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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리피언 Jun 30. 2022

20년차 다이어터의 홈트 보름 체험기

지방으로부터 나를 구하소서.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나갔던 몸무게는 고3때다.

63kg까지 찍었던 것 같다. 내 키는 160cm가 안된다. 65라는 숫자를 볼까봐 두려워질 무렵 수능을 봤고, 수능 끝난 다음 날 엄마는 나한테 감자만 줬다. 대학 가면 빠진다고 다이어트 못하게 하더니, 감자만 줬다. 그저 식이요법 뿐이었던 나의 다이어트는 그날부터 시작됐다.

픽사베이

감자 뿐 아니었다. 포도, 수박, 강냉이...먹지 않고 다이어트 하기는 싫었던 나는 주로 원푸드 다이어트를 했다. 빠지긴 빠졌다. 아마 고3 때까지 도통 움직이지 않은 게 원인이어선지, 한 8kg 정도가 3년 정도에 걸쳐서 빠졌다.


운동도 하긴 했다. 헬스장에 등록했는데 웬 헬스 고인물 아저씨가 "아가씨 그렇게 해서는 살이 안 빠진다"고 "뛰라"고 해서 멋모르고 뛰다가 무릎이 나갔다.

픽사베이


재미도 없던 참이라 한동안 쉬다가 스쿼시를 배웠다. 나는 부족한 게 많은 인간이지만, 그 중에서도 운동신경이 가장 부족하다. 내 또래였던 젊은 강사는 "자기가 여기 온 이래로 가장 오래 초보반에서 못 벗어난 수강생"이라고 했다. 대체 살 못빼는 게 뭐라고 다들 이렇게 내게 쉽게 모욕감을 준거지?


뭐 그렇다치고. 골프도 몇 개월해보고 이런저런 운동을 찝적거리다 이래저래 뚱뚱이에서는 벗어났다. 그런데 살이 다시 찔 거라는 공포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첫 애를 임신하고 '다행히' 입덧이 심했다. 8kg 밖에 안 쪘다. 근데 애를 낳고 3일만에 몸무게를 쟀는데 1kg도 안 빠졌다. 왜지? 뭐지? 다행히 모유수유와 찜질을 번갈아해대던 조리원 2주 동안 조금씩 빠졌다.


둘째 때는 11kg가 쪘다. 다시 애낳고 3일만에 몸무게를 쟀는데 또 안빠졌다. 역시 모유수유하는 10개월 동안 잘 빠졌다. 아니 더 빠졌다. 몸무게 인생 최저점을 찍었다.


그때는 뭔가 신났는데 애가 중학생이 된 이제 와서 몸이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너한테 복수할거야." 굶어서만 살을 뺀 나한테 복수를 하려는 건지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다.


일단 몇 년전 30대 중반에 고지혈증 판정을 받았다.


몇 달 전부터는 오른쪽 라인이 마치 마비된 것처럼 아팠다. 병원에 갔더니 주사를 권했다. 음 뭔가 이게 아닌 것 같긴 한데 나는 또 순둥이 아닌가. 맞고 나아지면 으려나 싶어서 두어번 맞았다. 별 차이가 없었다.


운동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근육이라고는 없어 남편이 말랑말랑이라고 부르는 내 몸 구성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오랫동안 건강히 살면서 내 아이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싶다는 식상한 꿈을 가지고 있다. 오래 살면서 골골대며 아이들에게 치대면 어쩌지. 간절함은 방법을 찾게 한다.


그 무렵 핸드폰을 바꿨는데 폰에 홈트 앱이 설치돼있었다. 티비에 연결해 몇 번 보다가 버벅거림에 짜증내고 있을 때 통신사 프로그램에도 같은 앱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뭔가 이건.. 건강히 잘 살아보라는 하늘의 도움인걸까.


아침, 저녁 최소 30분씩. 어떤 이들에게는 저걸 지금 운동이라고.. 싶지만, 나한테는 인생 최대량의 운동을 시작했다. 고 3때 감자만 먹으면서도 운동을 이렇게 하지 않았다. 지금은 뭔가 식이요법 만으로는 살을 빼도 내 근육, 내 뼛골까지 다 빠지리라는 공포에 운동을 시작하다보니 꾸준히 해야한다는 의욕이 최고치다.


암튼 절박함에서 시작해서 그런지 보름차인 오늘까지는 어느 정도 잘 이어가고 있다. 며칠 전에는 와인 한잔 마실 일이 있었는데 알딸딸한 상태로 오바를 했더니 넉다운이 돼서 꿀잠을 잤다. 사실 잠 하나는 잘 자기로 타고 났는데 정말 딥슬립, 겨우 일어나 아이들을 깨웠다.


보름 차인 지금 변한 것이 있을까 몸무게는 하나도 안 줄었다. 사실 약간 실망이다. 그래도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누웠다, 앉았다 일어날 때 몸이 좀 더 가뿐하게 들린다. 지방으로부터의 저항을 줄인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죽죽 처지던 느낌이 좀 줄어들었다고 해야 하나.


무엇보다, 나를 괴롭히던 통증이 엄청나게 줄었다. 스트레칭 등을 했을 때 몸이 개운했던 것을 보면 아마 오른쪽 라인 근육들이 완전히 수축돼있었던 것 같다. 이걸 어떻게 해야하지 싶던 오른쪽 라인, 오른쪽 옆구리, 오른쪽 어깨, 오른쪽 고관절의 통증이 10에서 5, 그러니까 반절 정도로 떨어졌다.


현재 내 상태는 체지방률 26, 근육량 36, 내장비만 10 정도다. 이른바 멀쩡해보이지만, 내장에 비만이 잔뜩 낀 마른 비만. 비정상인 내 몸의 구성을 조금씩 바꾸는 것이 내 목표다


나의 홈트는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나는 지방으로부터 내 몸을 구할 수 을 것인가. 창피해서라도 운동을 이어나가기 위해 글로써 남겨 본다.

홈트 : 홈트레이닝(Home training)의 줄임말이다. 코로나19의 등장과 함께 홈트족들이 늘어났다. 헬스, 요가, 타바타 등 다양한 홈트가 유튜브나 홈트 앱 등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외부에서 운동을 할 경우 드는 과도한 비용, 귀찮아서 거르는 일을 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한편, 아무도 강제하지 않기 때문에 꾸준하게 하려면 아주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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