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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의 시간

너무나도 짧게 느껴진 열흘

by 라라미미

남편이 머문 기간은 아이의 방학이 아니라 등교하는 학기 중이어서 그냥 우리 평소의 일상을 함께 공유하기로 했다. 남편과 처음에 같이 호주에 왔을 때는 아이의 학교 입학 준비를 하다가 첫 등교날 밤 비행기로 한국에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아이가 등하교하는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떠났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이의 학교생활도 살펴보고, 근교나 함께 둘러보는 여유 있는 일주일을 보내기로 했다.


나 또한 이곳에서 4개월을 생활하면서 요일별로 내 나름대로 할 일이 정해져 있었다. 월, 수에는 인근 커뮤니티 센터에서 진행하는 영어회화 수업을 듣고 있고, 이번 텀 2부터는 나도 금요일 오전마다 아이가 다니는 코트에서 테니스를 배워보기로 했다. 10년 전쯤, 3개월 정도 테니스를 배웠었는데, 그때 당시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게 되면서 그 이후로는 테니스를 해볼 기회가 없었다. 호주에 오니 공원마다 테니스코트가 많이 있어서 레슨을 받는 것 자체에 대한 장벽이 낮고, 아주 큰 차이는 아니지만 한국에 비하면 수강료가 저렴한 편이다. 그래서 이번에 남편이 방문할 때 한국에 있는 내 테니스 라켓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한 상태였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하는 일주일 동안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의 평소 일상을 나누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동안 통화하며 말로만 설명했던 사람들, 공간들을 남편에게도 보여주니 상상 속의 존재들을 실제로 선물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월요일에는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커뮤니티 센터로 영어를 배우러 가는 날이라 나는 원래대로 수업을 들으러 가고 남편은 근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나를 기다리기로 했다.

- 여기가 내가 월요일에 영어를 배우러 온다고 했던 센터야.

- 생각보다 먼 거리에 있는 곳이었네?

- 응, 주차는 여기서 하고 끝나면 이곳에서 장을 보고 집에 가곤 했어.


남편이 없을 때는 가보지 못했던 맛집들도 돌아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먹자니 오랜만에 데이트를 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동안 아이와 둘이 있으면서 웬만해선 외식을 하지 않았다. 집에서 해 먹는 것이 훨씬 저렴하기도 하고, 둘이 먹는 양이 그리 많지 않아 메뉴를 시키기에도 양이 애매했다. 그리고 아이가 매운 음식을 아직 잘 먹지 못해 선택할 수 있는 식당의 폭도 적었다. 이렇게 남편과 밖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이제껏 장보고 밥을 챙기던 일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그동안 외식도 거의 하지 않고 매번 밥을 챙기고 도시락을 싸던 것이 안타까웠는지, 남편은 자기가 오면 저녁을 대신 챙겨주겠다고 말해왔었다. 원래도 요리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던 남편이었는데, 작년에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후 육아휴직을 하면서 그리고 우리 없이 4개월 동안 혼자 끼니를 챙겨 먹으면서 나름대로 요리 실력이 많이 늘었다. 남편은 와서 그동안 시도해 본 새로운 메뉴도 해주고, 나의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었다.


남편이 와서 좋은 점은 아이를 봐주는 손이 하나 더 늘었다는 것이다. 우리 둘만 있을 때는 온전히 아이만을 챙겨줄 수 없어서 늘 아쉬웠다. 아이가 숙제를 할 때 혹은 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그리고 놀다가 심심하다며 나와도 함께하고 싶어 할 때 나는 보통 집안일에 치여 여유롭게 아이를 봐주지 못해 평소에 아이에게 미안함은 느끼곤 했다. 둘만 있는데도 어찌나 해야 할 집안일은 끝도 없이 이어지는지. 물론, 이제는 제제가 많이 커서 스스로 해야 할 일을 하고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좋아하는 영상을 보거나 하며 남은 시간을 보낸다. 그래도 남편이 오니 내가 집안일을 할 때 아이를 챙기고 봐줄 수 있어 좋았다. 제제도 아빠가 와서 심심하지 않아 좋다며 함박웃음을 짓는데 조금은 마음이 짠했다.

이렇게 떨어져 지내다 보니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문득 우리가 한창 경기 중인 하나의 스포츠 팀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꼭 이겨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들을 해낼 때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스포츠경기처럼 부모로서 제제가 올바르게 성장하는 것을 작은 목표로 삼고 이렇게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나름대로 열심히 해내고 있다.

금요일 하루는 아이도 학교를 빠지고 멜번 시티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말을 보내고 다시 남편이 돌아가는 월요일 아침, 아이는 그 전날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등굣길에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래도 아이가 교실로 들어가면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과 하루를 잘 보낼 테고, 하교하는 길엔 분명 원래의 일상 속으로 돌아가 있을 거라 생각하니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

주말을 이용해 당일치기로 다녀온 필립아일랜드, 처칠아일랜드

점심에 출발하는 비행기라 우리도 아이의 등교를 보고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두 번째 이별이라 덤덤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서운했다. 아마도 이제 가면 아이의 학교생활이 끝나는 연말이 되어서야 남편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다시 나와 아이 둘만의 일상으로 남겨진다. 그래도 이렇게 잠깐이나마 남편이 와서 지내는 동안 휴가 같은 일상을 보내고 나니 새롭게 시작할 힘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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