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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리피언 Jul 22. 2022

권민우를 위한 변명

한바다는 잘못한 게 없나요?

표정부터 정말 짜증나는 권민우.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면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아진다. 그만큼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드라마여서 그런 것 같다. 우영우는 물론, 준호, 수연, 내가 가장 큰 판타지라고 생각하는 명석까지. 아름답고, 착하고, 거기에 능력까지 좋은 캐릭터들을 보다보면 마음이 정말 행복해진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빌런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권민우다. 권민우는 우영우에게 '낙하산'이라고 말하고, 우영우가 부정취업을 했다고 게시판에 글을 올린다. 같은 재판에 투입되는데 자료를 주지 않기도 하고(물론 고의적으로 보인다), 암튼 가지가지로 얄미운 짓은 다 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짜증유발 캐릭터 권민우가 갈수록 짠하다. 사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현실의 우리와 비슷한 캐릭터는 권민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민우는 왜 그렇게 밉상짓만 골라서 하고 다닐까.


우영우가 강한 거예요!


나는 봄날의 햇살 최수연이 몹시 좋지만, 그에게는 부장판사 아빠가 있다. 방문 신청을 해도 들어가기 힘든 법원 건물에 아빠를 찾아왔다고 둘러대고 들어갈 수 있다. 최수연에게 부장판사 아빠가 있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 아니라 권민우에게 없는 게 문제다.


민우는 왜 "우영우는 강하다"고 짜증을 낼까? 아직 드라마가 중반 정도까지만 방영됐지만, 우리는 권민우의 사정은 아는 것이 없다. 그에 비해 우영우의 사정은 아주 잘 알고 있다. 비장애인 권민우는 모든 부분에서 영우보다 강자일까? 어쩌면 그는 우리 사회에서 인정하고 있는 약자의 지위 중 차상위계층일수도 있고, 한부모가정에서 어렵게 자란 청년일 수도 있다. 어쩌면 사실 약한 장애가 있는데 진단은 받지 못한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약점에 우리는 관심이 없다. 이 드라마는 자폐임에도 귀엽고 사랑스럽고, 일까지 잘하는 우영우에게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권민우는 계약기간이 끝나고 다시 세상에 내던져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산다. 그런 조바심은 민우가 결국 선넘는 행동을 하도록 몰고 간다. 우리 곁에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없을까? 그렇다면 이들은 그냥 인성이 나쁜 사람들일까. 우리는 어쩌면 우영우보다는 권민우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우리는 인천국제공항공사 계약직 청원경찰을 직고용하겠다고 했을 때, 내부의 정규직들의 반응을 기억한다. 가고 싶은 공기업 1위로 꼽혀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자랑하던 소위 인국공 내부에서는, 더 열심히, 더 치열하게 공부한 우리가 같은 처우를 받아야 하냐며 반발했다. 어떤 이들은 이들이 올바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공감을 보냈다. 이들은 모두 나쁜 놈들일까? 아니, 어제도 드라마 보며 권민우 욕했을 수 있다.


우영우가 내 곁의 동료라고 생각했을 때에도 우리는 최수연처럼 봄날의 햇살처럼 따듯한 사람이기만 할까? 물론 권민우처럼 적극적으로 얄미운 짓을 골라서 할 자신도 없지만, 완전히 내면적으로 우영우의 존재를 받아들이기만 할 자신도, 나는 없다.


한바다는 무엇을 했나요?


사실 여기에는 한바다의 잘못이 있다. 우영우의 장애인 자폐 스펙트럼, 드라마의 경우 아스퍼거 증후군은 주변인들과의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꼭 다른 동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조직을 위해 결국은 우영우를 위해 무언가 해야 했다. 특히 이들이 함께 생활하려면 한선영처럼 독단적으로 우영우의 입사를 결정해서는 안됐다. 정명석에게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적힌 이력서 뒷장을 떼내고 무조건 교육하라고 해서도 안됐다.

얼마 전 '금쪽같은 내새끼'에 자폐스펙트럼 중 하나인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추정되는 어린 친구가 나온 적 있다. 오은영 박사는 '금쪽 처방'을 제시하면서 이 아이를 돕기 위해 주변의 이해를 얻으라고 조언한다. 이 병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이는 아이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고, 폭력적이고 위험하게 보일 수 있다. 자폐스펙트럼인 아이들은 장애가 없는 아이들에게 별 문제가 안되는 자극에도 돌발행동을 할 수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대응 메뉴얼을 모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편견을 없앤다는 것과 정확한 이해를 돕는다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나는 아직도 혼란스럽다.


우리는 아직 변하지 않았다.


영화 '오아시스'가 개봉했던 2002년, 나는 대학생이었다. 이 영화를 보고 온 친구가 내게 해 준 말은 아직 어렸던 나에게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면 기분이 정말 더럽다고.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거기서 장애인인 공주(문소리)를 둘러싼 인물들이 공주에게 하는 짓을 자기가 그 입장이었으면 안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얘기였다.


지금은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2022년이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그때와 많이 달라졌을까? 그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더 생겼을 수는 있지만, 시선 자체는 그다지 많이 바뀐 것 같지 않다.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장애인을 함께 살아가야 하는 동시대 사람이 아니라, 도움을 줘야 하는 약자로만 바라보는 데 그치고 있다는 점은 여전하다. 여전히 교실에서는 도움반 친구(https://brunch.co.kr/@sleepyan/31)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아무도 그에 대한 이해를 구하지 않으니까.


귀엽고 천재적인 우영우 같은 특별한 장애인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현실의 장애인들을 위해서는, 아니 우리가 권민우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영우 판타지를 보면서 행복해하는데 그치기만 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어떻게 편견은 줄이면서, 그들을 이해해나갈 수 있을까?


사족. 나중에 권민우가 사랑받고 자란 재벌집 아들로 밝혀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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