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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Apr 14. 2023

[D-262] 새싹이 돋기를 기다리는 중

104번째 글

아보카도를 키우기 시작한 지 거의 2주가 다 되어가고 있다. 열흘 전에 아보카도를 키우기 시작했다는 글을 썼고(글 보러가기), 그 글을 쓰기 이틀 전에 씨앗을 물에 담아 놓았으니 오늘로 12일째다. 싹이 돋았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다. 싹이 나기는커녕 싹이 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조금씩 씨앗이 갈라지고 있긴 한데, 원하는 만큼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씨앗이 반쪽으로 갈라졌고, 갈라진 틈이 아주 조금씩 벌어지고 있다. 이러다가 틈 사이로 아래로는 뿌리가 나고 위로는 싹이 난다고 한다. 그러려면 한 달 정도는 두고 봐야 한다기에 기다리는 중이다. 기다리면서 틈이 얼마나 갈라졌는지 들여다보고 가끔씩 물을 갈아주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기도 하고.


이 동그랗고 맨들맨들한 아보카도 씨앗에서 싹이 돋기를 기다리면서, 내가 왜 그동안 식물 키우는 데에 그다지 소질이 없었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나는 초조한 것을 못 견딘다. 불확실한 미래를 의연하게 감당하는 것을 잘 못한다. 나는 예측하고 싶어 하고 정확히 알고 싶어 하고 확신을 갖고 싶어 하고 안정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 그래서 언제 싹이 날지, 어떻게 자랄지 알 수 없는 식물 키우기가 내 적성에 잘 안 맞는 것 같다.


물론 싹이 나기를 기다리며 느끼는 설렘과 기대감도 있다. 아보카도 씨앗을 바라보면 두근거린다.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래서 사람들이 식물을 키우는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곧바로 초조함이 치고 들어온다. 내가 뭘 잘못해서 싹을 못 틔우고 있는 건 아닌지, 아보카도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내가 미숙해서 죽이고 있는 건 아닌지 조마조마하다. 싹이 나는 데에 오래 걸리니까 더 그렇다.


지난주에 친구에게 아보카도를 키우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친구가 내게 아보카도 이름은 지어 주었냐고 물었다. 나는 아직 짓지 않았다고, 싹이 난 뒤에 지어 줄 계획이라고 대답했다. 싹이 안 날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으니까, 미리 이름을 지어 두면 안 될 것 같다고 말이다. 이름을 붙여 주면서 정을 붙였는데 싹도 못 틔우고 죽으면 내 마음이 너무 아프니까. 이름을 지어 주면 쉽게 정을 주게 되고, 정을 주기 시작하면 나중에 일이 틀어졌을 때 더 크게 상처 입게 된다. 상처를 입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아보카도를 들여다볼 때 더 걱정이 되고 더 조마조마하다. 과연 내가 이 아보카도를 잘 키워 낼 수 있을지 겁이 난다.


그래도 별 수 없다. 싹이 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는. 또는 싹이 안 날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포기하는 것 외에는. 그전까지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해 보면서 최선을 다해 아보카도를 돌봐 주며 기다리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어서 뿌리가 돋고 싹이 자라서 이 아보카도에게 이름을 붙여 줄 수 있으면 좋겠다.



/

2023년 4월 14일,

식탁에 앉아서 라이브 스트리밍을 들으며.



*커버: Image by Albert Moreno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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