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세이를 한 편 썼디가 삭제했다. 정확히는 발행취소글로 옮겼다. 전직장을 퇴사한 것으로 약 3주간 직장에세이를 쓰지 않았는데 그 기간동안 나는 올라오는 조급함과 싸워야 했다. 사실은 많이 졌기 때문에 구인구직 어플을 한 번 켜면 기본 3시간을 그안에서 헤엄을 치고 있었다. 좋은 모습, 기쁜 소식만 들려드리고 싶은 자녀된 마음도 있고 생활비 고민 등, 뭐라도 하고 있어야 되지 않겠나는 불안함 때문이었다. 전직장을 나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어차피 어떤 회사를 가도 힘들 거라면 이왕지사 그것을 버틸만한 이유가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아무 의미도 없이 그저 돈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오자 이내 아무곳에나 지원을 넣고 면접을 보고 덜컥 합격을 한 것이다. 아르바이트, 계약직이었지만 그런것 따지지 않고 직무의 내용이 어떻든 날 붙여주는 곳이라면 가겠다는 심정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면접 본 다음날 바로 출근을 했고 그곳에서 또한 표정에 생기 하나 없이 일만하는 사무실의 풍경을 마주했다. 서로가 책임을 지고 싶지않아서 서로에게 미루기만 하는 모양새라든가, 세상 저렇게 일하고 싶어하지 않는 걸음걸이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사원 등.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나 자신을 컨트롤하기 위해 되뇌었다. 그래도 이 일은 적어도 책에 대해서 요목조목 알 수 있는 일이지 않을까, 기본기를 다질 수 있는 시간이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을 힘들어 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도 덜컥 한시간 정도 통근 거리로 면접을 보러간 시점에서부터 이미 불안감이 여러가지 것들을 보이지 않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둘째날 아침, 나는 늦게 일어났다. 출근해야 할 시간 20분 전에 일어난 것이다. 시간을 한 번 확인하고, 상황 파악을 한 후 '우와, 지각이다 어서 나가야지!'가 아니라, '정말 가기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연락을 넣었다. 내 마음은 회사에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불안감에 못이겨 내가 전직장을 나온 사유를 까맣게 잃어버린 채 같은 상황과 생각을 반복하고 있었다.
불안함의 본심은 사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다. 나를 다시 회사로 보낸다 할지라도 돈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행복할 수 있을까? 소위 직장인들이 월급받는 것을 '금융치료'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나도 월급을 받으며 살았을 때는 그렇게 위로를 했다. 그런데 월급받는 것 그 자체가 기쁜 것이 아니라, 출출한 밤에 동생과 야식을 시켜먹을 때, 고양이에게 다양한 맛을 보여주고 싶어 신상간식을 샀을 때, 좋아하는 아이돌의 신규 앨범을 구매했을 때. 그렇게 소비했을 때가 기뻤다. 더 정확하게는 사랑하는 존재들과의 시간을 채울 수 있을 때가 기뻤다.
돈의 쓸모는 그런 곳에 있었다. 달달이 내는 적금이나 월세, 생활비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사랑하는 것들과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에 대한 감각이 되살아나면서 어떤 일을 해야할까? 보다 무엇을 하면 내가 행복한가?를 더 돌아보게 되었다.
부모님도 돈 많이 버는 것 그 자체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경제적인 여유를 갖고 가면서 안정적으로 즉, 내가 편안하게 살기를 더 바랐다. 전직장 그만두고 불안감에 새롭게 구한 직장도 다시금 그만두었는데 이 소식을 알릴까 말까 고민했지만 소통하는 쪽을 택했다. 돈을 잘 벌어야 한다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런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 깨우치는 것을 더 바라시고, 엄마도 당신의 마음을 자녀된 내가 알아주기를 바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중요한건 같이 보내는 시간, 그리고 서로가 함께 있을 거란 믿음이었다.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래서 나도 이렇게 글을 쓰는 듯 하다. 나아가 누군가에게 이 글이 공감과 위로가 되는 것이 작은 바람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런 말들이 뜬구름 잡는다고 할지 모르나, 우리 마음 속에는 순수한 열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가치를 잊는 순간 주객이 전도되어 끌려다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조급함에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들과 더 가까이 하는 삶. 조급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 자체가 괜한 두려움을 가지고 오기도 하지만 나를 위한 용기있는 선택이 무엇인지 안다면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