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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May 01. 2023

[D-245] 폭포를 상상하다

121번째 글

나는 피곤할 때면 머리를 비우기 위해 어떤 이미지를 떠올린다. 얼마 전 우연히 깨닫게 된 명상 방법이다. 나는 원래 생각이 많고 끊임없이 머릿속을 다양한 상상으로 채우는 사람이라, 머릿속을 조용히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얼마 전, 상상을 멈출 수 없다면 단 한 가지 이미지만 상상하는 방식으로 약간의 고요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관련글 보러가기) 찾아보니 이런 방식의 명상을 '집중 명상'이라고 부른다는 것 같다. 한 가지에 집중하면서 머릿속을 비우는 연습을 하는 방법이다.


오늘도 나는 피곤한 하루를 보냈고, 너무나도 할 일이 많아서 버거운 하루를 보냈다. 그래서 해가 지고 밤이 되니 이제 좀 쉬고 싶었다. 몸뿐만 아니라 머리도 고요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이 '집중 명상'을 시작했다. 어떤 대상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따라 마음을 잠재우기가 쉽지 않았다. 피곤해서 집중력이 떨어진 탓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내 주변의 소리나 특정한 대상에 집중하지 않고 대신에 가상의 이미지를 상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왠지 모르게 폭포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너무 거대한 폭포는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작은 물줄기 정도의 폭포도 아니고, 적당한 사이즈의 폭포이다. 무림 고수들이 물 아래에서 수행할 것만 같은, 딱 그런 사이즈의 폭포.


그런 폭포에 나는 조금씩 다가서고 있다. 날씨는 기분 좋게 시원한 정도고 공기가 약간 축축하다. 하지만 습하다는 느낌은 아니다. 비가 온 다음 날 새벽 공기처럼, 물기가 약간 내려앉은 깨끗하고 청량한 날씨이다. 그런 날씨를 온몸으로 느끼며 나는 산 속을 걷고 있다. 발 아래에 이따금씩 돌멩이가 밟히기는 하지만 길이 험하지는 않다. 멀리서 물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 물소리를 향해 나아간다. 주변에는 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너무 짙어서 온통 그림자를 드리우는 그런 녹음은 아니다. 아직 여름이 되기 전이라, 그 정도로 나무가 우거지지는 않았다. 나뭇잎은 연둣빛에서 이제 막 녹색이 되어 가려고 하는 중이다. 그 나뭇잎 너머로 햇빛이 쏟아진다. 적당한 그늘과 적당한 빛을 내 발길이 닿는 곳에 남겨두면서.


때로 나는 내 앞으로 자라난 나뭇가지를 살짝 치우기도 하고, 가지를 피해 머리를 숙이기도 하면서 물소리를 향해 걸어간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을수록 물소리는 조금씩 커진다. 나는 계속해서 걸어간다. 이제 물소리는 커져서 귓가를 때리고 있다. 하지만 그 소리가 나를 귀찮게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나를 부르고 있다.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저 너머에 물소리가 있다는 것을 안다. 내가 밟는 흙도 아까보다 수분을 더 많이 머금고 있는 검은 흙이다. 가끔가다 보이는 바위에도 이끼가 껴 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물소리의 근원에 도달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리고 내 시야를 가린 나뭇가지 하나를 손을 뻗어 걷어 낸 순간.


아. 그곳에 폭포가 있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있다. 절벽 위로 드리운 휘장처럼 그곳을 장식하고 있다. 나는 눈으로 폭포를 느낀다. 물줄기는 떨어지며 하얗게 거품이 일고 온 사방으로 물방울을 흩뿌린다. 물방울 몇 개가 내 얼굴에 내려앉는다. 물은 시원하기 그지없다. 나는 피부로 폭포를 느낀다. 들려오는 물소리도 시원하기 그지없다. 나는 귀로 폭포를 느낀다. 마음이 뻥 뚫리는 것만 같은 물소리가 나를 파고든다. 그 폭포를 바라보며 나는 서 있다. 그곳에 서자 나를 괴롭히던 현실의 문제들이 씻겨 내려가는 것만 같다. 나는 그 폭포 앞에서 자유를 만끽한다.


상상을 마치고 나자 확실히 기분이 좋아졌다. 피로가 조금 가신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 명상법, 꽤나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

2023년 5월 1일,

책상에 앉아서 생활 소음들을 들으며.



*커버: Image by DEAR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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