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후의 명작을 남긴 문학 작가와 귀에 익은 음악가, 그리고 화가 중에 한 사람 또는 두 사람만 꼽으라면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누구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은가.
사람마다 좋아하는 분야가 있으니 볼테르와 니체를 말하고 싶은 이도 있을 것이며, 슈만과 바그너에 대해서, 다른 누군가는 루벤스와 반 다이크에 대해 들려주고 싶을 것이다. 또 어떤 이는 허균과 허난설헌의 생애를 좀 더 깊이 탐구해 볼 수 있겠다.
내게 이런 제의가 들어온다면 저 세상 사람이 아닌 지금 활동 중인 작가, 테드 창과 장석주에 대해 말하고 싶다.
먼저 과학소설을 쓰는 테드 창. 그는 탁월한 상상력뿐만 아니라 수학과 언어학, 종교학까지 넘나들며 철학과 과학의 세계를 어렵지 않게 풀어놓는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번역한 SF 평론가인 김상훈은 '창'을 이렇게 소개한다.
“1967년 뉴욕 주 포트 제퍼슨에서 중국계 이민 2세로 태어나,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아이비리그의 명문 브라운 대학에 입학하여 물리학과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했지만, 학자의 세계에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문학 쪽으로 돌렸다. 대학 졸업 후에는 워싱턴 주 시애틀의 컴퓨터 관련 기업에서 기술관계의 매뉴얼을 쓰는 직장을 얻었고, 저명한 SF 창작 강좌인 클라리언 워크숍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중단편들을 한 편씩 발표하여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바빌론의 탑』으로 SF의 노벨상이라고 하는 네뷸러 상을 수상하였다.”
2016년에 개봉한 드니 빌뇌브가 감독한 〈콘택트〉. 이것은 테드 창의 작품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 안에 단편인 <네 인생의 이야기>다. 이 작품 또한 네뷸러 상을 받으며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 속 외계인 문자는 먹물로 휘날린 붓놀림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그런 의도는 없었다고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중국인의 유전자가 꿈틀대는 것이 보였다. 1997년 개봉했던 조디 포스터 주연인〈콘택트〉와 같은 제목을 썼지만 그것과는 다른 차원의 미래에 빠져들게 한다, 두 영화를 비교해서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네 인생의 이야기>는 지구에 온 외계인과 접속하며 그들의 언어를 연구하여 번역하는 여자에게만 보이는 피할 수 없는 운명, 미래를 기억하는 일이 병행되며 엮어진 SF소설이다. 왜 그 여자에게만 미래가 보이는 설정을 했을까. 지구인들만 외계 생물을 탐구하는 것은 아니다. 외계인들이 멀고 먼 지구라는 행성으로 날아온 이유는 더 뛰어난 지능으로 지구인의 지적 수준과 진화 과정을 생물학적으로 연구하려는 목적으로 이곳에 왔을 수도 있다. 그래서 외계인은 지구인이 앞으로의 운명을 어떤 식으로 개척하는지 여자에게 미래를 보는 능력을 잠시나마 주고는 인간들의 이기심으로 점점 황폐해져 가는 푸른 별을 잘 지키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어쩌면 지구를 찾아온 외계인은 미래의 우리일 수 있다. 이런 트릭이 테드 창의 모든 소설 속에 녹아 있는 주제다. 탁월한 상상력에 놀랄 뿐이다.
자신의 미래가 뚜렷하게 보이는 일, 만약 그런 예지력이 누구에게나 가능하다면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갈까. 벌어질 나쁜 상황은 전부 피하고 사는 것이 행복일까, 아니며 모르고 그때그때 상황에 대처하며 살아가는 게 인간다운 삶일까. 만약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이 이미 운명의 지도에 그려져 있으며 이것이 어느 잡지에 활자화된 후, 사람들이 이런 글은 가치 없는 글이라고 평한다면 이렇게 태연하게 키보드를 눌러대고 있을 수 있을까.
내가 아는 것이라곤 훌륭한 인물이든 바보든, 자연사든 돌연사든 모두가 죽는다는 것만 확실하게 알 뿐 그 외의 것은 모른다. 안다고 해도 서툰 짐작일 뿐이다. 내 운명의 전체를 안다는 것은 두려움만 더할 것이다. 이 글을 끝내고 나면 마쳤다는 가뿐함과 함께 내가 쓰고자 했던 주제와 일치했는지 돌아보는 일뿐이다. 요정도의 지능만으로 살아지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테드 창 같은 재능을 지닌 천재 작가들이 지어내고 만들어내는 작품들이 있어 인류학, 생물학, 물리학과 우주과학에 대한 진리와 함께 상상을 확장해가는 것에 만족하자.
테드 창이 작품 구상을 하며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며 상상하는지, 그의 말을 옮기며 맺는다.
“사르트르의 <구토>의 주인공은 그 어떤 것을 보아도 단지 무의미함밖에는 느끼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와는 반대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서 의미와 질서를 본다면 어떤 느낌을 받게 될까. 일종의 강화된 지각이 머리에 떠올랐고, 한걸음 더 나아가 초월적인 지능이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일반적인 인식 양식과는 근본적으로 상이한 형태로 변화하는 시점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장석주. 시인이며 소설가, 문학비평가, 출판사 사장, 방송진행자, 교수, 북칼럼니스트라는 다양한 명함을 갖고 있다. 그의 책 읽기의 집요함과 부지런한 글쓰기는 나를 채찍질한다.
스무 살에 시인으로 등단한 그는 가난한 형편에 시립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으며 삶의 부담을 달랬다며 이렇게 썼다. “굶주린 매가 새를 잡아채는 기세로 시립도서관 서가의 책들을 읽어나갔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슴 한구석에 없지 않았지만 책을 읽는 동안은 불안과 시름을 잊었다”라고.
그의 책 중에서 소개하고 싶은 것은 2008년에 나온 <그 많은 느림은 어디로 갔을까>다. 이미 장석주의 이 책을 소개한 적이 있다. 여기서 다시 그를 이야기해 본다.
장석주는 자신을 이렇게 설명한다. “ 안성에 내려와 집을 지었다. 나는 서른 즈음에야 겨우 순정품의 한 면을 스치듯 만졌다. 물병자리 남자로서 맞은 마흔은 많은 미혹들로 어지러운 생이었다. 겨우 안정을 찾아 흙이 견고하고 윤택한 대지 위에 집을 세우고, 아울러 물맛이 달고 맑으면 길하다는 말에 따랐다. 물가 주민으로 살면서 마당까지 올라오는 잦은 물안개를 보는 것과 물안개 속을 헤엄쳐 오는 겨울 물고기를 만나는 일을 보람으로 삼았다. 고독이여, 나는 그대를 겨울 불고기라 부른다.”
왜 그가 느림을 주제로 책을 엮었는지 궁금해졌다. 프롤로그 ‘장자에게 듣다’부터 시작한 그는 마지막 장인 에필로그에 이렇게 썼다. “<장자>를 일삼아 붙들고 읽은 지 십 년이다. 장자에게서 배울 것은 사물이 변화하는 이치요, 천명의 운행에 대해서다. 이 바탕에 있는 것이 무위함이다. 유유자적이다. 느림은 마음이 움직이는 속도요, 심장 박동의 리듬이요, 우주가 운행하는 도다. 그 느림에 영혼을 실어라. 온 천하가 미혹되었으면 나 또한 하나의 미혹이거니, 애써 그 미혹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지 말라. 그 몸부림이 헤어나기 어려운 그물을 만든다. 그물은 바람을 잡을 수 없으니 바람이 되어 그물을 빠져나가라."
<장자>를 십 년째 붙들고 읽고 또 읽은 장석주. 어찌 장자뿐이겠는가. 그가 쓰고자 하는, 알고자 하는 공부는 지금까지 그렇게 했왔으리라. 장자를 읽을 땐 장자의 눈썰미를 닮고 싶어 했을 것이며 논어를 공부할 땐 공자의 지혜를 꿰뚫었으리라. 맹자와 노자도 물론 그렇게 파고들었겠지. 그렇게 하여 많은 고전 속의 해학을 자신의 삶에 접목하여 <그 많은 느림은 어디로 갔을까> 외에도 많은 작품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을 것이다. 큰 제목 안의 많은 작은 제목에서 새기고 싶은 문장을 만날 때는 잠시 책을 옆에 밀쳐두고 나 또한 내 인생의 고비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다시 짚어 보게 되었다.
여기에 눈에 밟히는 문장을 옮겨본다.
<<숲을 떠나며>>
“숲 속에서 책을 읽다 졸다 하며 한나절을 보낸다. 이 숲 속에서 한가롭게 보낸 한나절은 몸과 마음을 어지럽히던 뜨거움과 혼돈과 공기를 잠재우고 내면의 균형과 평화를 주었다. 이것으로 며칠 동안 엔도르핀은 부족하지 않겠다. 해가 설핏 기우는 기미를 느끼며 돗자리를 걷는다. 어둠 속에 오래 있던 눈이 빛의 광채를 가장 예민하게 느낀다. 마찬가지다. 무분별 속에서 벼린 분별이 지혜롭다.”
테드 창은 지금이라는 시간을 열어 미래를 보여주는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장석주는 과거를 열어 지금의 삶을 되돌아보는 <그 많은 느림은 어디로 갔을까>를 엮어냈다, 굳이 왜 두 사람을 주제로 삼았냐고 묻는다면 장석주의 말처럼 “잦은 물안개를 보는 것과 물안개 속을 헤엄쳐 오는 겨울 물고기를 만나는 일을 보람으로 삼았다. 고독이여, 나는 그대를 겨울 물고기라 부른다.” 이것과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에 나오는 외계인 햅타포드 또한 물안개 속을 헤엄쳐 나오는 물고기를 닮아있다.
두 작가의 장르는 확연히 다르지만 나를 찾아가는 여정 속에 떨쳐지지 않는 미혹과 고독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 발상을 뒤집어 깨달음에 도달하는 심미안이 그들에게 있다. 평범한 것에서 비범한 의미를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늘 보던 것에서 안목이 넓어지고, 삶이 눈길이 깊어진다.
장석주의 물안개 속을 헤쳐 나오는 겨울 물고기는 바로 당신과 나였으며, 테드 창의 미래의 인류인 햅타포드 또한 바로 우리였음을 깨닫게 해 준다. 인간 본성을 찾아가는 과학과 인문학의 접목.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부조화를 조화시켜보았다.
속담에 ‘백문이 불여일견’이 있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고 설명하듯이 또는 남대문을 보지 않고 가까이서 직접 본 듯한 떠들썩한 글이 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때때로 장님의 손길처럼, 촌놈의 아는 척하는 장황한 꼴을 보여준 것을 아닐까, 하며 스스로 갸우뚱해지기도 한다. 맺으며 두 작가의 책 소개의 부족함은 책과 영화 보기를 추천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