는 오지 않았고, 불길해진 그의 손은 어느새 택시 앱으로 향했다.
이윽고 저 멀리 안갯속에서 택시 한 대가 빠르게 달려왔다. 그런데 그 뒤쪽에 거대한 무언가가 바짝 붙어 오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여태 안 오던 27번 마을버스였다. 좀 더 믿어야 했나, 그는 왠지 모르게 분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으로부터 몇 백 년 전, 어느 작은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는 요괴가 주권을 잡고 있었는데, 요괴는 자신을 황제라 칭하며, 특이하게도 실연을 당한 이를 자신에게 바치라고 명하였다. 처음에 그는 실연을 당하여 마음이 약해진 인간들로부터 사랑을 얻으려 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서 비치는 사랑이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님을 깨닫자, 분노하여 그들의 영혼을 삼켜버렸다. 요괴는 자신이 한평생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여, 그때부터 백성들의 불행을 영혼째 먹음으로써 억지로 사랑을 느끼려 했다.
한편, 백성들 사이에서는 여러 소문이 돌았다. 궁정에 바쳐진 이들은 남자든 여자든 한평생 황제의 수청을 들게 된다는 말도 있었고, 노예가 되어 죽을 때까지 일만 하게 된다는 말도 있었고,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다는 말도 있었다. 백성들은 소문을 두려워하여 서로에 대한 마음이 식더라도 쉽게 헤어지지 못했고, 헤어지는 것이 두려워 새로운 만남까지도 꺼려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자가 실연을 당했다면서 황제를 찾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여자의 신분이 낮고 모습이 초라한 것을 이유로, 그녀가 단지 궁정에서 살고자 하는 마음에 실연을 당했다는 거짓말을 한 것이라며 저들끼리 수군댔다. 요괴는 상관하지 않고 그녀를 방으로 데려가 그 자리에서 영혼을 씹지도 않고 삼켜버렸다. 영혼이 사라진 육신을 보며 요괴는 인간 신하들을 시켜 불에 태우라 명했다.
시간이 지나 신하들이 화장터를 들여다보니, 시신은 재가 되었으나 불에 타지 않은 편지가 하나 그곳에 남아 있었다. 신하들은 편지를 황제에게 전달하였다. 황제는 그 자리에서 편지를 열어보았다.
-황제 폐하께 삼가 아룁니다. 이 서신을 보고 계시다면, 소저는 이미 생을 달리 한 후이겠지요. 행여 소저가 서신을 씀으로써 예정에 없던 죽음이 자칫 운명에 스며들지는 않을까 두려우나, 끝내 소저의 마음이 가닿지 못할 것이 더욱 두려웠던 마음에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서신이 도착하는 일은 죽음이 전제되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오니, 부디 소저의 서신이 전달되는 일이 없기를 기도하나이다.
실은, 폐하를 사모했습니다. 부모를 잃고 누구와도 정을 나누지 못한 채, 홀로 목숨을 끊고자 했던 저를 구해주셨던 그때부터, 멀리서 폐하를 뵐 때마다 마음 한편에서 피어오르는 연심을 참지 못하여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소저의 초라한 행색과 인간이라는 한계를 보아, 이 연심이 끝내 폐가 될 것을 알았기에, 마음을 몰래 고이 접어 강물에 띄워 보내고 오는 길입니다. 폐하께서 실연당한 이들을 사랑하신다기에, 소저 또한, 적어도 마지막으로 그 사랑을 얻고 싶은 욕심에 왔던 것이오니, 부디 소저의 죽음은, 폐하의 사랑을 온전히 음미한 뒤의 일이었기를, 미천한 신분에 감히 바라옵나이다. 단지 그것만이, 소저의 바람이었습니다.
편지를 다 읽은 황제는 그제야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열렬히 사랑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뒤늦게 먹은 영혼들을 토해냈으나 삼킨 불행의 수가 너무 많아 끝내 그녀의 영혼을 찾을 수 없었다. 화장터에는 재만이 남았고, 자신을 사랑해주었던 이가 다시 살아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이후로도 황제는 습관대로 실연당한 이들의 영혼을 먹었으나, 그때마다 맛을 느끼지 못하고 토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타인의 불행을 먹지 않게 되었으니 실연당한 이를 궁정에 바치는 나라의 악습도 끊겼다. 한편, 이 일화는 궁정의 신하들을 통해 마을로 흘러들어 갔으니, 소문을 들은 백성들 중에는 여자가 나라의 악습을 끊기 위해 요괴를 사모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희생한 것이라 이야기하는 자도 있는가 하면, 그녀가 진심으로 요괴를 사랑했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자도 있었으니, 진실을 아는 자는 말이 없는 지라.
설산에서 조난당했던 때, 나는 꿈에서 누군가를 만났다. 그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열등감이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은 항상 초라해 보여.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갔어도, 아무리 많은 돈을 벌었어도, 그냥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돼. 난 네가 어떻게 살든 상관 안 하는데, 부디 그런 사람은 되지 않았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