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워가는 자존감 계절의 손길

by 길잃은 바다거북

겨울을 지나 봄에 퇴원했다. 막막하기만 한 취업, 깊어지는 고민이 있던 차에 옛 직장의 언니들에게 연락이 왔다. 회사 전반 상황을 전부 아는 나였기에,몸이불편하지만 사무일을 해보지않겠냐고 직장을 구하는 거면 사무실에 나와서 일하지 않겠냐고 권해주었다. 하지만 손이 느려 폐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거절했다.


취업이 안 된 시간이 길어지던 중, 이별이 찾아왔다. 병원생활을 기다려줬던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결혼할 생각도 없었기에, 놔줘야 한다는 마음이 깊어지던 시기였다.

30대초반 얻은 장애와 살아내겠다의 결심속에 남자친구는 포함되지않었았다.

“헤어지자”는 말을 듣고 그대로 헤어졌다고 말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더 큰 심란을 겪었다.

내가 상처를 받고 재활을 멈추지 않을까 봐 걱정한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괜찮았다.

그 무렵 새 직장을 구해 적응하느라 바빴고, 직장 생활을 하며 집에서 재활할 궁리를 하느라 또 한 번 바빴다.

이별을 아파하기엔 너무 현실적이였고, 나보다 더 아파하며 응원하는 눈길들 때문에 그걸 외면한 채 이별에 잠겨있을 수 없었다.

생활 재활은 마트 전단을 구경하고 세일 상품을 사러 다니는 것이었다.

매일 출근하듯 마트에 가다 보니, 마트의 유명인사라도 된 것처럼 점원분들의 응원과 격려를 많이 받았다.

중간중간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응원을 받았다. 처음 병원에 가기 위해 혼자 버스 탑승에 도전한 날, 성격 급한 경상도 기사님이라 걱정이 많았지만, 자리에 앉을 때까지 출발하지 않고 기다려주셨다.

장애인석에 앉은 분께는 “장애인석이니 양보해 달라”라고 권유해 주셨다.

괜찮다고 사양할 입장이 못 되기에, 감사 인사만 꾸벅 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 여러 손길 덕에 지금은 혼자 버스를 타고 잘도 돌아다닌다.

수중 재활이 근육에 부담이 덜 가고, 굳은 근육을 푸는 데 좋다 하여 동네 목욕탕 수영장을 다니기로 했다.

조심조심 걷고, 홀로 샤워하고, 수영복을 챙겨 입고 움직이는데, 어르신들이 유심히 나를 보셨다.

입은 게 잘못됐나 거울로 거듭 확인하다, 무슨 일 때문인지 여쭈었더니 “혹시 도와줄 게 있을까 봐 말은 못 걸고 지켜봤다”라고 하셨다.

머쓱하게 웃으시기에 “씩씩하게 혼자서 앞으로도 다닐 텐데, 할 줄 알아야죠. 도움이 정말 필요한 순간은 꼭 부탁드릴게요” 하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목욕탕에서 '대견한 딸내미'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수영장에서 재활한다 하니, 걷는 운동할 때 신으라며 미끄럼 방지가 되어 있는 실내화도 가져다주셨고, 일주일 정도 수영장에 못 오는 날엔 “어디 아프냐”며 가득 염려해 주셨다.

몸이 조금 추운 날 온탕에 앉아 있는데, “풍에는 주물러줘야 한다”며 어르신들이 빙 둘러앉아 주물러주시다가, 온탕에 너무 오래 있어서 뜨거워 살이 익을 뻔한 해프닝도 있었다.

그분들 덕에 지금은 혼자 수영장도 잘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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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쓰던 어깨는 근육이 없어서 가만히 있어도 탈골된 것처럼 아팠는데, 이제는 끄떡없는 팔이 되었다.

금세 다시 움직일지도 모르겠다싶은 용기와 열정을주는 그목욕탕속 수영장의 인연은 여름이였다.

홀로 캠핑도 너무 가고 싶어서, 한 손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다가 동네 캠핑용품점에 갔다.

사장님이 한 손으로 직접 쳐보며 연습한 텐트와 도구들을 찾아주셔서, 나도 혼자 한 손으로 텐트를 치고 무사히 캠핑도 잘 다녀왔다.

그렇게 사소하지만 다양한 것을 성공하게 해 준 도움의 손길 덕에, 나는 오히려 '정상'일 땐 자존감이 부족했으면서, 장애를 얻고 나서 자존감을 채우다 못해 넘치게 되었다.하고 싶은 것도 모두 즐기는 여유도생겼다.

곧잘 네거티브하니 우울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던 과거의 나와는 너무도 다른 인상. 변화가 신선하고, 그 모든 게 내 주변 ‘계절들의 손길’이었구나 싶다.


요즘 나는 늘 무리하게 움직이다가 근육통을 얻는다.
입버릇처럼 중얼거린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데… 그중 내가 제일 인간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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