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지만, 한여름, 잘 때 에어컨을 여러 방에 틀기 부담스러워서 넷이 모두 한 방에서 잤다. 이제 성인만한 아이들이지만 아빠 엄마 방에 누우면 조잘조잘 어린 아이가 된다. 나도 마찬가지.
"고백할 게 있어. 나 중학교 때까지 피사체가 프랑스어인 줄 알았어. 휘싸체. 휘에 강세를 넣어서 말해 봐. 정말 프랑스어 같지 않아?"
"으하하하 깔깔.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피사체는 한자다. 被寫體 입을 피, 베낄 사, 몸 체. 사진 찍힐 대상이 되는 물체를 말한다.
근데 왠지 나는 이게 프랑스어 같았다. 중학교 땐가 고등학교 땐가 교과서인가에서 이걸 발견하고는 프랑스어처럼 입 밖으로 내기 전에 한자인 걸 알아서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린 기억이 있다.
나에 이어 큰애의 고백이 이어졌다.
"근데 있잖아, 엄마. 나는 미사일이 한자인 줄 알았어."
"아하하하 그러네. 정말 한자말 같은 느낌이긴 하다.
미사일. 美 아름다울 미射 쏠 사 軼 앞지를 일
아름답게 쏘아 앞지르는 미사일. 잘 맞는데. 깔깔"
둘째도 한마디 거든다.
"엄마, 백신도 한자 같지 않아?"
"맞아, 맞아. 엄마도 백신이 한자인 줄 알았어.흰 백白에 몸 신身. 몸을 깨끗하게 해주는거지."
"나는 흰 백白에 귀신 신神이라고 생각했는데. 옛날 사람들은 귀신이 병을 들고 낫게 해준다고 생각했다잖아."
고백이 계속되자 결국 아빠가 끼어든다.
"조깅이 한자인 거 알아? 아침 조에 뛸 깅이래"
으하하하, 깔깔
시덥잖은 유머에도 잠들기 싫은 아이들은 깔깔거리느라 정신이 없고, 오늘도 아이들은 자정을 훌쩍 넘겨 잠이 든다. 그렇게 함께하는 여름 밤이 하루 더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