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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Apr 16. 2023

[D-260] 억지로 글을 쓰게 되는 날

106번째 글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진심이다. 어떤 글이던 상관없이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즐겁다. 내 머릿속에 이리저리 엉킨 채로 들어 있는 생각의 실타래를 글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조금씩 풀어내는 과정이 나를 즐겁게 해 준다. 그래서 지금 매일 한 편씩 에세이를 쓰는 챌린지를 하고 있는데도 그다지 부담스럽지가 않다. 아직까지는 '글을 쓰고 싶지 않다'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써서 올린 적도 없고.


하지만 언젠가 그렇게 억지로 글을 쓰게 되는 날이 올까 봐 겁이 난다. 글을 쓰기 싫은데, 챌린지를 해야만 하니까 억지로 머릿속에서 글을 짜내서 꾸역꾸역 글을 써서 업로드하는 경험을 하게 될까 봐 무섭다. 아예 글쓰기에 흥미를 잃어버리는 것도 걱정이 되지만, 흥미를 잃어버린 뒤에도 하기 싫은 걸 참아가며 글을 쓰게 될 것이 더 걱정된다.


억지로 쓴 글은 다 티가 난다. 내가 지금 이렇게 걱정을 사서 하고 있는 이유다. 아무리 잘 쓰려고 노력해도, 쓰기 싫은 마음을 꾹 눌러 참고 억지로 쓰는 글은 다 티가 나는 것 같다. 얼마 전,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신문에 늘 똑같은 사람이 매일 칼럼을 쓰는데, 그 칼럼을 읽다 보면 가끔씩 '아, 이 사람 오늘은 정말 쓸 말이 없었나 보다.' '이 사람 오늘은 정말 글 쓰기 싫었나 보다.'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말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뒤 누군가 내 글을 보고 그렇게 느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다. 또 내가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오늘 내 글 정말 글 쓰기 싫은 사람이 억지로 쓴 글 같네.' 내가 쓴 글을 앞에 놓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될까 봐.


물론 글이 잘 안 써지는 날도 있다. 생각이 너무 많을 때가 보통 그렇다. 밀려드는 생각의 파도에 휩쓸려 버너무 피곤해서 생각을 정리하기 힘들 때가 있다. 집중력이 흩어질 때도 있고, 피곤해서 글을 쓸 체력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 내가 쓴 글이 마음에 안 들 때도 있다. 사실 내 글이 마음에 안 드는 경우는 아주 많다. 부끄럽게 느껴질 때도 많고. 하지만 글이 잘 안 써지는 것이나 내 글을 싫어하는 것과, 글을 쓰기 싫은 것과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적어도 내 마음 속에서는 그렇다.


지난번에 글쓰기가 지루해진다면 그것은 영감을 찾아내지 못한 내 잘못이라는 내용의 글을 썼었다. (글 보러가기) 에세이를 매일 쓰기로 마음먹었으면 영감을 찾아서 글쓰기를 마무리하는 것까지가 내 책임이라는 생각을 했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억지로 글을 쓰게 되는 날에 대한 내 두려움도 같은 맥락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글쓰기가 더는 즐겁지 않게 느껴진다면, 다시 즐거움을 찾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잠시 글쓰기를 중단할 수도 있고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 다른 흥미를 찾아 잠시 떠났다가 올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글쓰기에 진실되게 임하는 것이니까.



/

2023년 4월 16일,

식탁에 앉아서 TV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Yannick Pulver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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