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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nie Sep 04. 2021

사장님은 알바 중

하루에 6시간만 일하고 싶어.

내 자리만 찾아놓으면 돈을 버는 건 꽤 수월할 거라 생각했다. 모든 게 오만이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월세를 내는 날은 너무 빨리 찾아왔다. 


'이대로는 안되겠어.'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사이트를 뒤져가며 공방 근처에 있는 일자리를 찾았다. 어릴 때에도 키즈 놀이공간, 택배사 사무직, 학원 등 여러 아르바이트를 해왔기 때문에 딱히 반감은 없었다. 그저 고정적인 수입이 있기를 바라며 적절한 시간대의 일을 구했다.


주로 오후에 손님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오전에 할 수 있는 일을 위주로 찾다가 한 가게에 출근하게 되었다. 맛있게 구워진 쿠키에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내가 하는 일이 있어서 일하는 시간도 배려해 주시기에 냉큼 찾아갔지만, 급여를 주급으로 준다고 했을 때 알아봤다. 여긴 사람들이 금방 나가는 곳이라는걸.


영하 10도가 넘는 한겨울에 오븐에서 나오는 미세먼지 때문에 온 창문을 열고 일을 해야 했다. 꽁꽁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그 시간을 버텼는데, 오전 내내 추위와 싸우다 정작 내 공방에 도착하면 지쳐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하루를 망친 것 같다는 기분이 딱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루에 몇백 개씩 그려내는 그림도, 최저임금의 시급도, 추위도. 사실 견딜 수 있었다. 나를 더 힘들 게 하는 건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솔직히 우리 누구도 이런 결례를 범한 적이 있지 않나. 겉모습으로 어떤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일 말이다. 쿠키 가게에서의 나는 그저 30살 경력단절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왜 아르바이트하는 곳의 사장님들은 우리에게 반말을 하시는 걸까? 그저 헛웃음이 나온다. 유학에 다녀온 어린 친구도 같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곳에서 조금 낙오된 안타까운 청춘들로 비쳤다.


한겨울에 뜨거운 물 한 잔 마시기도 눈치가 보이는 우리 앞에서 본인의 딸을 미국의 어디로 유학 보낼 거라고 떵떵거리던 사장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러면서도 쿠키에 그림 그리다 부러지면 시급에서 제하겠다는 무서운 발언까지 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나 열심히 해야겠어.'

이런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하루의 몇 시간을 이렇게 열심히 다른 사람의 사업에 힘을 쏟아주는데 내 일에는 왜 그러지 못했나 반성도 했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일을 함에 있어서 나쁜 점만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일하는 곳에서 나는 충분히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었다. 회사에 다닐 때보다도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경력이 쌓여도 상사에게 등 떠밀려 일을 해왔지만 혼자 일하고 내 커리어를 쌓으니 아무도 나를 우습게 보진 않았다.


문화센터에 강의를 나갈 때에는 나보다 많은 연세이신 어른들도 '애기 선생님~'이라고 하시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수업을 이어나가주셨다. 나는 매주 그분들의 열정과 따뜻함을 맞이하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내 목표는 하루에 6시간 일하고 먹고사는 것.

이런 목표가 생겼다. 회사에서 밥 먹듯 야근을 하고 버텼던 모든 시간들 속에서 가장 후회되는 것은 '나를 위한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6시간 일하고 200만 원만 벌어도 행복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 결정이 서자 내가 가진 시간 내에서 강의와 자기계발에 더욱 시간을 쏟았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도 하루에 6시간만 일을 했다. 오전, 오후를 쪼개 오전에는 창작 관련한 일을 하고, 오후에는 강의와 강의를 위한 자료를 만들었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고 하지 않던가. 그 기회를 위한 준비가 필요한 시기라고 여기며 마음을 다잡았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고 싶었으니까. 지금 다시 그 시선들을 마주한다 하더라도 비슷한 결정을 했을 것 같다.


어쩌면 나의 열정은 그들의 태도에서 오는 불쾌감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이메일 slonie@naver.com

인스타그램 @workroom921 / @by_slon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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