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리피언 Jul 26. 2022

웃어줄 수 없어 퇴사했어요

라고 말할 순 없었지만

얼마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재무상담이라는 걸 받았다. 원래는 제법 목돈을 내고 받아야 하는 서비스인 모양인데 여차저차 혜택을 받을 수 있어 남편과 함께 나갔다. 지난 3월 회사를 그만두면서 소득이 꽤나 줄어들었기 때문에 누가 우리 가계에 대한 조언을 좀 해줬으면 하던 참이었다.


상담을 받기 위해서는 준비할 게 제법 많았다. 우리 가계를 최대한 자세히 알아야 정확한 조언을 해줄 수 있겠지. 그렇게 만난 공인 재무설계사님은 우리 소득을 보고 나에게 약간 걱정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부인 분은 소득이 전혀 없으신 건가요?"


우리 소득이 대부분 지출로 소진되고 있다는 부분이 제일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사실 우리도 그게 걱정이 아닌 것은 아니다. 빠듯해진 살림, 노후대비는 어떻게 하지? 우리도 고민 중이라는 얘기를 하니 그분 얼굴에 "대체 왜 그만뒀니?"라는 표정이 떠올랐다.


묻지도 않은 답을 할 수 없어 나는 속으로만, "웃어줄 수 없어 퇴사했어요"라고 말했다.


우리 아이들은 제법 크다. 큰 아이가 중학교 1학년, 둘째도 두 살 터울이다. 다들 덩치가 나만 하다. 내가 퇴사를 결정했을 때 주변에서는 "애들도 다 컸는데 왜 그만둬?"라고 물었다. 사실 이 물음 때문에 내 돈벌이는 몇 년 더 지속된 것 같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손이 많이 간다. 혼자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그래서 엄마들이 많이 그만둔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내 키와 비슷해지기 시작할 때쯤에는 마음이 더 많이 간다. 아이들은 홀로 설 준비를 하면서 스스로의 생각이 자라고, 그래서 행동이 변한다.

아이들이 빨리 크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는데, 막상 크고 보니 생각과 다르다. 전에는 체력을 써야 했다면, 이제는 공을 많이 들여야 하는 것이다.


엄마들이 오히려 이런 이유로 취업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아이들과 같이 있으면 자꾸 부딪히니, 자신도 바깥 생활을 좀 찾고, 말하자면 아이들과의 '접촉면'을 줄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 역시 진리의 케바케다. 우리 집 아이들은 나름 또래들끼리의 치열한 사회생활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나에게 많이 기대고 싶어 하는 편이다. 엄마, 오늘 학교에서 종알종알, 미주알고주알 떠들며 자기 생활을 공유하는 아이의 입을 바라보면 너무 예뻤지만, 그걸 가만히 들어주고 있을 여유는 점점 없어졌다.


기자를 두고 "기사 안 쓰면 최고의 직업"이라고 하는데, 능력이 별로여선지 기삿거리 하나 만들어내려면 온통 정신을 쏟아야 하는 나는 결국 밸런스를 맞추기 힘들어졌다. 좋은 기자도 되고 싶고, 좋은 엄마도 되자니 버거워졌다.


더구나 내가 다니던 회사는 제법 고민이 담긴 기사를 쓰려고 노력하는 곳이다. 요즘처럼 데스크 승인도 없는 그런 걸 내보내지도 않는다. 미디어 환경이 엉망진창인 상황에서 참 오아시스 같은 곳이 아닐 수 없다. 단순히 어그로를 끌어서 어뷰징하기 위한 기사 따위는 쓰지 않아도 됐다. 입사를 결정한 이유도 그것이었으니까.


그런데 결국 퇴사를 결정한 이유도 이거였다. 이 일을 하기에는 그야말로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가 없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있어도 기삿거리는 계속 고민해야 하는데 아이가 말을 걸면 웃으면서 대꾸해줄 수가 없었다. 코로나의 등장도 내가 지쳐가는데 큰 역할을 했다. 남편보다 재택이 원활했던 내가 아무래도 아이들 케어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일 좀 하다 보면 밥시간이 되고, 밥 먹으면 설거지, 빨래, 청소...는 남아있지만, 일도 끝나지 않았다. 시험 앞둔 아이처럼 도무지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매번 배달시킬 수도 없으니, 어느 날은 국을 끓이려고 서있다가 너무 피곤해서 울기도 했다. 

 이렇게 마주 앉아 웃어만 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 아닐까. 픽사베이

사실 그래도 대부분의 워킹맘들이 일을 유지한다. 내가 최저임금을 받고 있었다고 해도, 그 수입이 통째로 사라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까.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아이들에게 웃어줄 수 없어서 퇴사라니, 이게 무슨 배부른 소리인가.


그래서 퇴사 고민은 2년 가량 계속됐다. 답이 없는 고민이기에 결심했다고 생각했다가 혼자 번복하는 일이 계속됐다. 고민은 결국 남편의 말을 통해 끝났다. 나는 그냥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드라마 대사여도 오글거렸겠지만, 나는 울컥 눈물이 나왔다. 의외로 오래 지속된 고민이 끝나는 데는 시간이 별로 안 걸리기도 한다. 나는 결국 회사에 퇴사하겠다고 얘기했다.


이렇게 우스운 이유로 퇴사를 결심한 나는 이제 좀 웃어주고 있을까? 퇴사 3개월 만인 지난달 어느 날 남편에게 물었다. 내가 일을 그만둬서 힘든 점은 없냐고. "나는 그냥 요즘 니 표정이 좋아져서 좋아"라는 대답을 들으니, 아, 내가 요즘 소중한 사람들에게 잘 웃어주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좋아하는 음악도 같이 들어주고, 아이 친구의 연애사를 들으면서 같이 깔깔거리다보면, 아 이러려고 퇴사했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내가 '퇴사할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번 역시 완전한 은퇴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10년쯤 다닌 첫 직장을 그만뒀을 때만 하더라도 나는 내 커리어는 이제 끝났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그만두고도 제법 괴로웠다.

그런데 의외로 그 이후로도 6년간 내가 경제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지낸 기간은 고작 한 두 달 밖에 안된다. 그러고 보니, 이번이 퇴직 이후 경제활동 없이 지내는 가장 긴 기간이네. 첫 퇴사 이후 두 번의 입사와 퇴사를 더 경험하면서, 나는 세상 일이란 게 결심한대로 안되기도 하고, 어쩌다보면 생각도 안한 길로 가게 되기도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제 40대 초반인데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내가 어떻게 알겠나. 아마도 나는, 일을 하지 않아서 내가 웃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 또 일자리를 찾아나서지 않을까. 지금은 일단 퇴사를 선택할 수 있었던 상황에 감사하면서 열심히 웃고 있다.


우리 설계사님이 걱정하시는 소득은...맞다. 빠듯하다. 남편의 벌이가 적은 편은 아니지만, 한창 크는 아이 둘을 키우면서 노후준비는 사실 언감생심이다. 하지만 나는 불안해하기보다는 원기옥을 모으고 있다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입사할 결심'을 하기 위한 원기옥. 방실방실 웃어대며 원기를 회복하면, 나는 결국 또 버릇처럼 입사할 결심을 할지도. 아무 곳에서도 내 입사할 결심을 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웃음 속으로 잠시 감춰두기로 한다.


이전 12화 몬스테라 너마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