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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Aug 18. 2023

[D-136] 괴로워하던 밤들

230번째 글

어제는 새벽 2시가 다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갑자기 예전 일이 머릿속에 찾아들어서다. 예전의 행복했던 기억들이 들어섰다면 좋았겠지만 원래 밤에 갑자기 떠오른 기억들은 대체로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 이럴 때는 언제나 잊고 싶은 기억들이 찾아온다. 부끄러운 기억, 괴로운 기억, 없애버리고만 싶은 기억들이. 내 '흑역사'들이.


잠들기 전 침대에 누우면 왜 이런 기억들이 떠오르는 걸까? 왜 굳이 나는 이런 기억들을 떠올리고 그 시간들을 다시 살며 되새김질하는 걸까? 곱씹지 않아도 되는, 그냥 잊어버려도 되는, 아예 잊어버리고만 싶은 기억들인데, 왜 그런 기억들은 야속하게도 절대로 잊히지 않고 계속해서 망령처럼 나를 찾아오는 걸까? 왜 이런 잠 못 이루는 부끄러운 밤들을 보내야 하는 걸까? 왜 이렇게 이불을 차며 괴로움에 몸부림쳐야 하는 걸까?


나는 이런 밤들을 수도 없이 보내왔다.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수백만 번이나 이불을 찼을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내가 보낸 이런 밤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내가 경험한 흑역사들과 그 흑역사들 때문에 괴로워하던 나날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거다. 지금의 내 모습에 그렇게까지 만족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의 내가 최선의 나라고 믿으려 애쓰고 있다. 단지 이유를 기억하지 못할 뿐, 내가 내린 최선의 선택들이 모여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후회하고 싶지 않다. 그 흑역사와 그 불면의 밤들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부끄러움과 괴로움 없이도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얼핏 들지만,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그럴 수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나는 부끄러워하며 지금의 내가 되었고 괴로워하며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 지금의 나를 미워하지 않으려 한다. 올 한 해 동안 내가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는 이 230일간의 글쓰기도 나를 덜 미워하기 위해서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그러니까 나는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할지언정 내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수많은 밤들을 울고 몸부림치며 뜬눈으로 보냈을지라도.


오늘 밤도 어쩌면 흑역사를 떠올리며 잠 못 들 수도 있다. 오늘 밤도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하며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잠자리에 들 것이다. 밤새 뒤척이더라도 어느 순간 잠들어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그리고 잠깐이라도 잠들었다가 눈을 뜨면 아침이 되어 있으리라고 믿으면서. 오늘 밤도 흐르고 흘러서 미래의 내 모습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으면서.



/

2023년 8월 18일,

소파에 앉아서 음악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Cecile Hournau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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