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 그리고 덧댐과 이음>의 첫 번째로 천하제일의 푸른 비색을 뽐내는 고려청자를 소개하였다. 우리나라의 청자의 비취색이 특별하다고 하는 가장 큰 이유에는 “투명함”이 있다. 중국의 청자 또한 그 빛깔은 매우 아름다웠으나, 그들마저도 우리나라 청자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맑고 청아함/ 투명함”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또한, 청자를 굽다 보면 흙과 유약이 구워지는 온도가 다르기에 미세한 균열들이 생겨나는데 그 균열이 주는 미감을 즐겼다고 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지난 브런치 글인 https://brunch.co.kr/@sleeperssummit/11 을 참고하길 바란다.)
청자에 대해 알아가다 보니, 자연히 백자가 궁금해졌다, ‘고려’ 하면 ‘청자’가 떠오르고, ‘조선’ 하면 ‘백자’가 떠오른다. 하지만, 고려시대에도 백자는 존재했다. 둘 다 흙을 가마에 구워내는 도자인데, 어찌하여 둘의 색이 다르고, 백자는 고려가 아닌 조선이 되어서야 꽃을 피웠을까?
그 비밀은 흙의 빛깔과 종류, 유약의 차이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굽는 온도라고 한다. 도자를 구워내는 과정에서 특정 온도 이상의 고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청자보다 백자를 구울 때 더욱 고온이 요구된다. 따라서, 그만큼 온도를 높여줄 수 있는 화력이 필요하다. 백자가 청자에 비하여 장식성이 적은 도자기라 제작 과정이 덜 복잡하게 생각될 수 있지만, 백자의 제작이 더 까다롭고 발전된 기술력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고려시대 때에도 소수의 백자를 제작하긴 하였지만, 완벽한 백자를 위한 화력과 장인들의 노하우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고려청자의 덧댐을 위한 견해를 나눠주시던 중, 김승민 큐레이터님이 특히 조선 백자 중 왕실에서 사용될 최고급 백자가 제작되는 ‘분원’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신 적이 있다. (이 브런치 글 또한 그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 분원이란 조선 중앙정부에서 직접 운영하는 가마인 ‘관요’를 말한다.
조선 초기에는 왕실에서 사용할 도자들을 전국의 324개에 달하는 가마에서 세금 대신 공납받았다. 하지만, 그 도기와 자기들의 품질이 일정하지 않았으며 궁궐까지 배송되는 과정에서 파손이 생기기도 했다고 한다. 이를 통제하기 위해, 백자의 생산과 납품을 통제할 수 있도록 관요, 즉 분원을 설치했다.
대부분의 분원이 경기도 광주에 설치되었는데, 궁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서 한강을 통해 운송이 가능한 지리적 특성이 고려된 듯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역사적 기록들을 살펴보면, 그곳의 솔숲, 즉 가마에 사용될 땔나무인 소나무들이 무성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백자 가마의 땔감이 소나무일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다. 나 또한 그랬다.
여러 고미술품들은 물론, 애국가의 가사에도 나올 정도로 우리는 예로부터 소나무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민족이었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소나무를 참 신성하고 고결한 나무로 여기곤 했다. 그런 소나무가 조선의 최상품 백자를 만들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니.
소나무는 연소되는 과정에서 충분한 화력을 낼 수 있으며 다른 나무들과 다르게 타고난 후에도 재를 남기지 않아 새하얀 백자 표면을 완성하기에 최적의 땔감이었다고 한다. 이를 알았던 조선의 중앙정부는 광주의 솔숲들의 소나무들을 다른 관청들에서는 허락 없이 베어갈 수 없도록 제제하고 관리하였다. 하나의 숲에서 땔감을 너무 많이 베어내서 숲이 황폐해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10년에 한 번씩 분원을 옮기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분원을 옮겨 다닐 때마다 소요되는 비용과 주민들과의 마찰이 있었다고도 하지만, 그럼에도 숲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선조들의 선택이라 여겨진다. 광주에는 현재 340여 곳의 분원의 터가 남아있다. 기회가 된다면, 조선의 분원과 솔숲의 흔적들을 찾아 나서 볼 예정이다. <발견 그리고 덧댐과 이음>의 무령왕릉 다음 후보로 조선 백자를 고려해보게 되었다. 주혜림 디자이너와 장비치 작가에게도 이러한 조선 백자의 이야기를 나눌 생각을 하니 벌써 설레기 시작한다.
청자가 이어준 백자와 소나무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게 된 나는, 소나무가 현재의 우리에게 나눠주고 있는 쉼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제주 바다의 절벽에서 내려다보았던 소나무, 여름철 해수욕장에서 그늘이 되어준 소나무, 최고급 목재 그리고 얼마 전 마시게 된 솔잎차까지. 한국에서 소나무란 과거에도 현재에도 우리에게 한없이 베풀어주는 정말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작년에 피크닉에서 열렸던 전시 ‘명상 Mindfulness’를 다녀온 분들이 명상과 마음챙김을 다양한 예술을 통해 경험한 후 마지막에 차를 한잔하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참 좋았다고 전시 후기를 전해주었던 것이 기억난다. ‘가끔 무기력해진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성격이 급한 편이다.’ 등 자신의 현재 상태라고 느껴지는 문구를 고르면 그에 도움이 되는 차를 추천해주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머릿속이 복잡하다.'라는 문구를 고르면 ‘So Clear’라는 제목의 카드와 함께 솔잎차를 내어주었다고 한다. 요즘 마음챙김과 차 그리고 다기에 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있는 김호정 작가님에게는 하얀 백자 다기에 담긴 그 솔잎차 한 잔이 일상의 선물처럼 느껴졌다고.
오늘도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친구에게 “연희야 며칠째 한숨도 못 잤어. 너무 피곤하다. 너는 요즘 어때? 힐링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라고 연락이 왔다.
일상에 쫓겨 누구나 ‘자신만의 시간’,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한 번씩은 고민해보게 되는 요즘인 것 같다. 꿈을 향해 달리는 사람들, 열정을 가지고 에너지를 쏟아내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하루의 잠깐이라도 자신을 정비해줄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생각에서 비롯해서 슬리퍼스써밋도 오래전부터 예술로 풀어내어 전달할 수 있는 ‘마음챙김, 마음돌봄’의 방법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우리가 진행해오고 있는 프로젝트들과 개인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들이 연결되어 곧 더 많은 사람들이 직접 만져보고 만나볼 수 있는 ‘자신을 돌보는 무언가’로 완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브런치를 통해서 그 구체적인 과정 또한 더 자주 나눠보려 한다.
도자와 역사, 소나무와 백자, 소나무와 차. 그 ‘이음’을 기대해주길 바란다.
도연희 문화 기획자/기업가, 슬리퍼스 써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