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자까 Aug 02. 2022

백수가 된 심정

직장을 그만둔지 이제 2주차에 접어든다. 이전 같았으면 일요일 저녁서부터 내일 회사에 가야한다는 생각에 한숨 지었겠지만 이젠 그럴 의무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실컷 늦잠을 잤다. 새벽까지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다가 어느샌가 정신 차려보니 새벽 4시를 가리킨 시간. 그렇게 잠들다 해가 중천에 뜬 정오에 일어났다. 출근이란 책임에서 벗어난 자유가 클 것 같지만 이런 자유도 사실은 누려본 사람이 잘 보내겠다 싶었다. 남들이 제시한 길을 가는게 안전할 것만 같은 삶을 살다가 나의 선택으로 저지른 일들은 괜한 불안감도 따라오기 마련이다. 회사에 퇴사 소식을 알리고 짐을 정리할 때만 해도 기분이 이상했다. 미우나 고우나 2년동안 몸담았던 곳인데 정이 안 들었다면 거짓말이겠다. '괜히 퇴사한다고 했나?', '너무 홧김에 그만둔 것은 아닐까?' 등 선택에 대한 회의감이 잔뜩 묻는 생각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미 저지른 일이었다. 아쉬운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까지람도 싹다 정리하라는 듯, 마지막 송별회식에서의 남은 자들의 취기를 보고 이내 마음을 정리했다. 


책상 위 사무용품, 심신 안정용 최애 가수 사진, 짧게라도 온전한 쉼을 위한 가구 등을 다 정리하고 2주차에 접어든 오늘, 내 마음은 온전히 편하진 않았다. 돌이켜보면 이 회사를 다닌 것도 등떠밀린 선택이었다. 회사란 어떤 곳인지, 그저 일만 잘한다고 되는 곳도 아니란 것을 당시의 나는 몰랐다. 이미지 메이킹, 사내 정치 등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사수가 있는 곳이 아니면 더더욱 맨땅에 헤딩하듯 일을 해야 했는데 첫 회사에서는 회사 돌아가는 사정을 안 후 바로 '손절'을 했다. 그리고 3주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바로 재취업을 했다. (이곳이 얼마전 퇴사한 그곳이다.) 일단 경험을 해보고 나와 맞지 않는 일을 찾는 것도 정말 큰 것이다. 그렇지만 당시의 나는 자책을 참 많이 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저 막막했다. 언제 다시 취업할 거냐는 엄마의 눈치를 보며 일단은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들어온 두번째 회사. 그 선택이 좋았다, 나빴다 할 수는 없다. 어쨌든 2년이나 일했다는 것은 가볍게 들어온 회사치고는 나와 코드가 맞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번 돈으로 독립도 할 수 있었다. 


감사한 마음은 감사한 채로 남겨두며 이제는 다음 스텝을 밟아야 할 때가 되었다. 사실은 한 달 정도 쉬는 것이 어떨까 싶었는데 잠시 다녀온 본가에서 역시 '이후로는 어떻게 할 거냐'라는 이야기를 듣고 편치 않은 마음이 되었다. 그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누군가의 말에 휘둘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준비하고 있는 과정들을 이야기했다. 하고 싶은 것은 글을 쓰는 것이지만 구태여 깊이 있게 말하지는 않았다. 사람일 어떻게 풀릴지 모르는 일인데 일단은 '해보고 아님 말고!'의 태도로 도전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건 세대 간의 가치관 차이도 반영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말하다 끝없이 길어질 주제다. 그저 안정적인 수입을 받으면서 열심히 회사다니고 있다는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나도 내 삶에 무책임하고 싶지 않다. 삶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 비단 돈을 번다는 것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돈 벌려고, 누군가의 눈치에 못이겨 다니게 되면 오래 다니지 못한다는 것도 안다. 이런 저런 일들 해보고 경험도 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가고, 라이프스타일을 적정하게 꾸려가는 것. 난 이런 부분도 고려되어야 이면적인 책임이 되지 않을까 싶다. 도전해 보고 싶은 직무의 회사들을 추려봤는데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내 현재 경력과 수준에 비춰보아 회사를 보니 맨땅 헤딩식으로 취업을 할 때와는 다른 것이 보이기도 했다. 어떤 곳에 가면 내가 이 일은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이런 업무를 배우면서 해당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 흐름 등을 익힐 수 있겠다 싶었다. 


경험을 하면서 시각을 더 넓히게 되고, 나에게 맞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에 선택지도 고려할 수 있게 된다. 회사라는 것도 사실은 언젠가 퇴사를 하는 날이 오게 되고, 회사=나는 아니기 때문에 이왕이면 내가 성장하고 배울 수 있는 곳을 택하고 싶은 것이 지금의 마음이다. 회사에서 재미를 찾느냐는 드라마 미생 속 천과장의 대사가 왠지 씁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이 가치관을 지키고 싶다. 전에는 실수를 줄이고, 실패를 하고 싶지 않아서 다수가 하는 것 따라하고, 다수의 말에 쉽게 휘둘렸는데 이제는 내 목소리에 집중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내 생각을 공유할 때마다 모든 기성세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너 나이가 적은 것도 아닌데...'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그 말은 내가 이십대 중반을 막 넘기기 시작했을 때부터 꾸준히 들어왔던 말이다. 내 인생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고, 그들의 말대로 살다가 넘어지면 다시 일으켜 세워줄 것도 아니면서 참 쉽게 말하는 것 같다. 그들이 말하는 책임을 나는 나에게 실현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으켜 세워주고 자신의 big fan이 되어서 그 가는 길을 응원해주고 싶다. 


사뭇 진지하게 글을 쓰고 있자니, 누가 들으면 일반 회사원으로 살다가 갑자기 가수지망생이라고 되겠다고 하거나, 아니면 해외 진출해서 가게라도 차리겠다는 줄 알겠다. 하지만 그저 직무를 바꾸는 것일 뿐이다. 독립을 했으니 고정적 지출을 고려한 수입도 있어야 할 것이고, 내 경력과 수준을 고려해 적정한 회사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미 많은 것을 생각했고 고려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내 마음에 이 계획했던 것들을 다시 확인하고 눈으로 보일 수 있게 하는 것도 나름의 두려움, 불안 등을 잠재우기 위해서일 것이다. 


2년 동안 일하고 퇴사한지 이제 일주일을 막 넘겼을 뿐인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상당하다. 사실은 일을 한다고 해서 이 두려움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보다는 나아서 하는 행동에 더 가깝다. 마치 시험기간에 부족한 공부량을 메꾸려 집에 엄청난 양의 책을 가지고 가면서 마음의 가책을 더는 것과 비슷하다. 일할 때는 일하는 것에 몰두하고 쉴 때는 쉬는 것에 몰두하고 싶은데 일하면 쉬고 싶고, 쉬면 일하고 싶고. 그 밸런스를 다시금 맞추고 싶다.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무대 영상, 예능 클립 등을 보는데 그들이 자신의 일을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다. 즐기면서 일하는 것 같다. 체력적으로 힘든 스케줄이고, 자신을 이겨야 하는 상황일지라도 목표한 바에 따른 과정이기에 받아들이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긍정적 자극을 받기도 한다. 


나도 그렇게 일하고 싶다. 그리고 쉴 때는 마음 편하게 쉬고 싶다. 오히려 쉬는게 더 불편해서 독서를 해도, 미디어를 봐도 집중이 안되기도 하고 아님 매트리스에 그저 누워있게만 된다. 그런 생각, 고민 자체를 회피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잠시 나갔다 온 산책과 에세이 작성하기가 나름의 힐링이 된다. 작성하다보면 원래 이런 글을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마음 속에 실체 없던 불안함이 그 존재를 드러내고 알게 되고 위로해주고, 그리고 다음 스탭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가 보인다.


원래는 퇴사 후 백수에세이 느낌으로 적어보려고 했다. 일상은 어떻게 꾸려나가는 것이 좋을까, 하는 것 말이다. 뭐, 백수로서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소상히 적었으니 이것도 백수에세이는 맞을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