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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선생 Oct 02. 2020

지금 앉은 자리가 꽃자리다

이사를 가지 않기로 한 후 집이 다시 좋아졌다


지난 몇 달간 오일장 신문 부동산 페이지를 거의 매주 들락날락거렸었다. 5개월 생각하고 들어왔던 에어비엔비에 어느새 1년이나 살았다. 제주살이 단기 숙소로 생각하고 들어온 곳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어쩌다 보니 1년이 지난 것이다.  살림이 다 갖추어진 대신에 월세가 주변 시세에 비해 좀 비싼 편인데, 이제 1년 더 있을 생각을 하니 같은 가격이면 더 깨끗하고 새롭고 경치도 좋은 곳이 있지 않을까 해서 이사를 고려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지금 다니는 학교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탓에 학교 근처에서 찾다 보니 마음에 드는 곳이 없어 결국 포기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사 갈 집을 찾아보는 동안에 계속해서 내가 지금 사는 집이 뭔가 불만스럽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분명 처음 집을 구해서 계약하고 들어왔을 때는 마음에 꼭 드는 집과 위치였는데, 그리고 사는 내내 불만이 없었는데, 이사 갈 생각을 한 이후로는 뭔가 지금 있는 집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 집에 계속 머무르기로 했다. 다른 마땅한 대안이 없지 않은가. 


집주인 아주머니께 전화를 했다. 내년 여름까지 1년 정도 더 머무르겠다 말씀드렸다. 통화하는 김에 그동안 우리로 인해 불편하셨던 점은 없으셨는지 여쭤 봤다. 아빠를 꼭 닮은 아이들의 큰 목소리와 넘치는 에너지가 혹시라도 위층에 사시는 주인아주머니께 불편을 끼치지 않았을까 늘 마음이 쓰였던 차다. 마음씨 좋은 주인아주머니는 아이들은 활달한 게 좋다 하신다. 오히려 조용하면 혹시 아프지나 않나 걱정되신단다. 상냥한 아주머니 말씀에 아이들이 피해 끼칠까 늘 노심초사하는 남편마저도 마음을 놓는다. 아이들과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이사를 가지 않기로 한 후 집이 다시 좋아졌다. 멋진 경치는 없지만 편리한 마트와 가게들이 주변에 있다. 새로 지은 집은 아니지만 아래층이 가정집이 아니라 아이들이 아무리 뛰고 떠들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월세는 조금 비싸지만 필요한 가구와 집기가 갖추어져서 낭비가 없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였는 줄 모르고 있었던 꼴이다. 지금 앉은 자리가 꽃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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