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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리피언 Jul 12. 2022

도움반 친구의 사춘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져 살기 위하여

◇이상한변호사우영우의 일부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우영우, 페널티 받습니까?"

드라마 이상한변호사우영우의 신입변호사 권민우(주종혁 분)는 무단결근을 하면서도 다시 변호를 맡는 우영우도, 그런 우영우에게 사건을 배당하는 정명석(강기영 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정명석에게 쫓아가 물어본다. "왜 우영우는 무단결근 페널티도 안 받고, 그렇다고 사직서를 수리하지도 않는 건가요?"
민우의 표정을 보면서 큰아이 초등학교 때 일이 떠올랐다.


며칠 전 육아예능 '금쪽같은 내새끼'에 아스퍼거증후군으로 추정되는 아이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도움반' 이야기가 방송에 나왔다. 초등학교에는 일반 수업과 도움반 수업을 병행하는 친구들이 있다. 장애가 있어 일반 수업을 완전히 소화할 수 없는 친구들이다.


아이가 고학년 때 같은 반에 있던 친구 A는 '도움반 친구'였다. A는 요즘 우리가 우영우 덕분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자폐스펙트럼인 아이였다. 첫날 아이가 집에 와서 "엄마, 우리반에 도움반 친구가 있는데 아기 같아. 귀여워"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우영우는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만, A와 아이들은 큰 문제 없이 잘 지냈다. 사실 자폐가 있는 친구들은 다른 아이들과 말투나 행동이 다르기 때문에 아기처럼,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이 학교 주변에서 몇 번 만나기도 했는데 서투르나마 큰애에게 인사를 건네는 A모습은 참 기특했다.

아이는 그 친구를 제법 좋아했다. 학교가 끝나면 "엄마, A가 내 이름을 기억했어", "A가 나한테 고맙다고 했어"라고 신기한듯 A에 대해 종알거렸다. 선생님과 상담 중 아이가 A를 잘 도와준다고 칭찬하시면서 전하신 말씀에 따르면 A는 자폐가 있긴 하지만, 일상 생활이 크게 불편하지는 않은 정도의 친구였다. 아이들은 A와 함께 잘 지내는 것 같았다.


2학기가 되면서 예상치 못한 이유로 변화가 일어났다. 선생님 사정으로 갑작스럽게 학교를 떠나시게 되면서 새 선생님이 오신 것. 새 선생님도 좋은 분이어서 아이는 큰 문제 없이 새학기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엄마, A가 사춘기 같아." 그러던 어느 날 하교를 한 아이가 약간의 짜증을 담은 얼굴로 내게 전한 말이다. "아, 그래. 니네가 사춘기가 시작될 나이이기는 하지. A가 어떤데?"

"자꾸 짜증을 내. 내가 도와줘도 짜증내고, 다 하기 싫다 그러고. 그래서 나도 조금 짜증나."

아기처럼 보였던 A의 행동이 조금 달라진 모양이었다. 짜증이 잦아졌고, 큰애는 물론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도 슬슬 원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중에 이런저런 통로로 듣게 된 이야기를 종합해보니, 사실 A는 사춘기가 아니었던 것 같다. 드라마 속에서도 나오듯, 자폐 스펙트럼인 사람들의 특성 중 하나가 낯선 환경에 예민하다는 것이다. 공간, 순서는 당연하고, 중요한 사람, 즉 양육자나 선생님이 바뀌는 것은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두 선생님 스타일이 많이 달랐다. 이전 선생님은 A의 웬만한 행동은 허용하는 선생님이었던 반면, 새 선생님은 A에게도 반의 일반적인 규칙이 적용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이셨다. 이전에 허용됐던 행동들을 못하게 되니, A의 스트레스가 잦은 짜증으로 나타난 것 같았다.


또 한가지 변화는 A를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였다. A의 행동을 '봐주지' 않는 선생님이 오시자, 아이들은 그간 갖고 있던 불만을 슬슬 쏟아내기 시작한 거였다. 이전 선생님에게는 말해봐야 "A는 도움반 학생이니 네가 잘 도와줘야지" 했던 부분이, 새 선생님에게 말하면, A를 꾸중해준다는 것을 알게 되자, 아이들도 A의 행동을 잘 참기 않기 시작한 거다.


아이들 심리검사 중 듣게 된 단어 중 내가 계속 기억하려고 하는 단어 중 하나가 '모델링'이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의 행동을 모델링하면서 큰다. 양육자나 선생님은 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비장애인 아이들도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의 행동을 보면서, 자기가 할 행동을 배워나간다. 아이들은 새 선생님의 행동을 통해, 불만을 내놓아도 괜찮겠다고, A에게 좀 뭐라고 해도 되겠다고, 무의식 중에 판단한 것 같다.


그런데 아이들의 불만은 잘못된걸까? "우영우는 왜 페널티를 받지 않냐"는 권민우의 불만은 잘못된걸까?

나는 우리 아이들이 장애인들과 어우러져 살기 위해서는 비장애 아이들이 받는 느낌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친구 A는 아이들과 지내는데 큰 트러블이 없는 친구였지만, 다른 학년에 두 번 같은 반이 됐던 B는 달랐다. 지체장애가 있는 친구였는데 지나가는 아이들의 발을 걸거나, 고학년이 돼서도 아이들의 신체를 만지곤 해 아이들의 불만이 컸다. 가장 큰 문제는 분명 문제가 있는데도 "도움반 친구니까 이해하라"는 이야기를 들어온 아이들은 이도저도 못했다. B의 장난은 계속됐고, 아이들의 미움을 샀다. 한 교실에 둔다고 이 아이들은 어우러져 사는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지금도 지울 수가 없다


도움반 제도의 취지는 훌륭하다. 취약계층의 '시설화'에 대한 문제의식은 아이들의 사회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들을 분류하지 않고 섞여 살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에 대한 운동도 세계적인 추세다.

민우는 영우랑 어우러질 수 있을까? 이상한변호사우영우 캡처.

문제는 제도의 보완이 이들을 강제로 섞어놓는 물리적 결합이라면 화학적 결합을 위한 대안들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아이들에 대해서는 반에 도움반 친구가 있든 없든, 그들이 우리와 함께 어우러져 살아야할 존재라는 점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사실 모든 선생님들이 특수교육에 대해 아신다면 좋지만,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특수아동에 대한 이해가 있는 선생님이, 특히 그 반에 있는 아이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면 어떨까? 장애가 있는 친구가 도움반에 내려가 혼자 교육받는 것보다 특수교육 선생님이 모든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수업을 자주는 아니더라도 정기적으로 운영해보는 경험을 아이들이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누구나처럼 아이들은 각자 싫어하는 것, 좋아하는 것, 해도 되는 행동과 안되는 행동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 어떨까? 알면, 보이고, 그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여기에도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민우는, "우영우는 우리가 봐줘서가 아니라 충분히 잘하고 있다. 배울만한 점이 있다"는 말에 영우의 재판을 보러간다. 그리고 그 말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이런 성숙한 행위를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어렵다. 아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도록 도와줄 장치가 필요하다. 장애가 있는 친구가 '참아줘야 하는 친구'가 아니라, 특징이 있는, 배울만한 점도 있는, 우리와 공통점이 있는 함께할 수 있는 친구라는 것을 아이들이 머리보다 마음으로 먼저 알게 됐으면 좋겠다.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잠시는 가능해보일 수 있지만, 영원히는 어렵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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