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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Nov 08. 2023

[D-54] 긍정적, 낙관적, 희망적으로

312번째 글

'오늘은 비가 안 와서 다행이다. 날씨가 안 좋으면 아무것도 못 해.'


오늘 아침, 이런 생각을 하며 출근 준비를 했다. 잇따른 비 소식에 늘 가방에 넣어 두고 다녔던 우산은 오늘은 필요 없을 테니까 꺼내 놓고, 대신 선크림을 듬뿍 바르고. 그렇게 집을 나섰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이 '날씨가 안 좋으면 아무것도 못 해'라는 아이디어에 대해 생각했다. 그 표현이 적절한지, 나에게 도움이 되는 문장이었는지를.


나는 이 아이디어가 너무 부정적인 의미를 띠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날씨가 안 좋다고 해서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니까. 비가 내리는 날씨, 눈이 내리는 날씨, 흐리고 우중충한 날씨는 제각각의 분위기가 있고, 그 분위기에서만 할 수 있는 일과 그 분위기여서 더 좋은 일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 문장의 포인트는 오늘 날씨가 좋다는 점, 그래서 날씨가 좋은 날에 생길 수 있는 좋은 일들이 생길 거라는 기대였다. 이 의미를 담으면서 부정적인 형태의 아이디어를 바꾸어 본다면 이렇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날씨가 좋으니까 뭐든지 할 수 있어.'


같은 의미를 가지면서 조금 더 긍정적이고 조금 더 낙관적이고 조금 더 희망적인 문장. 나는 이 문장이 더 마음에 들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문장을 떠올리고 말하는 것이 '아무것도 못 해.'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더 기분이 좋으니까.


긍정적인 사고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은 물이 반 정도 차 있는 컵을 예시로 사용하곤 한다. 어떤 사람들은 '물이 반밖에 없네'보다는 '물이 반이나 있네'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또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반 정도 채워진 물에 만족하지 말고 온전한 한 컵을 얻기 위해서는 '물이 반밖에 없네'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이 반이나 있네'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일 수는 있지만 우리를 현실에 안주하게 만들고 진취적이지 못하게 만든다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 후자의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는 편이다. 우리는 실망하지 않고도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이 반밖에 없네'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물컵을 다 채우려고 노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이 반이나 있네'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물컵을 그대로 놓아두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물이 반이나 있네'라고 생각하고, 그 사실에 감사하고 행복해하면서, 물컵을 집어 들고 물을 가득 채우기 위해서 움직일 수 있다. 긍정적인 인식과 낙관적인 기대가 있다고 해서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건 진취적, 발전적인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물이 반밖에 없네'와 '물이 반이나 있네'는 물컵을 들고 이동할 때의 마음가짐일 뿐이다. 그리고 '물이 반이나 있네'는 그 물컵을 들고 있는 우리의 마음을 안정적이고 희망차게 만든다. 물컵을 들고 가는 발걸음을 더 가볍게 만든다. 그래서 어쩌면,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컵에 물을 가득 채울 수 있게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날씨가 안 좋으면 아무것도 못 해.'보다는 '날씨가 좋으니까 뭐든지 할 수 있어!'가 오늘의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컵에 물이 반밖에 없네.'보다는 '컵에 물이 반이나 있네.'가 '그럼 물을 더 가득 채워 볼까?'로 나를 더 잘 연결시켜 준다. 그리고 물을 더 받으러 가는 내 마음을 더 즐겁게 해 준다.



/
2023년 11월 8일,
버스에 앉아 라디오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manu schwendener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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