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그때의 나일까요

by 이영희


공원을 걷다 참새와 까치를 만난다.

도심의 공원 안 참새와 비둘기, 까치는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먹이를 조른다. 과자 부스러기를 던져주자 우르르 모여들어 쪼아 먹느라 부산하다. 무리의 언저리에서 불안정하게 겨우 자기 앞에 떨어진 부스러기만 쪼아대는 비둘기 한 마리가 눈에 띈다. 자세히 보니 한 쪽발 발가락이 모두 잘려 뭉툭하다. 나는 다친 비둘기 앞으로 과자를 던져준다. 하지만 윤기 없이 야윈 모습으로 절룩거리며 먹이를 쪼아 먹는 애처로운 그 모습을 오래 보고 싶지 않아 다른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오후 시간을 창밖만 내다보며 보내기가 지루해진 열 살의 아이는 집을 나섰다.

그날도 딱히 갈 곳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밖의 공기를 느끼고 싶었다. 아이들은 지금 어떤 놀이를 하고 있을까. 예쁘고 새로운 그림이 들어간 공책이나 책받침이 눈에 띄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문방구로 향하는 길에 이상한 놀이를 보게 된다. 또래 남자아이들이 작은 물체를 공중에 던지며 깔깔대면서 서로 주고받고 있었다. 다가가서 보니 죽은 참새다. 아이는 가슴이 콱 막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하든 그 놀이를 그만두게 하고 싶지만 어떻게 말릴 수 있을까.


죽은 새는 목이 축 늘어진 채 처절한 몸짓으로 공중을 날고 있었고, 아이가 얼마나 슬픈 표정으로 바라보는지 알지 못하고 두 아이는 놀이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아이는 던져지는 그 새가 바로 자신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남자아이들이 빨리 그 놀이가 싫증 나기를, 그래서 땅바닥에 버려진 새가 자신의 손안에 들어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도 놀이는 중단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아이는 스스로 생각해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낯이 익은 남자아이에게 다가갔다.

“그 새 팔래? 나에게 지금 50원이 있는데 그 새를 준다면 이 돈을 줄게”

갸우뚱하며 잠시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남자아이는 비식 웃더니 다른 아이의 표정을 살핀다.

“하 하 하. 좋아, 가져가”

50원의 위력은 아이를 불안과 아픔에서 해방시켜주기에 충분했다. 손안에 들어온 작은 새는 너무 가벼워 무게를 느낄 수조차 없다. 군데군데 깃털도 빠져나가고 눈은 벌려도 벌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주 굳게 감고 있다. 작은 발은 꽉 오므려 쥐고 있어 가슴을 더욱 아리게 한다. 너무 아파서 그런 것 같았다.


아이는 뛰기 시작했다. 뛰면서 참새를 묻어 줄 수 있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집으로 돌아와 책상 서랍을 뒤진다. 마음에 드는 파란 색종이를 꺼내어 참새를 싸고 실로 정성스레 묶었다. 그리곤 집 앞의 은행나무 밑에 흙을 파고는 새를 묻어 주었다. 이제는 편안하게 ‘잘 자’


세월 따라 마음도 변하는 것일까.

키가 자라는 만큼 나이가 드는 만큼 자연의 향기와 인간의 향기에 더 깊은 애정을 담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것 챙기기에 바쁘고 탁해져 가는 마음을 숨길 수 없다. 부모 없는 장애아나 저 멀리 난민 아이들을 돕자는 TV프로를 본다. 월 만원부터 월 3만 원이면 어려운 이웃을,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을 도울 수 있다고 유명 배우들이 낮은 톤의 목소리로 화면을 통해 애잔하게 호소한다.

남에게 제대로 된 사랑 한 번 베풀지 못하고 매일 뭘 먹어야 하나, 입어야 하나 일신의 안일함만 챙기는, 내가 정말 그때의 나인가 싶다.


죽은 새를 사서 묻어 주었던 그 소녀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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