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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고 말하기

by 이영희

브런치 북에 당선되려면 야심과 전략이 필요하다며 브런치에서 톡이 왔다.

내게 있는 거라곤 소심한 쓰기일 뿐인데 어떤 욕심과 무슨 전략을 어디까지 욕망하며 철저게 세우라는 것일까. 야심과 전략으로 당선의 기쁨을 누리는 분들이 부러워지다가도 오로지 내 역량대로 좋아하고 즐기 꾸준한 길밖에 없음에 오늘도 이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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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던 개미가 구멍 찾기 어렵겠고

돌아오던 새는 둥지 찿기 쉽겠구나

복도에 가득해도 스님네는 싫어 않고

하나로도 속객은 많다고 싫어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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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시는 당나라 때 시인 정곡鄭谷이 낙엽을 노래한 것이다.

낙엽이 쌓이는 형상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시의 모든 상황은 정갈하며 개운해진다.

읽어내는 마음가짐도 가지런해지는.

시인은 어디에도 낙엽과 관계되는 말은 조금도 비치지 않았다.


정곡이 노래한 낙엽 詩안에서 야심과 전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경이로운 저 경지야말로 우리가 탐구해야 할 공부가 아닌지.


누구나 시는 지을 수 있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외롭다, 괴롭다,

쓸쓸해서 아름답다느니 또는

마음의 상처가 이렇고 저렇고

제 멋에 겨워 흐드러진다.


말하지 않고 말하는

늦가을 정취를 담아낸 정곡의 .

사진기로 찍지 않아도 찍어 보여준 듯하고

그림이 없어도 그림이 상상된다.

더욱 겸손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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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남편과 과천에 산책을 갔었다.

집에 돌아오려 공원 주차장에 세워진

당신 차.

그 위에 떨어진 낙엽 하나.

그것을 떼어내는 남편의 손을 보며

저 위의 옛시가 절로 기억에서 소환되었다.

낙엽 하나 차 등에 얹은 채로 달리면 어때서.

고 하나도 많아 보였던가.

산책하며 계절이 주는 정서에

그토록 충만했던 남편의 감성은 간데 없이

지나친 남편의 깔끔(?)이 나를 살짝 슬프게 했던...


연필과 지우개


색연필 ㅡ비교적 젊은날의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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