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다. 다시 중환자실이었다.
꿈이 너무 생생했다. 아니, 꿈이 아니라 현실 같았다. 오히려 지금 이곳이 꿈 같았다.
저 세상에서 볼 때는 이 현실이 흐릿했다. 저곳은 맑고 투명했다. 컬러 TV와 낡은 흑백 TV의 차이 같았다. 이 세상은 해상도가 너무 떨어졌다.
'여기가 꿈인 건 아닐까?'
의료진이 와서 상태를 확인했다. 뭔가 말하고 있었지만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시 숨이 가빠왔다. 헐떡거리다가 또 의식이 멀어졌다.
'이번에는... 어디로 가게 될까?'
아내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나는 필사적으로 말했다.
"숨이 너무 힘들어. 도와줘."
하지만 아내는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내 입술의 움직임을 보고 있을 뿐, 내 목소리는 듣지 못하고 있었다.
어제서야 알게 된 진실이었다. 나는 분명히 말하고 있었지만, 소리는 내 입 안에서만 맴돌고 있었다. 아내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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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어머니가 떠올랐다.
호스피스 병동. 3주 동안의 마지막 시간들. 어머니는 계속 뭔가 말씀하려 했지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네, 어머니" 하고 대답했다.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이었다. 어머니가 유독 간절하게 뭔가 말씀하려 하셨다. 나는 귀를 어머니 입술에 바짝 댔다.
"내가... 얼마 못 살 것 같으니... 이제 매일 와라."
겨우 들린 마지막 말씀이었다.
생사의 고비에서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영혼이 육체를 떠나려 할 때, 말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다.
나도 그런 상태였던 것이다. 내 목소리는 나만 들을 수 있는 혼잣말이었다.
"기운을 아껴."
아내의 조언이 이제 이해됐다. 내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도, 무엇을 원하는지도 아내는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다만 내가 고통스러워한다는 것만 알 수 있었을 뿐.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그때를 떠올린다. 재활 중인 지금이 천국처럼 느껴진다. 통증과 답답함 속에서도 이 순간이 축복이라는 걸 깨닫는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재활 말고는 없다. 하루 종일 재활만 할 수도 없고, 체력 때문에 제한적인 시간만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울고 웃고 감사하며 때로는 긴장과 안도감을 느끼며 치유의 글쓰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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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이 지났을까. 중환자실에서 관찰병실로 옮겨졌다.
중환자실에서는 내 신음소리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관찰병실 간호사들은 달랐다. 세심하게 배려해주려 했다.
아내를 만날 수 있었고, 베트남 지인들도 만날 수 있었다.
베트남에서 나의 생명을 살려준 분은 김사장님이다. 그곳에서 사업을 하신다. 김사장님의 현지인 직원 중 한 명이 병원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스무 살의 ‘초’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가족이 없는 아이였다.
"수술 후에 온몸에 모래가 많이 붙어 있었어요."
아내가 나중에 들려준 이야기였다. 의사가 모래를 털어내라고 했고, 아내가 베트남에 도착하기 전까지 초가 그 일을 했다고 했다.
"그 아이가 많이 울었어요."
왜 울었을까 궁금했는데, 며칠 후에 사연을 알게 됐다.
초의 아버지는 몇 년 전 이 병원에서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수술 후 앙상하게 마른 내 모습이 죽은 아버지와 똑같았다고 했다.
뼈만 남은 채 생명력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거의 시체 같은 모습.
초는 모래를 털어내면서 계속 울었다. 눈물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아 몇 번씩 멈춰야 했다. 아버지 생각이 났던 것이다.
아내가 도착한 후에도 초가 병원과의 의사소통을 모두 도맡아 해줬다. 아내와 의료진 사이의 통역을 담당했다.
그런데 내가 입원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초가 갑자기 회사에 사표를 냈다.
"도저히 못하겠어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너무 힘들어요."
사장이 전화로 설득했지만 소용없었다.
"저는 회사 일을 하러 온 거지, 병원 일을 하러 온 게 아니에요."
단호한 대답이었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스무 살 처녀가 혼자 살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같은 병원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보이니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김사장님은 나 때문에 소중한 직원을 잃었다. 바쁜 시기에 직원까지 그만두게 만들었으니 정말 미안한 일이었다.
다른 비서가 임시로 병원 통역을 도와줬다. 두 명의 직원에게 신세를 졌고, 사장님께는 더 큰 은혜를 입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 생명을 지켜주고 있었다.
이 후의 전해들은 소식으로는 ‘초’가 다시 직장으로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나를 간호하다가 많이 힘들었는데 다시 직장으로 복귀하였다고 해서 마음이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