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그건 어렵지 않았는데

by 길잃은 바다거북

병원에서 새해까지 보낸 624호실 막내는

소란스럽지만 고요한 병원생활이 진저리 날 때쯤,

갑갑함을 참지 못하고 퇴원하고 싶다며 재활실에 가서 생떼를 부렸고,

결국 퇴원 미션이 생성되었다.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를 제 발로 올라 꼬부라져서 걸을 거냐며,

치료사 선생님들은 얄짤없으셨다.

허리를 굽혀 걸으면 그런 습관은 등 굽은 어른을 만드는 악습이 된다며 허리는 꼿꼿하게 다리에 힘을 바짝 주어 걸으라 했다. 혹여라도 아직 걸으면 안 되는데 걷고 있는 걸까 봐 발바닥에 바닥을 디딘 감각이 있는지도 수시로 물으셨다. 624호실 막내는 내가 무슨 공중부양하는 사람도 아니고 바닥을 안 디디고 어찌 걷느냐 되물었고

치료사 선생님은 "그래 그건 당연한 거지 그런데 당연하지 않아도 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그래" 라며 쓴웃음을 지으셨다.

재활실은 지하 1층, 내 병실은 6층.

거기까지 계단을 열심히 오르내릴 수 있으면 퇴원을 할 수 있다기에

탈출을 꿈꾸며 열심히 했다.

물론…

다 오른 층에서 병실로 안 보내고 도로 내려가자고 할 때는

치료사 선생님 멱살을 잡았다.

“우 씨, 싸우자요!”

그렇게 투닥대며 재활을 하다가

우리 층에는 치료사 선생님이 내 아빠라는 소문도 돌았고,

계단을 열심히 오르는 모습에

병원장님이 치료사 선생님과 내 뒷모습을 찍어

병원 의료진 단톡방에 올리셨단다.

"저렇게 열정을 가지고 치료에 임하라"는 한마디와 함께.

그날 이후로 치료사 선생님을 가끔 '아빠'라고 놀리며 지냈다.

그 사진을 보신 덕인지, 재활과 교수님이 퇴원을 일찍 시켜주신 것 같기도 하다.

"병원장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1번 미션은 매일 꾸준히 하며, 오르막길 오르내리는 미션을 수행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오르막이 바로 에베레스트요...

솔직히 내려올 때는 엉덩이 붙이고 미끄러져 내려오고 싶었다.

깔딱 고개 출신인 나에게는 쉬울 거라 생각했지만,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각각 구분 동작으로 의식해야만 했다.

오르막을 오를 때는 어린 시절 체육 교과서에 나오는

오르막 오르는 그림처럼, 몸을 살짝 기울여 쏟아지듯 걸었고,

내리막에서는 다리를 앞으로 쭉 내밀고 상체를 뒤로 보내

무게 중심을 뒤에 두고 발바닥을 꼭꼭 딛으며 내려왔다.

미끄러질 것 같아 무섭고, 넘어질까 봐 겁났지만

‘퇴원’이라는 두 글자를 새기며 했다.

열심히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하기 싫어서 길이 얼어 못 갈 때는 기뻐했으니 말이다.

그냥 ‘했다’가 맞다.

계단과 오르막·내리막을 한 달쯤 했을 때,

2월의 끝자락에 교수님의 입에서

“퇴원해도 되겠네요”라는 승인이 떨어졌다.

그렇게 기뻐하자, 왕할머니네도 퇴원을 하겠다고 하셨다.

왕할머니의 미션은 나와 다르게 난이도가 높았다.

1. 식사 한 그릇 다 비우기

2. 재활실에서 보행기를 잡고 열 걸음 정도 걷기

99세의 왕할머니에겐 아주 가혹한 미션이었지만 성공하셨다.

왕할머니의 10걸음 미션에서 나는 카메라맨이었다.

발은 자전거를 굴리며, 휴대폰으로 할머니를 열심히 찍었다.

그 사진은 코로나 검사 때문에 쉽게 오지 못하는

왕할머니 가족분들에게 큰 기쁨이 되었다.

왕할머니는 애교쟁이 간호사 선생님 덕에

퇴원하실 때는 손하트도 배우셨었다.

그러고 624호는 내가 먼저 떠났지만,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할머니도 퇴원하셨다.

할머니도, 나도

그 모든 것들이 분명 어렵지 않았지만… 어려웠고,

그걸 해내고 ‘퇴원’이라는 보상을 얻은

성공한 병원생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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