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공원이 있다. 일정을 마치고 공원을 가로질러 집으로 가는 길, 해가 어둑해졌는데도 가로등은 언제 켜지는지 잠잠하기만 했다. 안내표지판만 노랗게 빛이 나고 있었다. 키 큰 나무들이 있는 곳이라 날 화창한 날에는 그렇게 청량하고 멋진 길인데 어두운 시간에 걸으려니 괜히 쓸쓸하고 외로운 기분이 들었다. 살짝 무섭기도 했는데 그런 어두운 길을 담대하게 척척 다니시는 분도 있고 누군가는 핸드폰으로 트로트를 틀면서 그 길을 지나갔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앞에서 이를 조금이라도 지워내고자 긴긴 이동시간에는 유튜브로 아이돌 영상을 보곤 한다. 그 무대를 보는 3분 남짓한 시간만큼은 그저 그 무대를 보는데 오롯이 쓴다. 멋있고,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그 3분의 무대를 위해 몇년을 고생한 시간을 잊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나 또한 빛날 내일을 위해 오늘의 과정을 겪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퇴사를 한지 이제 3주차에 접어든다. 괜시리 조급함이 몰려올 때면 뭐라도 하려고 구인구직 어플을 탐색한다. 퇴사를 할 때는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었다. 해당 분야에 관련된 직무를 경험하고자 했다.
퇴사 전, 생각해둔 몇 개의 회사가 있었다. 새로운 직무에 도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신입을 뽑는 곳으로 지원해야 했고 직무 방향성에 맞도록 이력서도 수정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지원' 버튼에서 나는 망설이다 그 회사에 지원하지 못했다. 지원했다 하더라도 떨어질 수 있는 일이었지만 문제는 붙었을 때의 걱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겁만 많아진다고 했었나. 그냥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만 들 뿐이었다. 고민을 한다는 핑계로 입사지원 기간이 지날 때까지 공고만 스크랩해둔채 클릭은 하지 않았다.
지인들을 만나노라면 요새 무엇을 하느냐는 말은 필연적으로 듣는다. 그럴 때마다 퇴사한 상황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냐는 말에도 솔직히 말한다. 작가가 되고 싶다고. 그리고 그들이 해주는 '멋있다'는 말이 좋다. 한 편으론 이 단어를 입 밖으로 내는 것이 항상 좋은 반응이나 응원을 이끌어내진 않기도 한다. 그리고 스스로도 의심하는 마음이 있다. 도전했는데 만약에 안되면 어떡하지란 걱정말이다. 그렇게 돌아갈 곳 없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저도 비웃음을 당하면 어떡하지란 생각이 든다.
'그럴 줄 알았다', '그렇게 된게 당연하지', '그건 그렇게 쉽지 되는 줄 아니?'란 말을 들을까봐 겁이 난다. 그저 글쓰는게 좋고, 이 글을 통해 비슷한 처지에 있는 누군가가 위로를 받았다는 말을 듣는게 좋고, 나 또한 그로써 혼자가 아님을 알게 되는 것이 좋을 뿐이다. 작가가 되는 방법따위도 자세히 알지 못한다. 대학을 졸업한지 5년이 넘은 나에게 작가가 되고 싶으면 국어국문학과나 문예창작과를 가지 그랬냐고 하는 말들을 들으면 그저 바보같이 웃는다. 그리고 더 바보 같은 생각이 난다. '대입을 해야하는건가.'
연말 시상식 무대를 위해 몸 부숴져라 연습하는 아이돌 영상을 봤다. 빠른 박자에 배운 안무 동작을 적절하게 맞추기 위해 수십번을 연습한다. 동작도 쉽지 않다. 발재간도 빠르고, 공중에서 돌기까지 한다. 그리고선 춤추는 게 재밌다고 한다. 춤을 추기 위해 건강해야 하고, 춤을 추기 위해 운동을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한다. 그러한 태도가 어쩌면 자신이 몸담은 분야를 더욱 진심으로 대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결국 익숙한 직무에 다시 기웃거리고,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공고만 살폈다. 친구는 그렇게 회사 찾다가는 '똥'을 만난다고 한다. 맞다. 전에 다니던 회사도 조급함에 떠밀려 찾다가 결국 직무 고민과 여타 문제로 나오지 않았나. 작가를 꿈꾼다는 말을 하면 누군가는 멋있다고 해주고, 누군가는 걱정이란 명분을 내세운 자기생각을 말한다. 하지만 알게 된 것은 결국은 내가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외로운 싸움이다. 옆에서 누군가 끌어줬으면 하고 걱정과 두려움이 올라온 나를 위로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곡히 올라온다. 그렇지만 그 또한도 스스로에게 듣고 싶은 말들을 건넴으로 다시금 움직일 힘을 내게 한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저 하는 것밖에는 왕도가 없다. 글쓰는 것을 좋아하는 나라면 어떻게든 쓰고 말 것이다. 이왕이면 그 과정마저도 인정, 위로, 응원을 받으면서 가면 좋겠지만 그것이 욕심이라면 적어도 나만큼은 나에게 좋은 말을 해주며 그 길을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