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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둥켜안고 좋아했던 그 시절

by 이영희


'후회는 아무리 빨리해도 늦다'


이 말처럼 머리를 세게 쥐어박는 것도 없습니다.

세월 따라 어리석음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작든 크든 후회는

내 뒤를 따라다닐 것입니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뻔히 보이는 언행도 있었으며,

예상치 못한 장면을 마주하며 당혹감에 어찌 할 바를 모르는 상황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이미 한참 된 일이지만, 고백성사처럼 이야기를 풀어 내 봅니다.

그날, 이미 동거 중인 고양이가 두 마리나 있는데도

지하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에

참을성 없이 달려가 무엇이라도 먹여 볼 요량으로 안고 올라 와 집안에 들였습니다.


순간, 집안에 있던 두 마리가 갑자기 '하악 하악' 대며 거칠게 변하고 말았지요.

얼른 데려온 고양이를 다시 주차장에 내려가 두고는 물과 먹이를 구석진 곳에 주고 돌아왔지만,

집안의 이뿐이와 뚱이는 서로 앙숙이 되어 전쟁 중이었습니다.

둘이 모녀지간처럼, 부둥켜안고 좋아했던 그 시절이 언제였던가.


야생 고양이로 돌아가버린 이쁜이와 뚱이.

달래 보아도, 야단을 치고, 먹이로 유인해도 둘은 원수가 되어 서로 마주하려 하지 않습니다.


후회!!

단순하기가 고양이보다 나을 것이 없는 내 무모함에

자책을 아무리 해도 모자라지 않습니다.


퇴근해 돌아온 아들과 남편은 아침에 출근할 때 비벼대던

그들이 아닌 행동에 적잖이 놀라며

왜 갑자기 이런 상황에 이르렀는지 나에게 자꾸만 묻습니다.


남편과 아들 또한 이쁜이와 뚱이에 대한 사랑이

나보다 한 수 위여서, 만약 주차장 고양이에 대한 일을 말한다면,

두 사람 모두 나에게 원망의 화살을 매일매일 쏘아 댈 것이 틀림없습니다.


거짓말!!


나는 모릅니다.

왜 그럴까요, 나도 모릅니다.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하듯이 그렇게 그렇게

.....

닭은 새벽마다 울었지요.

세 번째, 네 번째 날이 밝아도 야생의 서열싸움으로 번진 이 사태를 수습할 길이 없습니다.

아들은 동물 병원에 가서 상담을 하고는, 진정제 스프레이가 이미 있는데도

더 효과 바른 값비싼 것으로 다시 사 왔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이쁜이는 집안에서, 뚱이는 베란다 공간으로 내 보내어

방충망 사이로만 서로를 볼 수 있게 분리해 놓는 것뿐입니다.

하나의 화장실이 두 개로 분리되고 사료도 물도 따로 먹습니다.

해야 할 일은 두 배 세 배로 늘었습니다. 하지만 묵묵히 죄를 씻는 마음으로 조용히 처리합니다.


둘의 친밀함이 부활하기만을 바랄 뿐이었습니다.

다시 서로 햟아주며 부둥켜안고 자는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나는 아들과 남편에게 이실직고하려 합니다.


'나는 모릅니다'에서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운다고 , 자꾸 운다고 무조건 데려올 생각은 두 번 세 번 숙고해야겠습니다.

동물에 대한 보호 본능을 한 번 더 생각하고 행동하겠습니다.


이미 한 참 된 일이며, 이젠 다시 사이가 좋아졌습니다.

가끔씩 서로 신경전을 벌이며 까칠하게 거칠게 굴 때도 있지만

그 날 처럼 당황하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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