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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눈물 사이
성을 진지하게 다루는 것이 무척 중요한 일
by
이영희
Aug 3. 2019
<11분>, 파울로 코엘료의 이 작품은 감상적 소설이면서 포르노그라피의 혼합형이다.
이 소설은 여주인공의 관점에서 브라질의 작은 촌 동네의 소녀가 성장하며, 꿈꿔오던
욕망에서 한참이나 벗어나 창녀라는 직업을 선택한 경위, 그리고 다시 평범한 여인으로
돌아오는 인생역정을 서술한다.
이 작품은 347쪽에 걸쳐 주인공 마리아의 성적 모험을 잘 보여주고 있지만, 동시에
다른 한 가지 사명을 추구한다. 즉 작가는 수기 같은 이야기 형식을 빌려 다른 사람들
이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한 여인의 정화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마리아는 그 나이답게 순진한 허영심을 이기지 못해 창녀라는 직업, 바닥에까지 떨어져
부적절한 방법으로 돈을 모으고 있지만 어찌 보면 갸륵해 보이고, 가장 흔한 핑계인 잘살고
싶고 부모에게 효도다운 효도를 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일을 다니는 동안 온갖 손님 중에 괜찮은 손님인 화가 랄프를 만나 정신적으로 더욱 성장해 나간다.
빠져나오기 힘든 늪 같은 직업을 마무리하며 이루고자 하는 욕망을 끝까지 관철시키는 의지를 보여준다.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마리아의 입을 빌려 섹스, 그 너머까지의 진실을 서술한다.
소설 안에는 섹스 산업 종사자인 마리아가 만약 자신만의 책을 쓴다면 손님을 세 가지 범주로
분류하고, 영화 제목을 따서 명명해 놓은 텍스트가 있다. 흥미롭다.
-- 클럽에 들어설 때 이미 술냄새를 풍기는 '터미네이터'형. 그들은 아무에게도 신경 쓰지
않는 척하지만 실은 모든 사람의 눈길을 의식하고, 춤은 추는 둥 마는 둥 다짜고짜 호텔로
가자고 한다.
그리고 '귀여운 여인' 형. 자신이 과시하는 선의에 의해 세상이 원만하게 돌아가기라도
하는 양 우아하고 친절하고 다정하게 보이고자 한다. 그들은 마치 산책하다 우연히 들른
척하며 클럽에 들어선다. 그들은 처음에는 부드럽지만 호텔에 도착할 때쯤이면 어딘지
불안해 보였고, 나중에는 터미네이터들보다 더 까다롭게 굴었다.
마지막으로 여자의 몸을 상품처럼 취급하는 '대부'형.
그들은 겉과 속이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춤을 추었고, 말을 했고, 좀처럼 팁을 주지 않았고,
자신이 치른 돈의 가치를 알고 있었고, 자신이 택한 여자와의 대화에 결코 이끌려 들어가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이야말로 모험을 아는 남자들이었다. ---
그리고 안정되고 숱한 여자들과 관계를 해온 부유한 화가인 랄프. 그는 그동안 접해온 평범하며
지루한 여자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마리아가 어떤 여인인지 알고 싶어 하는 문장도 흥미로워
옮겨본다.
-- 내 안
에는, 날 만나러 오는 사람에 따라 각기 세 사람이 존재해요. 경탄의 눈길로 남자를
바라보며 권력과 영광에 대한 그의 이야기에 깊은 감명을 받은 척하는 순진한 아가씨.
두 번째는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 남자들을 과감하게 공격해 상황을 통제함으로써 더 이상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도록 남자들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팜므파탈.
그리고 마지막으로,
충고에 목말라하는 남자들을 토닥이고,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한쪽 귀로 듣고 다름 한쪽 귀로는
흘려버리기도 하면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너그러운 어머니,
이 셋 중 누구를
알고 싶으세요. --
랄프는 대답한다. "당신". 이렇게 하여 랄프와 마리아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사랑을
쌓아
나간다는 스토리.
코엘료는 '작가노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성(性)의 성스러운 의미를 발견하는 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내 청년기는 엄청난 자유, 새로운 발견, 과도함의 시대와 일치했고, 그것은 실제로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 여러 극단적 행동에 대해 치러야 했던 대가, 즉 보수주의와 억압의
시대로 이어졌다. 1970년대에, 작가 어빙
윌리스는 미국의 검열 제도에 관한 글에서 자신이
섹스에 관한 소설을 출판하려다 정부로부터 당한 법적 기만을 폭로한 바 있는데 그 소설이 바로
<7분>이었다. (중략)... 따라서 같은 주제의 작품을 한 번 서볼까 했던 나의 생각은 자연히
무산될 수밖에 없었다. 그저 그 제목 '11분'(나는 성교의 평균 지속 시간을 의미하는
윌리스의 기준이
지나치게 인색하다고 생각되어 시간을 조금 연장하기로 했다)과 성을 진지하게 다루는 것이 무척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만 남았을
뿐이었다.(중략)...
마지막으로 현재 결혼하여 남편과 사랑스러운 두 딸과 함께 로잔에 살고 있는, 이 소설의 토대가 된 자신의 이야기를 여러 차례의 만남에서
, 나와 모니카에게 들려준 마리아(가명)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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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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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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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스트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있습니다. 그림을 즐깁니다. 수필집 <자궁아, 미안해> 2022년 봄,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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