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확고했기 때문에 20대 내내 사회생활을 할 때에는 항상 당당하고, 거침이 없었다. 처음부터 그런 성격은 아니었는데, 나쁜 어른들을 여럿 만나니 성격이 조금씩 변해온 것 같다. 부당한 일을 겪으면 건의를 했고, 할 말이 있으면 모두가 있는 앞에서 면박을 주기도 했다. 회사에는 왜 이렇게 이상한 사람들만 많을까?
회사에서 꽤 높은 지위를 가진 분들에게 불만을 토로하면 대부분은 나에게 화살로 돌아왔다. 그들은 우리를 지켜준다거나 동료로써 대하지 않았다. 알고 있지 않은가? 진심으로 우리를 위해주는 상사는 없다. 사회생활을 여우와 같이 해야 하는데, 만년 곰이었던 내게 회사는 지옥이었다. 하고 싶은 말을 꺼내고 나면 바뀌지 않는 현실에 사직서를 꺼내들곤 했다. 몇 년 후 소문으로는 그때의 몇몇 상사들은 회사에서 쫓겨났다고 했다.
나는 '퇴사'라는 단어 자체가 무섭지는 않았다. 회사 내에서 꽤 일을 잘하기도 했었고, 생각보다 취업이 쉬웠기 때문에. (중소기업에 조건을 조금 낮추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모든 결정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남들은 잘 하는 사회생활이 왜 내게만 어려운 건지 자책과 죄책감도 들었다.
그럼에도 20대의 퇴사는 망설임이 없었다.
제대로 무언가를 해보기로 결정하고 30살에 퇴사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더 이상 어리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았고, 이상한 회사에 입사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동안 저축해놓은 통장 잔고를 보면서 앞으로의 계획과 필요한 것들을 체크해나갔다. 나름대로 준비를 시작했지만, 막상 퇴사 순간은 충동적으로 찾아왔다.
무책임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죄책감'을 덜기 위해 국비지원 플로리스트 양성과정을 등록했다. 동생과 꽃집을 운영하고 싶었던 것도 있었지만, '퇴사 후에도 할 것이 있다.'라는 현실에 안주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림작가가 되기 위해 그림을 공부해야 하는데 전혀 다른 꽃을 배웠다니. 이 결심도 오래갈 리 없었다.
그 외에도 캘리그래피와 커피, 천연비누, 캔들 등 온갖 민간자격증을 섭렵하고자 했다. 그림 그리는 삶을 살다가 한 번 실패해서 그럴까? 그림과 함께 할 수 있는 창업아이템을 찾기에 열을 올렸다.
나는 운이 좋게도 좋아하는 일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었다. 물론 좋아하는 일이 돈을 가져다주는 일이면 더더욱 좋았겠지만, '그림'의 영역에서는 쉽지 않은 것임에 틀림없다. 적당히 달려들어서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회사는 다니기 싫지만 좋아하는 일이 없다면 퇴사를 결정함에 있어서 한 번 더 고민을 해보는 게 좋겠다. 소중한 20대를 좋아하는 일에 쏟았던 것은 크게 후회되지 않지만 목적이 없는 퇴사는 후회를 남기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적어도 어른이 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직장인 투잡이나 돈을 크게 벌 수 있다는 소문들을 따라다니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만 미래를 장기적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성공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적으로 그 일을 꾸준히 해온 분들이다. 나 역시 그 노선을 잘 타고 싶은 마음뿐이다.
나도 회사 사람들이 너무 싫다. 퇴사 후 몇 개월만 지나도 '나'라는 사람은 잊히기 마련이고, 그 자리는 부품처럼 누군가가 대체한다. 내가 죽도록 싫어서 퇴사하는 엉망진창의 회사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는 건 생각보다 중요했다. 우리는 나중에 어떻게 마주칠지, 인연이 어디에 닿을지 모른다. 어른들 말이 틀린 게 아니었다는 걸 느꼈을 때도 있다.
퇴사 후에는 금전적으로 힘든 일이 생겼을 때도 있었는데, 이전에 근무했던 회사에서 외주작업을 주었다. 그때에는 따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어서 마음이 편했다. 만약 모든 회사에 적의적으로 대했다면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 결론적으로는 그림과 함께 천연비누를 판매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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