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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버른의 가을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by 라라미미

어느새 이곳에 온 지도 4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그러는 동안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어 있었다.


멜버른*은 변덕스러운 날씨로 악명이 높다. 그래서 농담 섞인 말로 여기에선 하루에도 4계절을 느낄 수 있다고들 한다. 그리고 곧 다가올 이곳의 겨울은 한국보단 춥지 않지만 내내 흐리고 비가 와서 생각했던 것보다 쌀쌀하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날씨에 관하여 겁을 먹고 온 것에 비하면 그래도 지금까지 있는 내내 날씨가 좋았다. 물론 중간중간 며칠은 너무 일교차가 크기도 하고, 바람도 강하게 부는 그런 날씨가 있긴 했지만 비가 내리는 날은 정말 드물었고 공기는 무척 깨끗했다.


생각보다 여름이 꽤 길게 이어져 3월까지도 더운 날씨가 계속 됐다. 텀 1 마지막 날인 4월 3일 금요일은 날이 흐리고 갑작스럽게 온도가 내려가 순간 계절이 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계속 이렇게 추워지겠거니 싶어 방학 때 우리 집을 방문하기로 한 지인에게도 따뜻한 옷 위주로 짐을 챙겨 올 것을 권했다. 낮엔 햇빛 때문에 온도가 올라가도 아침저녁으로는 온도가 크게 떨어지는, 전형적인 가을날씨가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지인이 머무는 내내 여름이 다시 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정말 더웠다. 저녁에도 그냥 선선한 정도로 온도가 많이 내려가지 않았다.


이렇게 4월까지도 늦여름이 이어지더니 5월이 되어서야 정말 우리가 아는 가을 날씨로 돌아왔다. 이런 시간을 거치면서 길거리의 풍경들도 알게 모르게 변해갔는데, 마냥 초록빛으로만 가득하던 거리들이 점점 노랗게 빨갛게 물들어가는 모습이 정말 멋졌다.


나는 원래도 계절 중에 가을을 가장 좋아한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혹은 쌀쌀한 공기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고, 햇빛으로 조금은 더워지는 낮 기온은 추위를 많이 타는 내가 견디기 좋은 온도다. 큰 일교차로 생기는 쾌청한 하늘은 덤으로 얹어주는 보너스 같다. 한국에선 이런 시기가 정말 짧아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이곳도 우리의 가을과 비슷한 느낌이다. 많은 사람들이 멜버른의 가을이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워낙에 공원이 많은 데다(멜버른을 가든의 도시라고도 한다.) 가로수나 주택가 근처, 집집마다 마당에 심어놓은 나무들이 오래된 것이 많아 풍성한 잎을 자랑하는데 이 잎들이 시간이 갈수록 아름다운 색깔로 물든다.

집 밖으로 보이는 풍경

집 바로 옆에는 사립초등학교가 있는데 우리 집에서 이 학교의 작은 뒷마당이 잘 보인다. 그 마당에는 커다란 나무가 여러 그루 자라고 있어 여름 내내 푸른 나뭇잎을 보는 맛이 있었다. 어느 날 문득 나무를 살펴보니 끝이 보랏빛으로 살짝 변해있었다. 우와, 보라색으로 물드는 단풍잎도 있네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검붉은 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 지나치는 길거리 풍경, 아이와 손을 잡고 걸어가는 동안 마주치는 공원의 모습 등 눈에만 담기에는 정말 아까운 풍경들이 너무 많았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거리가 예뻐서 잠깐 차를 대고 사진을 찍었다.

5월 말인 지금에서야 온도가 확 내려가고, 비가 자주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된 것 같다. 하늘은 이제 회색빛일 때가 많고, 아침저녁이면 집 안공기가 무척 쌀쌀하다. 난방시스템도 벽에 걸린 냉난방 벽걸이 에어컨이 전부라 집 안 전체를 따뜻하게 만들기엔 역부족이고, 공기도 무척 건조해진다.

멜버른의 가을은 아름답다

그래도 생각보다 길게 날 좋은 가을을 보낸 것 같아 만족스럽다. 이제는 가장 우중충 하다는 멜버른의 겨울을 잘 버텨보아야겠다.


*영어로 멜버른을 발음하면 ‘멜번’에 가깝지만, 나는 우리에게 익숙한 대로 멜버른으로 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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