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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로운' 그림

조화롭지 않은 조화

by sliiky



물건을 담는 역할을 하는 것들 중에서도 가장 흔하고, 값싼 취급을 받는 비닐봉투는 가벼운 바람에도 쉽게 날아가고 쉽게 버려진다. 또, 꽃의 가장 싱싱하고 아름다운 젊음을 그대로 간직하기 위해 부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납작하게 눌린 기이한 물건이 있다. 바로 '압화'다.

(압화: 조형예술의 일종으로 꽃이나 잎을 납작하게 눌러서 만든 장식품이나 그림)


흔해빠진 비닐봉투와 압화 속 납작한 꽃들을 보며 '납작하게 대상화되어 어디에도 쉽게 뿌리내리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린다. 사회에서 여기저기로 떠밀리는 아주 보통의 사람들, 혹은 보통의 이름으로 경계를 서성거리는 사람들. 비닐봉투의 쓸모란 아주 얕고, 압화의 존재는 그야말로 납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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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로운 그림, 116.8x91cm, oil on canvas, 2023




<조화로운 그림>은 물리적으로 납작해진 ‘봉투꽃’ 그림이다.

비닐봉투로 감싼 꽃(조화)은 일반적인 ‘꽃다발’ 을 상기시키면서도, 매끈한 재질과 대상에 가해진 물리적인 압력으로 인해 부조화를 일으키며 미끄러진다. 나는 오직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조화롭지 않은 조화’를 통해, 봉투꽃과 꽃다발의 차이를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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