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좋다. 지금은 4월 초다. 거리를 걷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봤다. 지난주 주말부터 시작해서 친구, 동생 등과 꽃구경을 다녔다. 일년 중 일주일남짓한 시간 동안 만나볼 수 있는 봄의 꽃을 보는 것은 삶에 큰 여유와 평온을 가져다 준다. 각자의 삶을 바쁘게 살다가 꽃구경을 나오면 다들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거나, 여유롭게 주변을 구경하고, 이 순간을 남기기 위한 사진을 찍는다.
평화롭다,라고 느끼는 몇 안되는 순간이다. 삶에 급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놓쳐지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리 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것들, 예를 들면 이 계절에만 피는 꽃을 본다던가, 가만히 멍을 때려본다던가, 글을 쓴다던가 하는 일들은 아무리 바빠도 꼭 기억해 놨다가 그 시간을 마련하고야 만다.
특히 평일 오전이나 낮 중에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은 프리랜서의 큰 특권이다. 돌이켜보면 대학생 때 수업이 일찍 끝나거나, 공강인 날에 맑은 하늘을 보면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낮에 일을 할 때면 유리창이 큰 카페로 가서 파란 하늘을 보는 것이 기분이 좋고, 이맘때쯤처럼 꽃이 핀 날이면 일은 잠시 미루고 밖으로 나가 봄이란 계절을 느낀다.
날씨가 무엇이고, 꽃이 무엇인지 그저 때가 되면 그 자리에 있어지는 것들이고 피워지는 것들인데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포근해진다. 일에 지치고 관계에 지치고 에너지를 많이 소모했다 느껴질 때는 그저 있어지는 것들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힘이 다시 충전되는 것을 느낀다.
이맘때쯤 카페들도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는데 조금은 조용한 카페를 찾아 따뜻한 레몬티와 함께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으면 하루 중 얼마 안되는 시간일지라도 그날의 기분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각자 자기만의 자리가 있겠지만 지금의 내가 프리랜서로 살고있다면 이때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진심을 다해 누리는 것이야말로 지금의 삶에 대해, 그리고 그 시간을 보내는 나에 대한 예의이자 사랑의 표현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하고자 하는 일의 의미와 내가 하겠다 선택한 일과 책임, 역할에 있어서 어떤 마음으로 다시금 임해야 할지를 돌이켜보고는 한다. 지금의 나는 이 현실 가운데 그래도 나다움을 잃지 않도록 한 장치를 몇가지 마련해둔다. 사회의 구성원이자 누군가의 가족이자 친구로서 맡겨진 역할을 다할 때 오로지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만을 추구할 기회는 적어진다. 그 안에서 배우는 것이 크고 또, 함께 할 때의 기쁨도 분명 있지만 나다움에 대해, 궁극적으로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한다.
올해 딱 31살이 되는 이 시점에 이런저런 생각도 많이 해보고 사람도 많이 만나보고, 이런저런 희로애락의 경험을 해보면서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보내는 듯 하다. 맹목적인 마음이 아니라 이 길을 가는 이유와 목적을 새겨보는 이 시간이 다시금 일에 뛰어들 수 있는 힘을 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