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사랑은 그렇게 변하지

by badac

자주 어울리는 친구들은 내일 모레 마흔이거나, 엊그제 마흔이 되었다. 쉰을 넘겼거나 바라보는 친구도 많다. 전에는 좋아하고 잘 먹었던 다디단 초콜렛이나 느끼한 크림 소스를 먹고나면 김치가 생각난다는 ㄷ처럼 나이가 드니 ‘젊은이’때 좋아했던 음식을 마냥 전처럼 즐길 수만은 없게 되었다. ㄷ은 명언을 남겼다. “먹을 수 있는 것도 다 한 때다. 과식도 폭식도 할 수 있을 때 많이 해둬라.” 먹는 걸 크게 가리지 않고 개떡 같이 먹어도 찰떡 같이 소화 시키며 지금껏 무탈하게 살아온 나도 이제 과식을 하면 속에 탈이 난다. (찰떡이 더 소화시키기 어려울 것 같지만 어쨌든, 아마도 기를 쓰면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명색이 내가 먹보인데 소화제를 먹어야 하다니… 분하다. 3~4년 전부터는 역류성식도염에 위궤양에 이상 징후가 계속 나타났음에도 아직도 내 위장을 과대평가해서 정신을 못차렸다. 역류성식도염과 각종 잔병치레에 대해 나중에 따로 이야기해야할 정도다.(급한 대로 한 가지만 말하면 과식하지 말 것) 지금은 콩나물국밥과 미가옥에 집중!.

12.jpg

젊은이들 중에도 ‘국밥’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국밥은 늙은이의 음식처럼 느껴진다. 입맛이 없다고 밥에 물을 말아 드시던 아부지 생각도 난다. 나야 입맛이 없는 건 아니었고 국물이 맛있어서 그런 거지만 마흔 언저리의 친구들이 전에는 안 먹던 국밥을 먹고 즐기는 걸 보면 분명 나이듦과 국밥은 상관이 있어보인다. 뜨끈하고 얼큰한 미가옥 콩나물국밥의 국물을 후루룩 마시며 으어어 시원하다 느꼈던 건 바로 중년의 사랑? 국물이 맛있다고 느껴지는 것부터가 나이듦의 징조인가. 아닌데 나는 젊은이 시절에도 국물을 더 선호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렇다면 늙은이 식성. 아니다. 다 잘 먹는 사람일뿐. 품이 너른 사랑꾼이다.


입맛은 변한다. 사랑이 변하듯. 입은 여전히 그 맛을 그리워하고 원하지만 장기의 반대로 헤어질 수밖에 없는 사랑이 있고, 까닭없이 냄새도 맡기 싫어지는 사랑이 있다. 그럴만한 사정으로 연을 끊기도 한다. 어린 시절 엄마가 끓여주시는 떡국을 참 좋아했다.(지금도 좋아한다.) 나는 초등학교(아니 국민학교) 6학년 때부터 나가 살았는데 주말이나 방학에 집에 올때면 엄마가 먹고 싶은 걸 묻고 그 음식을 해주셨다. 떡국이라고 대답한 날로부터 3일 정도 매일 떡국이 밥상에 올라왔다. 대여섯 끼니까지는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렇지만… 이제, 그만! 제발 밥을 주세요. 지나치면 부족한만 못하다는 걸 가르치고 싶으셨던 걸까, 오랜만에 만난 딸자식이 좋아하는 음식을 맘껏 차려주고 싶으셨던 걸까, 가게일에 집안일에 바쁜데 반복되는 끼니도 잘 먹으니 옳타구나 하면서 메뉴 고민을 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셨을까 엄마의 심정은 알 수 없지만 맛있는 음식도 주구장창 먹으면 질린다는 걸 그때 알았다. 여전히 두세 끼 정도 같은 음식을 먹어도 상관 없다. 스스로 끼니를 챙기기 시작하면서 딱 1인분의 수제비를 끓이고 한 공기 분량의 밥을 매끼 지어먹던 날도 있었지만 늘 그렇게 할 수만은 없다. 끓여놓은 국을 며칠동안 해치우거나 일주일간 먹을 요량으로 부러 많은 양을 만들기도 한다. 엄마는 매끼 다른 국이나 찌개를 만드셨던 것 같다. 그 수많은 밥상과 엄마의 노고보다 또 같은 반찬이냐며 투정하던 아빠의 표정이 생각난다. 청소나 요리 같은 살림은 전혀 안 하시면서 음식 만들때 고무장갑 끼고 한다고 그렇게나 잔소리를 해대는 아빠랑 같이 산 탓에 꽤 오랫동안 일하는 사람과 타박하는 사람으로 나눠생각했다. 타박하던 사람으로 살던 시절이었지만 엄마가 젊은이였던 덕분에 직접 며칠씩 씻어 피를 뺀 곱창으로 끓인 ‘곱창국’(내장탕과 비슷한 음식)처럼 손이 가는 음식도 많이 해주셨다. 나는 어린이 때부터 곱창국와 육회(보통 육사시미라고 부르는 양념하지 않은 소고기를 전라도에서는 육회라고 부른다. 양념없이 기름장에만 찍어먹는 것이라고 배웠다.)를 먹는 집안에서 자랐다. 곱창국이나 육회의 신비로운 맛에 대해서는 자세히 쓰지 못하겠다. ‘다 좋은데 화가 나면 혹은 술만 마시면 폭력을 쓰’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니어서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동물의 살과 뼈로부터 나온 음식과 헤어지려고 노력하는 중이라서.


중년의 사랑이라고 젊은이의 사랑과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 어른의 음식을 즐기던 아이였던 내가 콩나물국밥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입맛이 늙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이들수록 소화하기에 좋고 부드러운 음식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생기기는 할 터. 입에만 좋은 음식을 실컷 먹고 고생하는 날이 쌓이면 신중해지기는 한다. 과거에 사랑했던 것들을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혹은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랑은 변하고 입맛도 변한다. 그러니 아직 콩나물국밥과 사랑에 빠지지 않으신 분들이여, 열린 마음으로 미가옥에 같이 가지 않을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1 사랑이 멀어졌습니다 : 롱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