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집사라고 하기엔 엉성한.
몇 년 전 서울에서 아주 작은 개인 카페를 열었을 때 주변에서 식물 선물을 많이 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스스로 식물을 구입해 돌보거나 꽃을 사는 일은 거의 없었다. 꽃다발을 선물로 받는 걸 선호하지 않는 편이고(그보다 자연스럽게 피어있는 꽃을 보는 걸 훨씬 좋아한다.) 어쩌다 꽃 선물 받을 일이 있을 때만 화병에 꽂아 두거나 말려서 가지고 있곤 했다. 그만큼 식물과는 친밀하지 않았는데 앙증맞게 자라는 그들을 돌보게 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당시 동백나무, 고무나무, 테이블 야자, 몬스테라, 금전수를 선물 받았는데 금전수가 한 달도 못 가 죽어서 적잖은 충격을 받고(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다.) 다른 녀석들은 꼭 죽지 않게 잘 키워야지 하는 다짐과 함께 돌보았다. 몇 개월 간은 자라는 게 잘 느껴지지 않아서 잘 크고 있는 건지 파악하지 못했는데 1년 정도 지난 후에 처음 만났을 때 찍었던 사진과 비교해 보니 어마어마하게 자란 걸 알 수 있었다. 고작 밝고 바람 잘 통하는 곳에 두고 물만 주었을 뿐인데 잘 자라는 게 참 신기했다. 그 신기한 마음이 잘 심어져서였는지 영양분도 좀 챙겨서 주고 조금만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혹시라도 죽을까 봐 마음을 많이 쏟으며 살폈다. 부디 잘 자라주어서 동백은 꽃을 피우고, 몬스테라는 구멍 뽕뽕 나는 신기한 잎이 잘 자라고, 고무나무도 단단한 그 잎사귀가 잘 자라기를, 테이블 야자도 푸른 그 잎이 무성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온 후에 잘 자라던 몬스테라가 죽었다. 꼬꼬마 시절에 비하면 훨씬 크고 늠름하게 멋짐을 뽐내던 때였는데 퇴근 후에 돌아오니 그 긴 잎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마음이 상당히 아파서(정말로) 나머지는 꼭 살려야 한다 했는데 며칠을 걸러 다른 잎들도 하나씩 꺽이더니 끝내는 줄기가 과숙된 바나나처럼 흐물거리며 죽었다. 마음이 무척 좋지 않았다. 몬스테라를 보내고 나서 한동안은 그 화분에 무언가 심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너무 슬퍼서 그렇다기보다 지금 있는 식물들 잘 키우는 게 낫다 싶었고 무엇보다 욕심으로 식물이라는 하나의 물질을 또 집에 들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고 함께 살고 싶은 식물 리스트가 늘어났다. 그래서 네 번, 다섯 번, 열 번씩 심사숙고한 끝에 키우기 까다롭지 않은 녀석들 몇몇과 함께 살게 되었다. 식물에 대한 지식이 빠삭한 사람은 아니기에 비교적 돌보기 쉬운 친구들이어야 했다. 집 안에 식물을 두고 살고 싶은 욕심이 있으나 그렇다고 식집사라고 하기엔 어딘가 엉성한 사람이기에 마음에 드는 식물이 보여도 여러 번, 그리고 며칠을 고민한 후에 함께 했다. 그렇게 버킨, 연필 선인장, 괴마옥, 아몬드 페페가 추가되었다.(사실 은쑥도 있었는데 함께 한지 얼마 못되어 죽었다. 나에겐 난이도가 높은 녀석이었다.) 버킨은 큰 화분으로 갈아줄 만큼 잘 자랐고 연필 선인장과 괴마옥도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 간다. 침실 머리맡에 두고 돌보는데 가끔씩 보면 마음이 매우 흐뭇하다. 아몬드 페페는 예전 직장에서 가지치기를 하고 버리려는 것을 식물 좋아하는 팀장님께서 수경재배로 돌보았던 것인데 작은 솜털이던 뿌리가 어느새 긴 수염으로 자라서 지금은 화분에 옮겨 돌보고 있다. 몇 년 전 선물 받았던 테이블 야자는 성장세가 무척 빨라서 3개의 화분으로 나누어 키우고도 수경재배로도 4개로 나누어 주변에 나누어 주었다. 다른 집으로 간 녀석들은 잘 자라고 있을지 문득 궁금하다.(잘 지냈으면 좋겠는데…)
집 안에 식물이 얼마 없나 생각이 들어 몇 가지 식물을 더 키워볼까 하고 기웃거리다가도 곰곰 생각해 보면 10개의 화분과 함께 살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심지어 테이블 야자만 4개나 있다. 식물과 함께 사는 건 전혀 관심 없던 나인데 10개나 있다니! 새삼 놀랍다. 그래서 더 이상 식물을 들이고 싶지는 않다. 지금도 충분하다. 얼마나 다양한 식물을 키우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식물과 함께(그들이 죽지 않게) 잘 사는 게 중요하니까 그 종류나 개수가 나에게 중요한 포인트는 아니다. 하여튼 테이블 야자 4개는 좀 많은 거 같은데… 하나만 두고 주변에 나눌까, 당근마켓 나눔을 할까 생각이 들지만 정이 흠뻑 들어 정말 잘 키울 사람 아닌 이상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 음, 욕심 같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생일 선물이든 축하 선물이든 선물을 주면 그 사람이 그걸 잘 쓰나 안 쓰나는 중요하지 않다. 선물을 받은 그 순간부터 그 사람 맘이고 몫이니까. 그런데 식물들은 그게 쉽지가 않다. 안 죽었으면 좋겠고, 다른 곳에 가서 잘 살았으면 좋겠고, 그래서 믿을만한 사람한테만 주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가 계속 키울까 해서 보내지 못하고 오늘도 함께 살고 있다. 으구! 어찌 보면 욕심이고 집착이다. 조만간 진짜로 결심해야지. 주변에 나누고 식물욕심을 좀 내려놓기로.