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몇몇은 이곳보육원에 괜히 왔다는 난감한 표정을 지은채 앉아있었고 불쑥 내가 나서자 모두 가슴을 쓸어내리는 기색이었다.
나는 절친 강희와 방으로 들어가, 어떤 춤을 출 것인가 모의를 했다. 그리고 십여분 정도를 할애해 대략 노래와 춤동작 몇 개를 맞춰보았다.
그리고 거실로 나갔다. 횡뎅그레하고 침침한 거실은 오래된 책꽂이에 듬성듬성 헌책들이 꽂혀있었고, 푸른 벽지에 주홍빛의 미끄런 장판까지, 무슨 철 지난 sf촬영 세트장 같았다. 바닥은 뜨겁고 공기는 차가운 거실 한가운데 서서 나와 강희는 우선 쌩목으로 동요를 불렀고 아이들과 친구들의 반응을 살폈다.
반응은 떨떠름했다. 망했나?
얘들을 어리다고 무시했나, 그러면 최신 가요를 불러야 하나 그러다가 꼬마들의 호기심에 찬 눈빛과 두런두런한 분위기가 느껴지자마자 에라 모르겠다 냅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우린 몸치였지만, 이 차가운 분위기에 어떻게라도 불씨를 지펴야 살아나갈 수 있다는되지도 않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자, 여러분! 따라 해 보세요!"
남대문시장 '골라! 골라!' 아저씨처럼, 그렇게 두 손과 발은 바람을 잡느라 춤을 추느라 바쁘게 펄럭거렸고. 표정도 밝게, 발도 강약약 굴러주면서
"요렇게 요렇게 두 팔을 앞으로 쭉 펴면서 꼬아주시고, 목은 뒤로 옆으로 아래로 꺾어보시고 다리도 숭구리당당 이렇게 이렇게."
접신한 사람처럼 나는 온몸의 관절을 닦달하며,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단 하나뿐인 춤을 아이들 앞에서 시전하고 있었다.
강희는 '이건 아까 말한 동작이 아니잖아'와 같은 눈빛을 보냈지만, 난이판사판이었다.
강희도 에라 모르겠다, 본인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끌어내 차차차인지 지르박인지,브레이크인지 모를 춤을 추고 있었다.
맨 정신에 할 수 있는 동작이 아니었지만,
어정쩡한 몸치 언니 둘의 기묘한 동작과 노래는 서서히 아이들의 반응을 이끌어냈고, 여러 곡이 이어지면서는 모두가 일어나 푸처핸썹을 하며 위아더월드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어디선가
"어머 쟤네 미쳤나 봐"
란 말이 들려왔지만 그 말은 꼬마들의 꺄르륵거리는 웃음과 쿵쿵 따라 뛰는 소리에흔적 없이사라졌다.
음악도 없는 흐릿한 형광등 아래 붉은 장판의 거실에서,
보육원 꼬마들과 사춘기 소녀들이 떼로 흔들어대는 어설픈 춤선은 카메라만 들이댔더라면 봉준호 '마마'의 묻지마관광버스 해 질 녘 춤사위보다 더 명장면이었을 것으로, 오랜 세월이 지난 현재에까지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또 한편으론 마치 파묘 김고은의 대살굿과 팝핀 현준의 날렵한 동작이, 팔다리가 하나쯤 고장 난 구체관절인형에 접신된 거마냥 사방으로 흔들렸으며,
그 팔과 다리의 불협화음이당장에 히트를 치면서 그곳에 모인 모두는전기에 감전된 듯 일사불란하게 사지를 떨어댔던 것이다.
그리곤 이빨을 드러낸 채 깔깔 웃다가 옆사람을 잡고이리저리 넘어지면서 단시간에 친목을 다졌고, 그건 어쩌면 비 오는 늦가을 해방촌 허름한 보육원에 깃든 선물 같은 소박한인류애내지는 막춤의 시너지효과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 일의 발단은 고등학교 2학년, 늦가을.
7교시 가정시간 선생님의 즉흥적인 말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연말이면 방문한다는 보육원 이야기를 하다가 느닷없이 그러지 말고 수업 후 함께 그곳을 가보자고 제안을 한 것이었다.
딱히 학원을 가거나, 방과 후 일정이 없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가깝기도 하고, 열여덟 살 아이들의 감성에 호소한 선생님의 눈빛과 말투에 이끌려 낯선 친구집에 잠깐 놀러 가는그런 기분으로 언덕을 넘어 혜심원으로 향했던 것이었다.
나는 친한 친구들이 간다고 하니, 심드렁히 따라나섰다. 그날은 알바가 없는 날이기도 했고.
그곳의 정식 명칭은 '혜심원'.
선생님은 보육원 방문으로 뭔가 우리에게 '동기 부여'를 하려고 했지만,
나는 당시 그런 동기부여 없이도 살아야 하는 '동기'가 여럿인 몹시 고단한 일상을 살아내는 중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일주일에 사흘은, 명동에서 알바를 했는데 일이 끝나면 자정너머 롯데백화점 앞에서 막차를 집어 타고 버스에 앉아 조느라 창에 머리를 쿵쿵 박는 게 일상인, 해서
불운한 인생들은, 어깨도 스치기 싫은 뾰족한 사람이었고 '보육원방문이라니 웃기시네'
이런 이벤트 없이는 사는 게 무료하신가.
그랬다.
아무튼 그 혜심원은 학교에서 도보로 20분쯤 걸어올라 간 후암동 꼭대기에 있었다. 까만 대문에 붉은 벽돌집이었고, 마당이 넓었다. 담쟁이가 한쪽 벽을 뒤덮고 있는 데다, 줄기 몇은 잭의 콩나무처럼 하늘로 솟구쳐 있어서 어디까지 기어올라갈 수 있을까 했던 그런 괴이한 분위기의 집.
부슬부슬 비가 내렸고 추웠다.
들고 간 초코파이와 음료를 우선 마중 나온 누군가에게 건넸고, 우린 엉거주춤 신발을 벗고 거실로 하나둘씩 들어갔는데, 아이들은 처음 보는 우리에게 쪼르르 다가와 손을 잡거나 무릎 위에 대번 엉덩이를 대고 걸터앉았다.
거실은 제법 넓어서 가운데를 비워놓고 빙 둘러앉을 만했고, 전혀 낯가림이 없는 아이들에게 놀란 나는 어떤 기에 눌리는 기분이 들었다.
선생님은 아이들과 재밌게 놀아주면 된다고 말을 하고는 사라졌고, 나는 대체 이 침침한 거실에서 처음 보는 아이들과 뭘 하면서 놀아야 하나, 귀신놀이? 숨바꼭질? 대체 무엇을?
하. 나는 이곳에 따라온 것을 벌써 후회하고 있었다.
무척 이상한 그림이었다.
유치원생쯤으로 보이는 작은 아이들이 처음 보는 사람에게 건네는 느닷없는 말과 행동이란 게 오랜 기간 몸에 밴 매너처럼 보여 오히려 편안해 보였달까.
초등고학년이거나 중학생쯤으로 짐작되는 아이들은 흘낏 우리를 바라보며 가볍게 목례를 할 뿐, 쌩하니 방에 들어갔다. 그중 가장 작은 아이가 내 무릎에 앉았다. 아이가 내게 몇 학년이냐고 물었다.
고2.
언니 공부 잘해요?
아니.
그럼 못해요?
글쎄.
춤은 잘 춰요?
나와 친한 몇몇은 공부와는 영 거리가 먼 친구들이었고, 그나마 그 친구들이 들어서자마자 유독 목소리를 높여 "안녕! 반가워!" 하며 너스레를 떨어대는바람에 그나마 싸한 분위기가 조금 밝아졌을 뿐. 다시 고요가 찾아들었고.
이 기괴한 분위기에 나는 딱따구리에게 가슴이 쪼이는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무릎에 앉은 꼬마를 옆으로 내려놓으며 손을 번쩍 든 거였다.
태어날 때부터 몸치였던 나는, 어쩌면 이날을 위해서 관절을 아껴왔던 모양이었다.
내 관절들은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제멋대로 움직였고, 동요 부르는 슬랩스틱의 대가 찰리채플린의 재림처럼아이들을 웃겨주었고 쏴한 이곳에 그나마 온기를 불어넣어주었으니 이만하면 되었다, 일생의 한 번뿐인 숙제를 마친 기분이랄까 아무튼
한 시간 반쯤이나 됐을까.
그렇게 막춤과 위아더월드의 흥분이 가시고 뒤이어 수수께끼와, 귀신얘기 등등이 오갔고, 더는 묘안이 없어 끙끙 대고 있을 때
원장이 나섰다.
"날도 흐린데, 언니들이 맛있는 것도 사 오고 재미난 춤도 가르쳐주고, 정말 고마운 일이죠! 우리 모두 저 두 언니에게 박수를 쳐줄까요?"
그러자 일동은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나와 강희에게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주었다.
파장 분위기에,
나는 '또 올게',라는 말을 하려고 했었나. 그때 원장이 살짝 나를 부르더니 '또 올게'라는 인사는 하지 말라고 모두에게 당부를 부탁했다. 다들 그렇게 인사를 하고 떠나니, 아이들이 자꾸 기다린다고 그냥 안녕, 하고 가도 된다고.
나는 내 무릎에 앉았던, 꼬마와 눈을 맞추며 급하게 '안녕'이라고 하곤 쏜살같이 신발을 꿰차고 대문을 나왔다.
뒤돌아 보면 덜미를 잡힐 거 같은 그런 서늘함이랄까.
혜심원의 대문이 닫힐 때, 꼬마는 나를 향해 두 팔을 뻗었고 '으앙!' 울음을 터뜨렸다.
다시 올 것도 아니면서,
조용히 책이나 읽어주고 올 것이지.
같잖은 오지랖.
성탄절 이브, 나는 버스정류장에 서 있었다.
백화점 시곗바늘이 자정을 가리키자, 대형 트리에는 폭죽처럼 파다닥 화려한 불이 들어왔고 여기저기 와!!하는 함성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