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학이 깊으면 성취가 높을 수 있다. 능력과 성실이 결합하면 그렇다. 하지만 자학으로 자아가 뭉그러지면 성취의 행복을 느낄 수 없다. 실제 능력보다 자기 자랑이 큰 사람은 행복해 보이지만 막상 주위에선 그만큼 대접해 주지 않는다.’
오래전, 지하철 선반 위에 있던 너덜 해진 신문을 내려 들춰보니 이런 글귀가 눈에 들어오기에 찢어 가방에 넣어왔다. 집으로 돌아와 한 번 더 보고는 책갈피 속에 끼어 넣었는데 그 쪼가리가 무슨 제목의 책에 들어있는지 잊고 있었다.
김승옥의〈무진기행〉을 들춰보다가 신문 쪼가리를 다시 보았다. 책상 앞에 붙여 놓았다. 〈무진기행〉속 밑 줄 친 문장들을 보다가 여기에 머문다. “어떤 사람을 잘 안다는 것, 잘 아는 체한다는 것이 그 어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무척 불행한 일이다.” 이것을 가면에 대입시켜 보았다. 가면을 벗는 것, 내면의 표정을 잘 가려주던 가면을 벗겨내는 것이 그 가면의 입장에서 보면 불행한 일이다. 불행까지는 아니라도 당황스럽고 겁나는 일이다.
그동안 많지는 않지만 유명 작가들의 소설과 에세이를 읽었으며, 일기도 써 왔으니 나다운 글 한 번 써봐야지, 하며 노트북을 열곤 했다. 수많은 에세이집. 비슷비슷한 살림살이를 써 내린 여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보석과 명품으로 치장한 우아한 부인들이 자랑 아닌 척 자식 자랑, 학력자랑, 남편 자랑 그리고 안방에서 화장실 가는 일만큼이나 쉬워진 해외에 다녀온 이야기가 대부분인 글. 하지만 때때로 보석처럼 빛나는 글도 많다.
써 보면 안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름대로 문장에 대한 기초를 다지기 위해 마음에 드는 국내 작가의 단편을 베껴 보는 것이 글의 형식을 갖추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시작해보기도 했다. 짧은 시는 공책에 옮겨본 적 있지만 긴 글은 필사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얼마나 대단한 글을 쓰겠다고 수행하는 것처럼 싫증 내지 않고 끝까지 해 낼 수 있을까?
생각을 고쳤다. 우선 내 무지가 어디까지인지를 밝히기 위해서 단편과 함께 장편 소설을 필사해 보았다. 훌륭한 소설이라도 장편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선택한 것은 끝까지 밀고 나갔다. 눈으로만 읽었을 때와는 달랐다. 인간 본질을 신선한 통찰력으로 전달하는 재능과 문장의 힘에 더 기가 눌렸다. 책 한 두 권 베낀다고 당장 글이 좋아질 리 없다. 쓰기에 대한 두려움만 깊어졌다. 유치하고 부끄러운 내 생각과 행동에 대해 정직하고 대담하게 쓸 수 있을까, 하며 자신감이 없어지곤 했다.
좋은 작품과 작가는 세상에 넘친다. 문창과를 나온 젊은 사람들, 요즘 잘 나가는 드라마 작가까지. 굳이 나까지 써야 할까. 더 진실하게, 더 현명하게, 더 똑똑하게 삶을 꿰뚫어 보는 독자들에게 작품을 읽는데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내 이야기가 사려 깊게 이해받을 수 있을까. 이렇게 저렇게 따지면 어떤 일이든 늦된 수재가 아닌 이상 이름을 세우기엔 한참 늦은 나이다. 그렇다고 예전의 나로 돌아가 아무렇게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이제는 쓰는 일보다 더 어렵게 되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내 무지를 무지 인체로 놔두었어야 했다. 어쩌면 소질이 없으면서 너도 쓰니 나도 써보겠다며 덤비며 애쓰는 속물 같다. 그러나 이미 이만큼이나 써 내렸으니 여기에서 멈추지 말고 조금만 더 이어보자.
어느 날은 지면에 발표된 제목과 내용에 끌려 비슷한 경험이 있었는데, 하며 근거 없는 자신감에 성급하게 써 본다. 잘 써질 것 같은 기분이 샘물처럼 솟는다. 청량한 맛까지 느껴진다. 그러나 단정하던 걸음걸이가 문장이 길어질수록 정신 나간 사람처럼 제 멋대로 걸어가고 있다. 사람들에게 전달하고픈 진실은 간데없고 맹물 같은 사실만 밍밍한 감정으로 질펀하다. 걷힐 것 같지 않은 지독한 안개다. 이런 글은 두 다리가 멀쩡한데도 지팡이를 짚고 돌아다니는 꼴과 같다. 〈무진기행〉속 주인공 남자가 하인숙에게 주려고 썼던 편지를 찢어 버리듯, 대책 없이 감정만 남아도는 이런 글은 미련 없이 삭제한다.
그러나 제법 제목이 그럴듯하거나 주제에 미련이 남을 때는 모니터 저 안쪽 저장고에 가둔다. 시간이 흐른 뒤 그곳으로 찾아가 가만히 들여다본다. 해가 조금씩 비추고 바람이 안개를 서서히 밀어낸다. 그때는 안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헝클어진 머리를 쫑쫑 가닥가닥을 연결하여 다시 하나의 틀로 땋아본다.
이렇게 글 한 편이 겨우 마무리되면 해냈다는 만족보다는 가면을 벗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다시 밀려온다. 그래도 쓰자. 보이는 만큼만, 느끼는 만큼만. 어깨에 힘주지 말고.
사실 너무 애쓰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 매끄럽게 쓸 수 있을 것도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